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律論書 3장, 唯識

[스크랩] 무비스님 강설 『임제록(臨濟錄)』 - 감변(勘辨) - 21 나는 처음부터 그를 의심하였다

작성자도문3|작성시간26.06.18|조회수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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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변(勘辨) 21 나는 처음부터 그를 의심하였다
      因普化가 常於街市搖鈴云, 明頭來明頭打하고 暗頭來暗頭打하며 四方八面來旋風打하고 虛空來連架打하노라. 師令侍者去하야 纔見如是道하고 便把住云, 總不與麽來時如何오 普化托開云, 來日에 大悲院裏有齋니라. 侍者回擧似師한대 師云, 我從來로 疑著這漢이로다. 《해석》 보화 스님은 항상 거리에서 요령을 흔들며 말하였다. “밝음으로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두움으로 오면 어두움으로 치며, 사방 팔면으로 오면 회오리바람처럼 치고, 허공으로 오면 도리깨질로 연거푸 친다.” 임제 스님이 시자를 보내며 “보화 스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바로 멱살을 움켜잡고 ‘아무 것도 오지 않을 때는 어찌하십니까?’ 하고 물어 보라.” 하였다. 그대로 하자 보화 스님은 시자를 밀쳐 버리면서, “내일 대비원에서 재가 있느니라.”고 하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리니 임제 스님이 말씀하였다. “나는 벌써부터 그를 의심해 왔다.” 《강설》 명두래 명두타(明頭來 明頭打) 암두래 암두타(暗頭來 暗頭打)는 아주 유명한 선어다. 밝음이란 세상에 공용(功用)도 있고 부처도 있고 중생도 있다는 의미다. 어두움이란 공용이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는 의미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사에서부터 노병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한다. 부처와 조사와 보살과 아라한의 문제라 하더라도, 여래선과 조사선과 향상일로의 문제라 하더라도 누워서 떡 먹듯이 해결한다. 천차만별의 일천칠백 공안뿐만 아니라 일만 칠천공안이라 하더라도 식은 죽 먹기다. “아무런 일이 없고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가히 천길 벼랑에서 사람을 밀어뜨리는 소식이다. 어떻게 감당하는가 다음을 보라. “내일 대비원에 재가 있단다. 재 지내는데 가서 잿밥이나 얻어먹자.” 캬! 이 자리는 불불조조가 숨을 쉬지 못하고 천하 노화상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자리다. 임제 스님이 그를 의심했다는 말은 보화 스님의 견처(見處)와 그가 법을 거량하는 것이 자신을 훨씬 능가하는 대단한 스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누구도 따를 수 없고 가늠할 수도 없는 신묘불측(神妙不測)한 경지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수경전연구회 강좌》 21 나는 처음부터 그를 疑心(의심)하였다 因普化(인보화)가 常於街市搖鈴云(상어가시요령운),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하며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하고 虚空來連架打(허공래연가타)하노라. 師令侍者去(사령시자거)하야 纔見如是道(자견여시도)하고 便把住云(변파주운), 總不與麼來時如何(총불여마래시여하)오 普化托開云(보화탁개운), 來日(내일)에 大悲院裏有齋(대비원리유재)니라. 侍者回擧似師(시자회거사사)한대 師云(사운), 我從來(아종래)로 疑著這漢(의착자한)이로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疑心(의심)하였다.’ 그 놈은, 그 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인 줄 그전부터 내가 짐작했었지, 이런 뜻입니다. ‘因普化(인보화)가’, 보화스님이 ‘常於街市搖鈴云(상어가시요령운)’, 항상 시내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하고’, 밝은 것이 오면 밝은 것으로 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하며’, 어두운 것이 오면 어두운 것으로 치고, ‘四方八面來(사방팔면래)’, 사방팔면에서 오면, ‘旋風打(선풍타)’, 회오리바람으로 치고, ‘虚空來(허공래)하고 連架打(연가타)라’, 허공에서 오면 도리깨로 친다. 연가라고 하는 것은 옛날 시골에서 콩이나 깨 같은 거 털 때 사용하는 농기구예요. 연가타라,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 확 때리잖아요, 그러니까 연가타 하노라, 그랬습니다. ‘師令侍者去(사령시자거)하야’, 師가 시자 시켜서 가 가지고서 ‘纔見如是道(자견여시도)하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는 ‘便把住云(변파주운)’, 곧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總不與麼來時如何(총불여마래시여하)오’, 모두 네가 표현한 것 하고는 전혀 다르게 올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普化托開云(보화탁개운)’, 보화가 밀쳐버리고 말하기를, ‘來日(내일)에 大悲院裏有齋(대비원리유재)니라’, 내일 대비원에서 재가 있다 하더라. ‘侍者回擧似師(시자회거사사)한대’, 시자가 돌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임제스님께 다 했어. ‘師云(사운)’,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我從來(아종래)로’, 내가 그전부터 ‘疑著這漢(의착자한)이로다’, 이놈을 의심했더니라. 이게 아주 좋은 표현이죠. 그 대답을 시자를 시켜서 한번 시험해보라 라고 했는데 ‘내일에 대비원에 재가 있다 하더라’, 이렇게 대답을 하니까 시자가 그대로 가서 이야기했어요. 그래 임제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아, 그러면 그렇지, 역시 보화다’. 이런 속뜻이 있어요. 다음카페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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