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가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우리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을 뿐이다. 여래가 새롭게 얻은 것은 없고, 새롭게 이야기한 것도 없으니 불교는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선입견과 집착만 버리라고 한다. "불법들이라는 것은 불법들이 아니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나니, 그래서 말해지기를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실무유법 무유정법을 말하고, 반야심경은 무소득으로 깨닫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한 바 있다" 말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비방하는 일이 된다. 여래가 법을 설한 바 있다고 말하지 말며 그런 생각도 하지 마라. 깨달음이란 것에는 실체가 없다. 깨달음이란, 보배 구슬과 같은 어떤 결과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옹고집 편견 삐뚤어진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상대를 나쁜사람으로 점 찍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엉성한 생각이다. 나쁜 사람도 내가 만들고 좋은 사람도 내가 만든다. '좋다 나쁘다'의 실체도 없다. 세상을 비판하고 나쁘게 보는 것은 자신의 업식이 검기 때문이다. '내 것이다, 내 소유다, 내 생각이 옳다'하는 무명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중생 부처 여래 깨달음 등은 따로 실체가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부친 이름일 뿐이다. 혜능 스님은 반야지를 통해 불법을 ‘곧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조계선풍에 의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초기불교의 니까야와 아함의 말씀을 선정삼매를 강조하는 가르침이 아닌,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 번쇄한 아비달마의 학문적 불교를 벗어나 오온, 십이처, 십팔계를 반야지로 비추어 보아 곧바로 공성 연기성임을 통찰해서 모든 괴로움을 벗어난다는 돈오의 입장에 선다. 점수, 선정, 수증을 배격하고, 곧바로 알아채는 돈오정신으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포섭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서 허망한 생각을 지워버리면 본래 우리의 참모습이다.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니라 자기의 어리석고 허망한 생각이다. 有爲란? 우리의 生死의 괴로움이 어리석음(無明)에서 이치에 맞지 않은 생각인 自我라는 망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망상이 무명에서 조작된 거짓임을 말하기 위해 조작된 것, 즉 有爲라고 불렀다. 無明에서 연기한 허망한 망상, 유전문을 有爲라 했고, 무명 사라져 망상 없앤 진실, 즉 환멸문을 無爲라 한다.-잡아함경(293) 有爲와 無爲는 별개의 존재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진실과 허위에 대한 명칭이다. 따라서 유위를 떠나 무위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生死는 조작된 망상이므로 버려야 할 生死가 없다. 망상을 조작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위이다. 만일 여러분이 화두에 집착한다면 '선병'이라고 불리우는 커다란 병에 걸리게 된다. 화두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손가락에 집착한다면 달을 볼수가 없게 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수행법은 공안을 지닌 채 일상생활을 통해 어떻게 올바르게 행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할때는 그냥 그 것만 하면 된다. 그렇게 행동할 때에 아무 생각이 없게 되고 주체와 객체가 없어진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올바른 화두 수행법이다. 일상생활의 매 순간이 우리의 공안이다. -숭산 온갖 잡생각을 비우고 분별없이 들으면 푸른 산, 바다가 그대로 적멸보궁입니다. -지유 자기 생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라. 마음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가 바로 깨달음이다. ‘아, 내가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구나!’ 자각하고 모든 망상과 집착을 놓아 버린다면 부처님과 똑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생각하는 데 집착하지만 말아요. 생각은 생각, 느낌은 그저 느낌일 뿐입니다. 그것을 건드리지 마세요. 不取於相 如如不動.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여여한 그대로 동요치 말지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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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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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도문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유유
여래가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우리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을 뿐이다.
여래가 새롭게 얻은 것은 없고, 새롭게 이야기한 것도 없으니
불교는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선입견과 집착만 버리라고 한다.
불법들이라는 것은 불법들이 아니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나니,
그래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고 말한다.
금강경에서는 실무유법 무유정법을 말하고, 반야심경은 무소득으로 깨닫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한 바 있다" 말한다면 부처를 비방하는 일이 된다.
여래가 법을 설한 바 있다고 말하지 말며 그런 생각도 하지 마라.
깨달음이란 것에는 실체가 없다.
깨달음이란, 보배 구슬과 같은 어떤 결과물을 얻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옹고집 편견 삐뚤어진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에서 깨어나는 것을 말한다.
'좋다 나쁘다'의 실체도 없다. 세상을 비판하고 나쁘게 보는 것은 자신의 업식이 검기 때문이다.
'내 것이다, 내 소유다, 내 생각이 옳다'하는 무명으로부터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중생 부처 여래 깨달음 등은 따로 실체가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부친 이름일 뿐이다. -
작성자도문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7
유유
만일 여러분이 화두에 집착한다면 '선병'이라고 불리우는 커다란 병에 걸리게 된다.
화두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손가락에 집착한다면 달을 볼수가 없게 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수행법은 공안을 지닌 채 일상생활을 통해
어떻게 올바르게 행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할때는 그냥 그 것만 하면 된다. 그렇게 행동할 때에
아무 생각이 없게 되고 주체와 객체가 없어진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
이것이 올바른 화두 수행법이다. 일상생활의 매 순간이 우리의 공안이다. -숭산
온갖 잡생각을 비우고 분별없이 들으면 푸른 산, 바다가 그대로 적멸보궁입니다. -지유
자기 생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라.
마음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가 바로 깨달음이다.
‘아, 내가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구나!’
자각하고 모든 망상과 집착을 놓아 버린다면 부처님과 똑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생각하는 데 집착하지만 말아요.
생각은 생각, 느낌은 그저 느낌일 뿐입니다. 그것을 건드리지 마세요.
不取於相 如如不動. 어떤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여여한 그대로 동요치 말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