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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다 서

유1;1-3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작성자김백수|작성시간26.06.07|조회수1 목록 댓글 0

1;1~3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20260531

 

1;1~3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20260531도곡교회 김백수목사 .................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1;1~3말씀으로[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사랑과 축복으로 지난 한 달을 지키심을 받고 보호를 받으시면 이 자리에 이른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이요 사랑의 결과입니다. 이제 더위가 시작되는 6월을 준비하면 하나님 은혜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소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님감동하심으로 본문이 기록된 유다서의 저자는 예수님동생 유다가 기록한 것이란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유다라는 사람들 이름이 여러 번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330절에는 예수님의 조상 유다, 사도행전 537절에는 갈릴리 사람 유다, 마가복음 319절에는 가룟 유다, 사도행전 911절에는 사울이 다메섹에서 유했던 집의 주인 유다, 사도행전 1522절에는 바사바라는 유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63절에는 예수님의 아우 유다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유다서를 어느 유다가 썼느냐 하는 것 때문에 이론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잡한 이론을 따질 것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아우입니다. 야고보의 형제 유다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아우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기까지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7;3말씀에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 함 이러라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때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유다는 초대교회의 지도적인 인물로 활약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14말씀에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 쓰니라.

기도회 참석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 아우들도 믿기를 시작하였다는 것을 우리들도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우리들 믿음도 큰 믿음이 되어지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로 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1-2

*둘째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

 

사랑하는 성도가족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세상에 우리들은 살지만 하나님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의 속한 천군천사에 의한 보호와 인도 속에 우리들은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나 혼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악한 마귀에 속한 영적 세계에서도 우리들은 믿음의 싸움을 싸울 때 하나님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로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믿음을 고백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승리자로 싸움을 싸우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마귀의 견고한 진을 부수어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날마다 주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면 성령님감동으로 하나님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1-2

 

본문성경 1;1~2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동생 유다에 의하여 씌어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가룟이 아닌 예수님 아우 유다에 의하여 씌어졌습니다. 그의 이름의 특이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유다는 열망의 자식이 아닙니다. 하나님 참 아들입니다. 성실하고 열성적인 일군입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기록할 때 간단히 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다른 유다를 생각할 때 아마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태어날 때는 같은 성질이 있었습니다.

그도 자기 생각대로 방치되었다면 다른 유다와 마찬가지로 주를 배반한 자로 버림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혜는 그가 주를 배반한 유다와 다른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나와 여러분이 그런 입장이었다면, 우리들이 멸망의 자식이 되는 데서 지켜주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기억하면우리들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일군으로 부름 받은 자로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생활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남은 생애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성경 1;1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주님의 동생 유다를 말합니다.

13;55말씀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동생은 4명입니다. 그중 유다는 예수님 막내 동생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복음 전하러 다니시는 것을 세상에서 출세하기 위하여 다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7;3-5).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 후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여러 제자들과 함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함께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1;14)

이 유다도 바로 마가다락방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의 이름이 제일먼저 나오는 것은 믿음의 조상 야곱의 아들 중 네 번째 아들인 유다입니다. 그 이름이 같습니다. 그 이름은 가치 있고 고귀하고 명예로운 이름입니다.

유다의 이름 중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악인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제자 중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머리를 예수님께 다른 제자들처럼 충성스런 일에 사용하면 생명을 걸고 생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돈만 밝히는 도둑놈으로 결국은 예수님을 은 30(27;3) 소 한 마리 값으로 팔았습니다. 정말 어리석은 미련하고 저주 받은 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해하는 자로 망하였습니다.

유다가 이처럼 된 것은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13;27)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하다가 마가다락방에서 기도에 동참하고 거듭나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나의 생명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유다입니다.

그는 자신을 종이라 부릅니다.

예수님 친동생으로서 우월감을 가질 수 그러나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세주로 믿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았습니다. 신앙 안에서 겸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영적으로 바로 깨달았습니다.

성도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자기위치를 바로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자로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종은 소유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입니다.

