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태산 암벽등반 도전기]
어제의 월류봉 둘레길에 이어 오늘은 드디어 천태산 암벽등반의 날이 밝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암벽등반은 전문 산악인들이 하는 수직 절벽 정복 수준은 아니다. 천태산에는 난이도 하·중·상 코스가 있는데, 그중 마지막 75m 암벽 코스는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곳이다.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구간이다.
출발 전 단톡방에서는 암벽등반 도전자가 7명이었으나, 최종 출전 선수는 6명. 마치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라도 된 듯 비장한 분위기였다.
오전 8시. 식당에서 다슬기탕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맨 후 천태산으로 향했다. "배는 채웠고, 이제 암벽등만 시험받을 차례다."
조금 오르니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영국사에 도착했다. 통일신라 말기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국청사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 순간 우리 관심사는 역사보다도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암벽이었다.
영국사를 뒤로하고 A코스로 접어들자 짙은 신록과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이런 생각만 맴돌았다.
"잠시 후 저 암벽을 내가 오를 수 있을까?"
한참을 올라가니 드디어 난이도 하 코스가 등장했다. 초등학생도 오를 수 있는 짧은 암벽.
우리 일행은 마치 국가대표라도 된 듯 가볍게 통과했다.
"에이~ 별거 아니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중간 휴식 시간. 투투가 사탕을 나눠주려고 내려오다가 그만 사탕을 에너자이저 앞에 와르르 쏟아버렸다.
에너자이저: "왜? 나 주기 싫어서 일부러 쏟은 거야?"
투투: "아니에요~ 실수예요."
에너자이저: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순간 모두가 빵 터졌다.
그렇게 사탕 한 봉지가 순식간에 개그 소재가 되었고, 산속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다시 힘을 내어 전진.
잠시 후 난이도 중 코스가 나타났다. 적어도 15세 이상은 되어야 할 것 같은 암벽 줄타기 구간.
그러나 우리 팀은 이것도 무난히 통과했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천태산 암벽 별거 아니네!"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는 곧 알게 되었다.
마침내 유튜브에서 수없이 보았던 최종 보스. 75m 암벽 구간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아찔한 절벽.
게다가 옆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험하오니 우회로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안내판으로 향했다.
아니, 안내판이 저 정도로 만류할 정도면 정말 위험하다는 이야기 아닌가?
군대 시절 유격훈련장에서 타던 암벽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유격장은 적어도 밑에 안전망이라도 있었지, 여기는 그런 것도 없다.
그동안 자신만만했던 나조차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군대시절 같이 유격훈련 받던 한 병사의 절규가 생각난다. 뭉크의 절규같은 외침이다
왜냐하면 약 15m높이의 절벽 사이 외줄타기 훈련중일이다.
중간정도 잘 가다가 그만 팔에 힘이 빠져서 중심을 잃어 거꾸로 메달려 버렸다. 길거리의 전기 통닭구이의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조교님!! 살려주세요 팔에 힘이없어요"
그리고 문득 햄릿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오를 것인가, 우회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막상 최종 암벽 앞에 서니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 일행 중 세 명은 이미 우회로를 향해 유유히 출발하고 있었다. "안전이 최고지!" 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암벽 앞에는 수수깡, 계수, 그리고 나만 남았다.
우리는 잠시 암벽을 바라보며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렸다.
"올라갈까?" "말까?" "내 나이에 이걸 꼭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쩌랴.
요즘은 "가다가 중지하면 간 만큼 이익이다"라는 신(新)속담도 있다지만, 여기까지 와서 우회로로 빠지면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제일 먼저 로프를 움켜쥐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암벽에 첫발을 디뎠다.
솔직히 말하면 그 순간은 용감했다기보다 오기가 더 컸다.
만약 손에 힘이 풀려 미끄러지면? 그 뒤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군대 시절 유격훈련을 받으며 "나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 안 한다!" 라고 굳게 다짐했건만,
수십 년이 지나 자발적으로 유격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인생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할 만했다.
물론 숨은 가쁘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말이다.
중간쯤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계수가 로프를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오! 계수도 왔네!"
잠시 후에는 수수깡까지 암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문득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장면이 떠올랐다.
수천 마리 누 떼가 강가에 모여 서 있다.
강에는 악어들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모든 누들이 머뭇거리며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용감한 누 한 마리가 먼저 강물에 뛰어든다.
그러자 뒤따르던 누들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우르르 강으로 뛰어드는 장면.
바로 그 모습이었다.
내가 먼저 로프를 잡자 계수가 따라오고, 계수가 오르자 수수깡도 따라오고.
순간 나는 누 떼의 선두주자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세렝게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에는 악어가 있었고, 여기에는 자칫 병원입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우리 셋은 무사히 최난코스인 75m 암벽을 정복했다.
암벽에 올라섰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아뿔싸!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계수가 GPS를 동원하여 길을 찾아보아도 길이없다
대략 난감... 그런데 바로 옆의 데크길이 있은데 모르고 10분동안 헤프닝도 있었다
마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들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물론 실제로는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천태산이었고, 산소통 대신 물병을 들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세계적인 산악인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셰익스피어도 천태산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정상까지은 정말로 땅집고 헤엄치기 였다.
저 멀리서 우리를 응원하고 마중나온 우리팀이 보인다. 감사의 마음을 이글을 통해서 전하고 싶다
"좋은길 걷고 싶다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