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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위 asaṁskŗta, 말후구 (4,690)

작성자도문3|작성시간26.06.08|조회수17 목록 댓글 0

 

무위 asaṁskŗta

여래가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깨달아서 얻은 것은 없다.
여래는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을 뿐이다.
따라서 여래가 깨달아서 새롭게 얻은 것도 없고, 새롭게 이야기한 것도 없다.
따라서 여래의 말씀을 관념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들이라고 하는 것들은 가르침이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을 여래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이 경을 어떤 이름으로 받들어 지닐까요?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그대들은 이 이름으로 지니도록 하라.

그러나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다.
여래가 설한 법이 있는가? 여래가 설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가 체험하여 깨달아 가르치신 법을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그것은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성인은 무위 asaṁskŗta로 차별을 보이기 때문이다.
12연기의 유전문을 유위라고 환멸문을 무위라고 한다. 

 

말후구

설봉이 법난을 피하여 깊은 산 속에서 혼자 초암을 짓고 머물 때에 어떤 수좌 두사람이 예배하거늘
설봉선사께서 보시고, 암자문을 열고 나와 “是甚麽 무슨 짓이냐?" 하시니,
수좌도 역시 말하기를, “是甚麽 뭐라고요?”하였다.

그 수좌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다시 이 이야기를 들어 가르침을 청하니, 암두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왜 진작 묻지 않았는가?”
“나와 설봉은 동기생이지만 가르치는 방식은 다르다. 말후구를 알고자 할진대, "只這是(지자시)" 다만 이것이니라. 하시었다.

불법의 궁극적인 한마디는 지견 분별과 언어문자를 여읜 본래심으로 사는 경지를 체득하는 것이다.
만물이 생성하는 것도 마찬가지처럼,
산과 물이 각각 자기의 모양과 색깔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제법실상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말후구는 최후로 불도를 체득하는 한마디로 망상을 자각하는 무념 체험으로 불심의 지혜작용을 살리는 것이다.

불법의 궁극적인 한 말 말후구를 알고자 하는가. 단지 이것뿐이다.

불법의 궁극적인 한마디는 지견 분별과 언어문자를 여읜 본래심으로 사는 경지를 체득하는 것이다.

설두는 ‘궁극적인 한마디. 그대에게 말한다.’
내가 학인들을 위해 설하리라. 밝음과 어둠이 쌍쌍으로 어울리는 시절이다.
차별과 평등, 미혹과 깨달음을 초월한 경지가 설두가 설한 말후구이다.

밝음이 쌍으로 이루어지는 천지 만물이 생성하는 경지와
어둠이 쌍으로 전개되는 만물일체의 절대 평등의 세계를 읊고 있다.
만물이 생성하는 것도 마찬가지처럼, 성장과 모양과 작용은 각기 다른 것이다.

매화와 벚꽃이 다르고 산과 물이 각각 자기의 모양과 색깔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제법실상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똑같은 스승의 문하에서 불법의 대의를 체득했다고 할지라도 설봉은 설봉의 안목이 있고,
암두는 암두의 안목이 있기 때문에 학인을 교화하는 수단은 같지 않다.

‘석가와 달마의 다름도 잘 분별해야 한다’
만물이 각자 되돌아갈 본래의 곳으로 ‘남북동서로 돌아가라’

세상은 무상하지만 지혜를 얻게 되면 세상이 무상하다는 바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그 결과로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즉 세상이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데,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입니다.
‘세상 자체’는 괴로운 것도 즐거운 것도 아닌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그런데 나에 의해 분별된 세상을 실체화시키고 온갖 감정을 쏟아냅니다.

즉, ‘제행’, ‘제법’, ‘일체’는 세상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으로 이해한 세상’입니다.
제행은 내 마음으로 이해한 ‘마음 작용이고, 제법은 내 마음으로 이해한 세상’입니다.

아! 쓸데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하고 자각하는 마음이 바로 본래면목입니다.
자각하는 작용은 불성이고 그러한 체험이 견성이다. 청정심은 자각해야만 나타나며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다.
누구나 중생심을 자각하면 팔정도를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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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봉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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