주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인의 뜻대로만 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지 않고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클레토스>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하여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주권적인 선택의 은총으로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로부터 부르셨습니다. (12;1), 또한 애굽의 압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 주권적인 선택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불러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일군으로 사용하십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인과 성도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1;6과 고전1;24말씀에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고전1;24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본문성경 1;1말씀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인 성도에 대해 유다는 두 가지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란 고백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발견한 성도에 대한 그의 해석이며, 믿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입은 자 곧 성도를 말할 때 구별된 자, 거룩한 자란 말합니다. 바른 해석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5;16;4;1;5;8).

유다는 이 호칭에 하나를 더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성도인 것을 말합니다. 성도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보호하심을 입는 자란 것을 알려줍니다.

성도란 거룩함만을 강조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들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사랑을 받았으니 그 은혜로 회개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집나간 탕자가 아버지 사랑을 기억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들도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윤리적 도적 적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마치 잘못하면 저 하늘나라에도 갈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을 해석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회개하면 우리들은 주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들을 씻어 줍니다.

12;31-32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도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사랑과 보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곧 성도는 영생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하나님사랑과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흉악한 죄는 우리들이 짓고 주님 고난을 당하였으니 우리들 짓은 죄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아니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달려 우리들의 원죄 지옥 갈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자 범죄는 그 때 그 때 회개하면 됩니다.

13;10-11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 가룟 유다와 같은 죄는 용서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늘 내 마음 속에 예수님 피를 간직하면 용서받은 기쁨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마귀의 정죄에서 지옥의 생활을 벗어나 이 세상에서 용서받은 바라바 같은 축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이런 기도합니다.

19;13말씀에 또 주의 종으로 고 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범 죄란 나쁜 일인 줄 알고서도 행한 죄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교만한 행위입니다.

고의로 지은 죄라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 피로 씻어 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성령을 의지하면 생활하는 자 버림을 받지 아니합니다. 회개하면 용서하여 주십니다.

요일1;9-10말씀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성경 1;2말씀에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다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라고 축도합니다. 이는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과 비교할 때 특별한 축도입니다. 물론 디모데후서와 요한이서에 은혜와 긍휼과 평강으로 축복합니다.

유다의 축도는 당시의 현실적 문제를 보면 사용된 것이라고 합니다. 긍휼, ’평강, ‘사랑의 축복이 이 서신을 받는 성도들에게 필요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거짓 교사들의 농락으로 진리에서 떠나 방종의 생활을 허용하는 위기에 있었습니다. 곧 죄의 유혹과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상처를 입은 성도들에게 유다는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함께 하기를 축도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죄의 유혹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늘 임마누엘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면서 주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가족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볼 때 물가에 노는 아이들처럼 위험한 세상입니다. 하나님보호를 받지 아니하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늘 임마누엘 하나님보호와 인도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요?

우리들은 큰 믿음으로 보호를 기도하면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구원받은 기쁨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즐거움을 잊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하면 생활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생활하면 승리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

 

본문성경 유1;3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으로 주신 구원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구원입니다.

여기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 입니다. 이 사상은 구약에서 왔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40세가 되어 하나님 부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애굽의 궁중에서 바로의 공주의 양자로 자랍니다. 애굽의 학문과 정치, 기술을 익히며 고관들과 교제합니다. 자기가 애굽 사람인 줄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꿈을 품고 생활했습니다.

40세가 되었을 때 자신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하나님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부르심이 분명해야 무슨 일이든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부르심이 분명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여기 성도<하기오이(ἁγιοι)>입니다. 구약 신명기 333절에 성도라는 말이 나옵니다.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913절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넓은 의미에서 성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성별한 제사장, , 그리고 선지자를 가리켰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물건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는 회막이나 그 밖의 기구들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날을 거룩하게 여겨 성일이라 합니다. “성도라고 말하면 하나님께 성별되어 성결한 생활을 하는 무리를 뜻합니다.

성도가 나아가야 하는 길은 한마디로 말해서 광야 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은혜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생활을 끝내고 완전히 해방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보낸 애굽 왕 바로는 이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에게 있어 훌륭한 수족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들은 바로를 위해서 성을 쌓고 궁전을 지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떠나 버립니다. 바로는 자신에게 손실이 너무 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당장 이스라엘 민족의 뒤를 쫓기로 했습니다. 바로는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 택한 백성은 그리스도의 성도를 말합니다. 애굽 왕 바로는 마귀를 의미합니다. 더구나, 애굽을 막 떠난 이스라엘은 말하자면 새로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로 말해도 됩니다.

