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의 行은 三行, 즉 身行, 口行, 意行을 의미합니다.
어리석은 無明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삶,
즉 몸과 말과 뜻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몸과 말과 뜻으로 행동할 때,
그 행위의 주체인 作者로서의 自我가 있다고 생각하며 행위합니다.
이것을 <잡아함 57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어리석은 범부는 형상을 지닌 몸(色)을 自我라고 본다.
만약에 자아라고 본다면, 이것을 行이라고 부른다.
그 行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쌓인 것이고,
무엇이 생산한 것이고,무엇이 발전한 것인가?
無明에서 경험해 갈애(愛)가 생기고, 갈애 연하여 그 行이 일어난다.
愚癡無聞凡夫於色見是我。若見我者。是名為行。
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無明觸生愛。緣愛起彼行。
五蘊을 자아라고 생각하면서
갈애를 일으켜 살아가는 삶이 行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삶의 결과가 나와 세계를 분별하여
名色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의식, 즉 識입니다.
이러한 삶에 의하여 개념화된 것이 有爲입니다.
五蘊의 行은 오온을 자아로 보고 살아가면서
유위를 조작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잡아함 46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유위를 조작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行이란 말이 사용된다.
어떤 유위를 조작하는가?
지각하는 성질을 가지고 色이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느끼는 성질을 가지고 受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생각하는 성질을 가지고 想이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유위를 조작하는 성질을 가지고 行이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분별하는 성질을 가지고 識을 조작한다.
오온의 행은 12연기의 구조 속에서 오온의 성질을 취하여
오온이라는 유위로 조작하는 행위를 총칭하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은 이러한 유위를 조작하는 마음이
지속성이 없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중표교수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도문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3 new
유유
참선의 목적은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 것[明心見性]이다. 소위
‘자성을 밝게 깨쳐, 본래 성품을 투철히 보는 것’[明悟自心 徹見本性]이다
達摩 스님이 서쪽(인도)에서 오셔서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不立文字 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한다[見性成佛]’ 하였으니,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한다”
[直指人心 見性成佛]고 하심으로써 대지의 모든 중생이 다 부처임을 아주 분명하게 일러 주셨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것으로 “
(마음을) 쉬면 곧 깨닫는다”[歇卽菩提]고 하신 이 쉴헐 ‘쉼’[歇] 만한 것이 없다.
육조의 “모든 인연을 한꺼번에 쉬어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屛息諸緣 一念不生]
“온갖 인연을 다 놓아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萬緣放下 一念不生]라고도 하신 말씀 만한 것이 없다.
理이치)로써 事(현상)를 除함으로써, 비로소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와 菩提(깨달음), -
작성자도문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3 new
유유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해 왔던 몸, 감정, 이성,
의지, 의식 등이 모두 인연 따라 순간 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생각일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나로 인해서 생겨난
모든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 나타난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은 有爲이고 저열하고
연기한 것이며, 평온하고 훌륭한 것은
평정한 마음이다.’ 이렇게 통찰한다.
그러면 나타난 그 좋은 느낌, 싫은 느낌,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은
소멸하고, 평정한 마음이 확립된다.
망상을 떠나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으니,
이것이 곧 적멸입니다.
자아라는 집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괴롭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도문3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3 new
유유
우리는 몸과 말과 뜻으로 행동할 때,
그 행위의 주체인 作者로서의 自我가 있다고 생각하며 행위합니다.
<잡아함 57경>
어리석은 범부는 형상을 지닌 몸(色)을 自我라고 본다.
만약에 자아라고 본다면, 이것을 行이라고 부른다.
그 行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쌓인 것이고,
무엇이 생산한 것이고,무엇이 발전한 것인가?
無明에서 경험해 갈애(愛)가 생기고, 갈애 연하여 그 行이 일어난다.
五蘊을 자아라고 생각하면서
갈애를 일으켜 살아가는 삶이 行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삶의 결과가 나와 세계를 분별하여
名色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의식, 즉 識입니다.
이러한 삶에 의하여 개념화된 것이 有爲입니다.
五蘊의 行은 오온을 자아로 보고 살아가면서
유위를 조작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잡아함 46경>
유위를 조작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行이란 말이 사용된다.
어떤 유위를 조작하는가?
지각하는 성질을 가지고 色이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느끼는 성질을 가지고 受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생각하는 성질을 가지고 想이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유위를 조작하는 성질을 가지고 行이라는 유위를 조작하고,
분별하는 성질을 가지고 識을 조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