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
관자재보살은 ‘자기’라고 생각해 왔던 오온 망상이 모두 인연에 따라서 순간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생각일 뿐임을 깨닫고 자기생각에서 생겨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우리의 삶 속에 변함없이 내재하는 고정된 자아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인연을 지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우리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삶을 통해 새로운 오온이 끊임없이 상속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무아라고 한다.
우리의 참모습은 태어나거나 죽는 것이 아니며,
번뇌에 물들거나, 청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며,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 알아야 할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전도된 몽상을 멀리 떠나 구경에 열반을 성취하며, 위 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의 참모습을 알았다면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고, 주객을 분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체라고 생각하고 내 몸을 보살피듯이 다른 사람들을 보살핀다.
아공 법공
제자들이 3가지 초기경전을 듣고 깨달은 것은 불과 3개월이다.
첫 번째, 초전법륜경에서는 쾌락은 무상하고, 고행은 무익하므로 팔정도를 기본으로 한 고락중도,
두 번째, 무아상경에서 고통 받는 자의 주체는 없어 오온무아.
세 번째, 불타오름의 경에서는 인식 대상 그 어느 곳에도 집착할 것이 없다는 법무아이다.
그 다섯 비구들은 세 가지 초기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我와 法에 집착하지 않게 되어 해탈을 성취한다.
중생을 구제하되 한 중생도 구제한 바가 없다는 인무아와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그 어떤 법에도 집착함이 없다는 법무아이다.
중관학파에서는 아공,법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금강경에서 일체의 모든 존재는 독자적인 개체나 자아의 고정된 자성이 없으니
어떤 대상 경계에도 마음으로 집착하거나 머무르지 말라고 하며,
자아의식뿐만 아니라 부처나 보살, 깨달음, 법이라는 방편법문의 언어나 명칭, 제도자 등
어떠한 것도 고정된 법이나 실체가 없다고 ‘무유정법 ‘실무유법’이라 한다.
무실체
모든 존재는 오직 인연조합,연기일 뿐이다. 무자성, 무실체이기에 무상이요, 무아이다.
그러기에 자기중심주의의 독단과 편견을 파괴할 수 있다.
모순과 편견의 갈등 속에서 업을 쌓고
너의 파멸은 나의 승리라고 착각하는 중생의 슬픈 존재양상을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잡아함경에 유와 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두 가지 의지처인데
이러한 두 극단을 떠나 중도가 있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는 까닭에 저것이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이
유와 무, 단과 상이라는 대립된 두 견해를 완전히 떠난 경지, 그 상태를 중도라고 한다.
유와 무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로,
괴로움을 비롯한 모든 현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중도원리는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 등 모순과 대립을 해결해 준다.
그리하여 차별을 평등으로, 모순을 조화로, 대립을 협동으로, 무지를 지혜로 승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중도사상은 상호협조, 평화적 공생공존의 실천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