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피에타’를 보고는 그 자리를 한 동안 떠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큰 슬픔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냥 단순히 2,000년 전에 있었던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 이라는 간단한 도식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아픔과 슬픔이 그대로 제 마음으로 크게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조각한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때 깨닫게 되었지요.
사실 그의 작품은 너무나 많습니다. 당대에도 천재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대단한 걸작들을 많이 남겼지요. 그러나 그는 천재라기보다는 늘 최선을 다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끌로 흰 대리석을 조각하는 일이 제일 좋아. 죽으면 영원히 쉴 텐데...”
89세의 나이로 삶을 마치기 전 3일 전까지도 작품 손질을 했던 미켈란젤로가 휴식을 권하는 의사에게 말했던 말입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쉼 없이 작품을 만들었지요. 특히 수많은 하느님의 형상을 이 땅에 남기면서 사람들과 하느님의 간격을 가깝게 했습니다.
죽으면 영원히 쉴 것이라면서 최선을 다했던 그분의 열정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편하고 쉬운 것만 하려는 나, 순간적인 기쁨만을 가져다주는 것에 모든 것을 걸려고 했던 어리석은 나는 아니었을까요? 또한 항상 내가 기준이 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얻지 못했다며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던졌던 것은 아닐까요? 나의 일이 우선이었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일이 우선이었습니까?
오늘 복음은 못된 소작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못된 소작인들은 주인이 소출을 받아오라고 보낸 종을 붙잡아 매질하고 죽이지요. 더 많은 종을 보내도 소작인들은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자기 아들은 존중해주겠지 라는 마음으로 보냈지만, 이 아들만 없애면 포도밭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들까지도 죽여 버립니다.
지금의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파견된 소작인들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들에게 풍요로운 세상을 주신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잘 가꿔서 많은 소출을 내라고 우리를 파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항상 기준이었습니다. 나만 불공평한 처지에 있는 것 같고, 나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고, 나만 행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기 보다는, 그 뜻을 내 안에서 없어지게 합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아들을 없애는 못된 소작인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지요.
나의 기준은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미켈란젤로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일을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먼 훗날, 주님 앞에 떳떳한 마음으로 설 수 있으니까요.
실패는 당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오인숙).
큰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 거기까지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아서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말입니다. 이 말을 보면서, 요즘 사람들의 문제점을 찾게 됩니다. 즉, 요즘 사람들의 문제점은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이 작은 것이 아닐까요? 그의 말처럼 목표를 너무 낮게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표를 100미터로 잡았는데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80미터까지밖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목표를 10미터로 잡고 대충해서 10미터에 도달했습니다. 후자의 사람만이 목표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누가 더 성공에 가까이에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하느님 나라라는 엄청나게 큰 꿈이 있습니다. 이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큰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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