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伐峙路의 遺蹟
1) 城 郭
(1) 老姑城
문경군 동로면 간송리 성재마을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이 산은 성재라 불리고 있으며 이곳의 성은 속칭 할미성이라 한다.
예천군에서 단양으로 가는 길목이며 북쪽으로 伐峙와 직통되는 위치이다. 성은 남북쪽의 협곡과 북쪽의 해발 570m 山峰을 돌아 설축한 石城으로 편마암계통의 석재를 적당히 治石하여 쌓았다. 성벽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남쪽에 146m 정도가 잘 남아 있는데 S자형으로 축조하여 더욱 견고하도록 하였으며 성벽 안쪽에는 너비 5.7m의 통로를 마련하였다.
성의 둘레는 646.4m로 전체를 內外夾築으로 쌓았는데 현재 지상의 성벽은 남아 있지 않 고 현존높이는 6.5∼9m로서 매우 높은 편이다. 將臺址는 북쪽의 정상부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雉城은 남동쪽 협곡의 좌우에 남아 있다. 건물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남쪽 성벽 안의 평지와 현재 경작지가 되어 있는 동쪽 底地에 군창이나 기타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안의 지세는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으며 문지가 동쪽에만 있다. 따라서 이 성의 주된 방어기능은 서쪽의 伐峙路와 소백산맥 방향에 있다고 하겠으며 축성시기는 삼국시대 말기로 신라의 북방진출시기가 아닐까 추정된다.
(2) 獨樂城
단양군 단양읍 가산리 산 36번지 道樂山에 축조된 산성이다. 벌치에서 단양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단양과 문경·예천 사이를 경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에 오르는 길은 가산리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개설된 산림벌채용 길이 있는데 이 길이 본래 山城으로 통하는 길이다. 성은 해발 964m의 道樂山 8分稜線에 축조되었으며 지금은 일부에만 성벽이 남아 있다. 高地帶이면서도 성안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다.
獨樂城의 연혁에 대해서는 正史의 기록이 없다. 단지 《大東地志》에,
獨樂城 在郡東南 其西南北 皆峻絕 唯東面略設堞履亂石崎嶇 乃登中有雙川 可容數千人 古避亂處註 092
이라 하여 서·남·북쪽은 몹시 험준하고, 동쪽만은 성벽이 있으나 돌이 흩어져 길이 험하다. 중턱에 올라가면 두 개의 내가 흐르는데 수천명을 수용할 만하여 옛날에 난을 피하던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속전에 신라 法興王代에 축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고려말 恭愍王이 홍건적의 침입 때 피난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의 둘레는 약 1km로 자연의 板石을 이용하여 안쪽 높이 1.5m, 바깥 높이 3.2m로 쌓았으며 內外夾築 城壁의 너비는 3m이다. 성벽은 北門址 주변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다. 山城의 형세는 서쪽은 천애절벽을 이루었고 북쪽과 동남쪽은 山稜을 이용하여 設築하는데 이것은 獨樂城이 서쪽의 伐峙路와 함께 동쪽의 벌치―稷峙―貢文城의 통로를 의식하여 축성되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門址는 北·南門址가 있으며 너비는 6m 이다. 우물지로는 北門址 아래에 千壽泉藥水가 있으며 성안의 계곡, 현 廣德庵 부근에도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어서 水源은 풍족한 편이다.
성안에 있는 廣德庵은 1955년 경에 신축되었으나 본래 寺址였으며 獨樂城과 역사를 함께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3) 貢文城
경상도의 문경·예천에서 벌치를 념어 단양에 이르면 獨樂城을 지나야 한다. 독락성을 지나는 길은 서쪽 佳山里를 경유하는 伐特路와 독락성 동편의 稷峙를 지나 貢文城으로 직통하는 길이 있다. 그런데 佳山里를 경유한 伐峙路도 丹陽川 옆으로 난 直路보다는 약간 우회하지만 貢文城을 지나는 길이 보다 평탄하다.
따라서 貢文城은 伐峙路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는 山城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