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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관계

작성자am|작성시간07.03.23|조회수415 목록 댓글 0
스승과 제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의 뜻은 ‘스승은 임금과 부모처럼 높으신 분’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보다는 ‘스승은 곧 개인에게 있어 정신적 어버이요, 집단에게 있어 정신적 지도자’라는 뜻이다. 개인에게 육신의 어버이가 있다면 정신의 어버이가 따로 있으니 이 분이 바로 스승이다. 그리고 정치적 지도자가 따로 있지만, 국민들이 마음속으로 따르고자 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있다면 이 분이 바로 스승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은 제자에 있다. 스승이 제자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승을 모시는 행위가 먼저이다. 스승이 제도적 권위나 물리적 강제력에 의존하여 제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보다는 제자가 삶의 모범으로 삶고, 지혜를 구하려는 의지가 선행되며,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마음 속 깊이 승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정립된다.
지금 학교에 “스승이 없다”라는 탄식이 많다. 일부에서는 학부모들이 교권을 존중하지 않고, 학생들이 되바라진 탓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승 모시기는 제자의 자발적 승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하여 휼륭한 교사가 없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학교 일에 열정적인 교사들은 많다.
문제는 교사들이 학교 일에 열정을 품는다고 해서 스승으로 제자들이 모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스승 모시기는 학교 일에 대한 열정과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다. 특히 학교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면, 열정은 시대착오적이 되기 쉽다. 근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공장에서 관리자와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주어진 작업 공정을 실현시키며, 단순 작업을 반복 수행한다. 이런 때, 주어진 기준과 방법을 학생에게 열정적으로 내리누리는 방식은 학생들의 생명을 억압하기 쉽다. 교사의 열정은 아이에게는 억압이 된다. 교사가 열정을 품을수록 학생들은 교사의 품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열정을 품었던 교사들은 이내 에너지를 소진(burn-out)한다.
지금 대한민국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 위기가 나타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현대 학교 위기의 원인은 흔히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교사들의 열정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열정 때문이다. 교사들도 배운대로 생각하고 실천해오고 있는데, 그들의 의식과 문화가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열정에 대해 존경을 할 제자는 없다.
만약 교사들 중에서 진정 이 시대 스승으로 거듭나려면 자신의 관념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과연 나의 삶이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지, 나의 지식이 아이들에게 깨달음을 심어주고 있는지,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진정, 아이들 하나하나의 요구와 특성에 맞추되, 그들의 보편적 욕구와 행동 방식에 대한 보편적 대응 원리를 적용하여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과 의식들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를 누구보다도 먼저 하기 때문에 실로 선생님 아닌가?
만약 제자들이 먼저 변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나 하면 제자들이 더 젊기 때문이다. 젊기 때문에 먼저 변화를 맞이하고 앞선다. 적어도 오랜 시절에 걸쳐 지금처럼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많았던 시절은 없다. 그러니 이런 때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오히려 서로의 관계를 참으로 편하게 하고 올바른 것으로 복원시킨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닮지 않으면 된다. 심지어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어떤 선생님이든 내 앞에 계실 때,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 역시 제자가 스승을 모시는 일이 관계의 핵심이 된다.
오늘날 학교 교실에 나타나는 교사와 학생 사이 여러 가지 신뢰 위기는 결국 교사와 학생 모두의 근본적 성찰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자, 성찰합시다.

이인규(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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