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唯心造
아름다움과 추함은
사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사람들은 흔히 사물 그 자체에
아름다움이나 추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꽃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 그 아름다움은 꽃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감정 속에 있다.
어떤 이는 한 송이의 장미를 보고 환희를 느끼지만
다른 이는 가시에 찔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같은 장미가 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고
한 사람에게는 불쾌함이다.
장미의 성질은 고정되어 있는데 말이다.
추함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건물을 보고 어떤 이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또 다른 이는 그 안에서 역사의 무게를 발견한다.
똑같은 잔해를 누군가에게는 기피 대상이 되고
누구에게는 감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본래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아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다.
이 통찰은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사람은 소박한 시골길을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만 감탄을 한다.
똑같은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함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기쁨이다.
차이는 사물이 아니다.
감각하는 주체의 미음에 있다.
세상은 본래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세상은 단지 우리가 빛깔을 덧입히는 무대일 뿐이다.
내가 마음을 열면 사소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
그러나 마음이 닫히면
가장 화려한 것에서도 추함을 느낀다.
사물은 거울일 뿐, 그 안에 비친 것은 나의 내면이다. -028~
출처> 도서> [니체의 초월자]
≪후기≫ 유성 박한 곤
노년에 이르러
오래도록 다듬어진 '정직으로 일관한 미적감각'
그것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졌다면
비록 삶의 그늘진 풍경이 있었던들 왜 무엇을 원망하리오!
좋은 눈을 가졌다는 것은
의사님들이 말하는 단순 시력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성적 판단을 가진 눈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시야를 갖는다는 조건에는
정직과 겸손과 시간과
공간의 이해가 서린 습기가
안개처럼 눈의 수정체 위를 눈물로 덫 쉬워져야 합니다.
좋은 음식 (먹는 것)도, 보는 것(구경)도
무한(無限) 하다면 무가치한 것 되겠죠만
신이 정한 한계(有限?) 속에 있기에 아름다운 것으로
다시 못 올 오늘을 아름답게 볼 줄 아신다면
인생을 실패작으로 함부로 단정 짓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