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천사가 나타나서 “당신이 세 가지 소원을 청하면 그것을 다 이루어주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것도 청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시오.”라고 말한다면 어떤 소원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사실 어렸을 때, 이러한 상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라는 동화책을 읽고서는, 길거리에서 주전자만 봐도 괜히 문질러 보았던 기억도 있네요.?
아무튼 이런 상황이 혹시라도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떤 소원을 빌 것인가를 어릴 적부터 쭉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말해야 할지,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지를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일까요? 지금 현재 그 당시에 가졌던 소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올바른 것을 소망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런데 올바른 것을 소망했던 성경 속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 왕입니다(1열왕 3,5-13).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솔로몬이 청한 이 한 가지 소원이 하느님 눈에는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해주겠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솔로몬이 청했던 ‘듣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듣지 않는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지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부부가 헤어지고 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자녀가 부모의 집을 떠납니까? 듣지 않기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들음이 사랑이며 지혜이며, 또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께서 성당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현존하심을 압니다. 거기에 규칙적으로 머무는 인간은 침묵하시는 하느님의 경청 속에 잠심하게 되고, 그 결과 침묵하는 듣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행복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으며,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현존하시면서 당신의 모습과 말씀을 교회를 통해 또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닫힌 마음으로 인해 보지도 또 듣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솔로몬 왕과 같이 잘 ‘듣는 마음’을 청하면 어떨까요? 분명히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대답이며, 그래야 우리 역시 전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인간 비참함의 원인은 홀로 방안에서 견디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파스칼).?
주님께 집중합시다.
급하게 글을 써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급한 상황이었지요. 한참 동안 머리를 써서 그런지 너무나도 시장했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마무리 짓지도 않고 나가서 식사를 할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마침 방에 빵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빵을 먹으면서 원고를 썼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원고를 다 썼습니다. 그리고 원고를 이메일로 발송하고 나니 시장이 확 몰려옵니다. 저는 아까 먹고 있었던 빵을 찾았지요. 하지만 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빵을 다 먹은 기억은 없지만,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도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빵을 다 먹었나 봅니다.?
빵을 먹은 기억도 없는데 빵을 다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천천히 빵을 먹었다면 아주 맛있게 먹었겠지요. 그러나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 먹다보니 먹은 줄도 모릅니다.?
이것도 저것도 하다보면 분명히 놓치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딱 하나에 집중할 때 효과를 더욱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주님께만 집중해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오히려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주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부차적인 것들 때문에 주님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오로지 집중하고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빠다킹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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