우리는 지금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옛 주인과 친구들은 우리를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번 이루신 일을 다시 번복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여기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한번 갈라놓았으면 영원히 세상과 갈라놓게 됩니다. 그런데 이 원수 마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위 환경에 눌려서 도망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고 성도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거듭난 경험이 없습니다. 그저 예배당에만 다니는 사람에게 마귀는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역사로 경험되는 일들이 크게 나타난 경험이 없습니다. 마귀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다시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는 그가 그 땅에서 아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마귀는 우리가 혈육의 장애를 뚫고 나아갈 용기가 없어 내가 믿는 예수님을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들 가족일가 친척은 예수 믿지 아니할 때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들 행동이 잘못된 것을 보고 상처를 받기도 한 사람들 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래도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 성도로서 구원의 축복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본문성경 유1;3씀에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 세상은 영적 전투장이요 싸우는 곳입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영적 싸움터입니다.

이 일을 우리들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들은 싸워야 합니다. 복음은 믿음의 도를 지키기 위하여 힘써 싸우라 라고 합니다.

우리들 믿음이 무엇이 무엇인지요?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새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는 성도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의 믿음을 쓰러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벧전5;8-9말씀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상황은 한마디로 사단의 세력과 주님의 세력 간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군사로 불러주셨습니다. 군사가 전투에 나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옷 입고 우리들은 전쟁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과 제사장이 함께 한 것처럼 우리대장 예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여기서는 믿음의 도라 들려주십니다.

믿음의 싸움은 힘써 싸워야 합니다.

일단 병사가 전쟁에 나가 싸움을 시작하면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만 합니다. 무섭다고 피하게 되면 오히려 적군의 손에 죽게 됩니다.

8;35말씀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겁한 자는 언제나 패배자이면 죽음을 당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패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싸움에서의 패배는 결국 멸망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단과 대적하여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믿음의 도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열과 성을 다해, 감당키 힘든 사단의 공격 앞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사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도입니다. 우리는 힘써 싸워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딤후2;4말씀에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싸움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지금 미국과 이란의 전쟁, 우러의 전쟁 군사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며 전쟁 중입니다.

싸우다가 나라를 위하여 죽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나라의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생명을 걸고 싸우는 현장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열심을 다해 주님 앞에 기도하면 내 생활을 맡겨야 합니다. 마귀의 군대와 싸워야 합니다. 기도로 싸워야 합니다. 기도하면 전도하는 현장이 싸움터입니다.

주님만 의지하여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멈춰서는 아니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빼앗고자 하는 사단의 공격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면 믿음을 지켜 나가는 생활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가족여러분

영적 싸움에 힘을 다하면 싸우고 있는지요?

마귀는 전도자를 가장 두려워합니다. 바울처럼 생명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면 영적 공격을 해야 합니다. 마귀의 진을 부수어가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생활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이라1-2

*둘째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

 

사랑하는 성도가족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보호를 받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믿음의 도를 온전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단과 싸워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사단과 힘써 싸우지 않으면 사단의 공격에 넘어집니다.

믿음을 빼앗기면 세상에 빠져 침물 합니다. 끝까지 십자가상의 예수님 깃발을 앞세우면 앞으로 가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물러서지 아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앞세우면 싸워야만 그 싸움에서 실패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사는 날 동안 복음을 들고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힘써 싸우고 끝까지 하나님말씀을 앞세우면 진리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앞세우면 나가야 합니다. 주님 이겨 놓으신 길을 따라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싸움에서 실패하여 믿음의 도를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있습니다. 저 하늘나라 우리들에게 주신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영적 싸움에 나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마귀를 박살 낼 수 있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10;19-20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전도자들에게 영적 싸움에 승리를 주십니다. 이긴 자의 기쁨 하늘나라의 즐거움 가운데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1-3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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