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상
인도철학은 불교를 공사상으로 분류한다.
그들이 연기설을 보면 실체 영혼, 아트만개념이 비어있다.
불교는 자성, 실체, 본성, 자아, 영혼, 진리,아트만 등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가설들이 없다.
공사상이 실체 개념을 부정하는 이유는 그 것은 희론이기 때문이다.
일체법은 12처이다.
주객의 연기로 생성되는 것 고정적, 실체적 본성이 없다.
모든 존재는 생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명에서 벗어나면 존재가 아니고 법이다. 모든 법은 인식일 뿐이다.
따라서 생하고 멸하는 것이 아니며, 상주하거나 단멸하지 않는다.
의에 따라 법이 달라지므로 의와 법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연기하는 하나이다.
무명을 벗어나 주객분별이 사라지고 연기관계임을 알면
주객은 하나가 되고 모든 집착이 사라진다.
열반은 모든 법이 연기하므로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 애탐이 사라지면 고요함이다.
불교를 불교라고 하면 불교가 아니고,
부처를 부처라고 하면 더 이상 부처가 아니다.
불법도 불교도 부처도 이름일 뿐 실체가 아니다
相(samjna산냐)
相(samjna산냐)을 타파해야 한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에서
모든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즉 불법에도 집착하면 안 되고, 불법이라고 고정된 실체도 있지 않다.
불법도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불교도 이름이고, 부처도 이름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실체화될 수 없다.
여래가 체험하여 깨달으신 어떤 법도 없고, 여래가 가르치신 어떤 법도 없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실천적 인식이므로 (개념으로) 파악할 수 없고,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으며, 그것은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가 깨달아서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이 아니다.
여래는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우리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을 뿐이다.
따라서 여래가 깨달아서 새롭게 얻은 것도 없고, 새롭게 이야기한 것도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이야기했고,
불법들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불법들이라고 이야기했다.
따라서 여래의 말씀을 관념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