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퍼와 돌아보자고 한 것입니다. 여러 불자님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
일송
아래 글은 숭산스님 49재에 송담스님이 법문을 끝내고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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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 스님(한국 스님)] 큰스님, 숭산 스님 제자 도관이라 그럽니다. 개고기를 먹어….
[송담 스님] 하늘에는,
[도관 스님] 개고기를 먹고 공부한
[송담 스님] 하늘에는,
[도관 스님] 스님,
[송담 스님] 해가 하나 밖에 없어
[도관 스님] 한 가지만 묻겠습….
[송담 스님] 한 나라에는!!
[백담사 선원장 스님] 마쳤거니와, 진흙 속에서 제 2구 제 3구를 얻어 무엇하리오? 청기러기는 멀리 북쪽 하늘까지 날아
갔건만, 들새는 둥지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바로(?) 꿇어앉겠는가!
[도관 스님] 오늘 큰스님 법문을 우리 스님이 와서 들으셨습니까, 듣지 않았습니까?
[송담 스님] 하늘에는 해가 하나야, 나라에는 왕이 하나요. 오늘 이 시간은 송담에게 주어진 시간이야. 다른 사람은
여기서 입을 벌리지 말라.
[송담 스님 주장자 한 번 내리치시고 법문 끝을 알리는 목탁, 사부대중 박수] **
은자로 숨어 계시다가 무슨 일로 대중석상에 나와서 법문을 하신 것을 보고 그를 아는 이들은 의아해 했는데 후학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되는 것이 있어 다음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수행자들의 이상형으로 우리도 저렇게 수행했으면 좋겠다는 평판속에 있었을 때는 저분이 보림을
하기 위해서 또 푹 익어져서 큰 스승으로 나투시려고 그러시나보다하고 합리적이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그분의 나이 78세에 거의 세존의 입멸시기에 가까운 나이인데 푹익어져나온 수행자라고 믿었던 스님께서
제자뻘 되는 젊은수좌가 비록 헛소리라고 하더라도 법상에 앉아서 대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30년 전에 믿었던 그런
스님이 아닌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다.
물론 송담스님 개인으로는 문제될 것이 전혀 없는 분이다. 문제는 후학들이 너무 수행자의 표상으로 생각했던 그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이 문제이다. 한국에서 견성이니 인가니 해서 얻었다고 하는 분들이 무엇을 견성이라고 경험해서
지금까지 지켜왔길래 스승으로서 후학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 그이들이 경험한 견성은 과연 옛사람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스승과 제자사이에 특별한 인연에 의해서 두사람만의 신뢰속에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갖추어진 것을 보고
인가란 말을 써서 옛사람들의 그것과 같이 놓아 몇대 조사니 선맥을 이었느니 그런 얼투당토 않는 법을 빙자한 인가법은
그 실체가 드러난듯 하다.
오래전에 통도사 극락암 경봉선사 회상에서 어떤 납자가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선사는 대뜸 지금 네 발바닥을
한 번 만져봐라 하시니 물었던 납자는 즉시 참회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정진하는 태도를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법상에서
일어난 일은 그 법좌는 나에게 주어진 자리다. 또 하늘에는 태양이 하나다, 하시면서 묻는 자가 설사 얼토당토않는 질문
이라 하더라도 스승으로서 그렇게 해야 되었었는가.
그리고 덧붙여서 오래전에 송담스님의 시봉을 지냈던 백담사 선원장 스님께서 선문에서 익혀진 글을지어 묻는 납자를 주저
않히고 또 송담선사께서는 입을 벌리지 말라 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셨는데 옛사람들과 지금은 이렇게 달라야만 되는가.
이 글을 읽고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견성을 바로 했으면 그 성품에 얼토당토않는 질문도 비추고 바른 소견도 비추고 거기
에 맞는 선지가 나와 그릇된 자의 견해를 자각으로 이끌어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묻는자의 입을 막는 것을 보면 스승
으로서 그자리에 나온 사람이 아니고 묻는 자와 스승이나 같은 계열에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자리를 침범하지 마라, 이 소리
인데 성품을 본 사람이 무엇을 지키고 있길래 이런 말이 나오는지.
그동안 숨어서 살아오신 것이 한 개인의 성격과 생활패턴이지 법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분명하다. 그래서 너무 숨으려고
하면 드러나는 것이고 너무 드러내려고하면 어두어지는 것인데 둘다 우리에 있는 본성하고는 먼 일들이다. 법이란 것이
생활따로 있고 법따로 있는가. 우리는 다시 발심돈발하여 옛선맥을 되찾아야할 때라고 본다.
허구적인 인가병에 떨어져서 사람속에 군림하는 것은 분명히 불법의 정체가 될 수가 없다. 불법이 어느 집단의 나눠어
먹기식의 가풍속에 감추어진 것인가 되돌아 본다.
물론 저런 어른들의 모범된 수행태도와 수행력에 의해서 후학들이 의지를 하고 기반을 닦는데 큰 역할을 하신 어른들이신
건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옛사람들이 가셨다고 해서 요즈음 시대에 정체성이 불확실한 인가법과 정법을 내세운
것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가는 한계는 우리들의 생각들을 고쳐잡아야 할 때라고 본다.
물론 스승자리에 있으신 분 자신은 겸손하시고 스승의 자격이 없다고 겸양지덕을 내보이시지만 어느 회상속에 어른으로
있는 것은 스승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남기고 싶은 것은 스승들 주변에 보디가드처럼 뭐 집지키는 세파트
처럼 둘러쌓여서 법을 보호한다고 서성거리는 것을 보면 그것도 탈속한 사문의 집안에 안맞는 짓들이다. 왜 이 좋은 공부를
했으면 그렇게 살아야 되는가. 조금 더 사문으로서 자신에게 가식없는 진실로 돌아갔으면 옛부처가 좋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