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한 수필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적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아버지에게서 너무 많은 남자와 여자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표현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힘세고 대범하시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만능으로 아주 강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이 일기장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너무나 나약한 마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소극적이 되고 마는 마음, 어려운 상황에 대한 걱정거리로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힘들어 함이 가득 차 있는 일기였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내 자신 역시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내 안의 내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물론 이 간격을 좁히고자 노력하지만 평생가도 완전히 똑같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내면의 자아가 남들에게 비춰지는 것을 벌거벗은 몸이 되는 것처럼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이렇다면 다른 이들은 안 그렇겠습니까? 다른 이들 역시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내면이 분명 다르고, 세상의 사람들이 이 다름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모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온전히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예수님의 숨겨진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모든 것을 다 드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겉모습이 전부라면서 나머지는 다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 사람이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이상한 논리까지도 펼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내가 만나는 모든 이의 외면보다는 내면을 바라보도록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쉽게 판단내리는 것이 아닌, 좀 더 오래 바라보고 그 사람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한 노력과 실천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오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2천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기에, 이제는 내 이웃의 내면을 통해서 더 쉽게 당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주님이 우리 편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던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는 주님을 원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편에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질문은 아닐까요?
이성과 판단력은 천천히 걸어오지만, 편견은 무리 지어 달려온다(장 자크 루소).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종교지도자들....
버릴 수 있는 힘(‘좋은 생각’ 중에서)
플린트는 위렌 버핏의 전용기 조종사로 10년 넘게 일했다.
어느 날 플린트는 자신의 경력과 목표에 대해 버핏과 이야기를 나눴다. 버핏이 말했다. “자네는 목표가 무엇인가?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 스물다섯 가지를 적어 보게.” 플린트는 몇 분에 걸쳐 목록을 완성했다.
“스물다섯 가지를 다 적었으면,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에 동그라미를 쳐 보게.” 플린트는 이내 다섯 가지 목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런 뒤 이렇게 말했다. “아! 이제 제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럼 동그라미 치지 않은 나머지 목표들을 어떻게 할 건가?” “동그라미 친 다섯 가지야말로 제가 집중해야 할 목표입니다. 다섯 가지 목표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스무 가지도 놓칠 수 없으니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노력해 이루어야죠.”
이에 버핏이 말했다. “그게 아니야! 자네는 지금 실수하는 거야. 동그라미 친 다섯 가지 외의 목표는 어떻게든 버려야 할 것이지. 자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목표를 전부 달성하기 전까지는 나머지 스무 가지 목표에 관심도 기울여선 안 되네.”
때론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빠다킹신부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