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4강을 마지막으로 2015년 2학기 강의가 마무리되었다. 열심히 가르쳐 준 신교수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학기동안 즐겁게 잘 배웠습니다. 방학기간동안 칠언절구가 가장 외우기 쉬운 시라고 하면서 50수정도를 암기하라는 숙제도 내어 주셨습니다. 내년 봄학기 많은 수강생들이 많은 수의 시를 암기하여 올것으로 기대하면서 종강의 변을 마칩니다. 이동민박사의 추가 말씀은 지공도사들은 이 숙제를 면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신교수님에게 감사드리며 더욱건승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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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강 2015. 12. 10. 당시강의
263. 芙蓉樓送辛漸-王昌齡, 264. 涼州詞-王翰, 265.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李白 266. 早發白帝城-李白
263.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왕창령(王昌齡;698-755?)
寒雨連江夜入吳 차가운 비 강에 가득 내리는 밤 내 친구 신점이 오나라 땅에 들어와
平明送客楚山孤 날이 훤이 밝자 손님(신점)을 보내니 초땅의 산도 외로워 보이네
洛陽親友如相問 낙양 친구들 만약 내 안부 물어보면
一片冰心在玉壺 한 조각 얼음같은 마음 옥병 속에 있다고 전해주게나
*2013년 6월 27일 부터 30일 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 때 시징핑주석이 경덕진의 도자기와 왕지환의 登觀雀樓 5언절구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중 3, 4구를 적은 서예작품을 선사받고 청화대학에서 특강을 중국말로 하여 대단히 인기를 얻었는데 중국철학사를 지은 풍우란(馮友蘭, 1894년~1990년)이 청화대학교수로 있었던 것을 말하여 풍우란이 직접 쓴 당시중 ”芙蓉樓送辛漸“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작품은 국보급에 속하는 것이라고 한다. 박대통령의 인기가 좋아 중국에는 박사모 클럽이있다고 한다. *連江=滿江, 강을 따라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 *冰心: 얼음같은 마음, “중공의 초기 최고여류작가이름도 冰心“ *부용루는 강소성 장강 서북쪽에 있다. *王昌齡이 낙양으로 떠나가기 전에 辛漸이 인사차 왔을 때 지은 시이다. *詩經에 시는 知其所止也(머무는 곳을 안다) 라고 했다. |
264. 양주사(涼州詞)-왕한(王翰)
葡萄美酒夜光杯 야광배 술잔에 맛 나는 포도주
欲飮琵琶馬上催 마시려니 말위의 비파가 재촉한디
醉臥沙場君莫笑 취하여 전쟁터(모랫벌)에 쓰러져도 그대는 비웃지 말라
古來征戰幾人回! 예부터 전쟁에 나아가 몇 사람이나 돌아왔던고
*邊塞詩(변새시): 王翰의 凉州詞와 王維의 謂城曲이 유명함. *王翰: 山西省 太原市사람 진사에 급제하여 秘書正子를 지내면서 [直言極諫]을 하였다. *凉州: 漢나라 군현주때 凉州를 雍州로 바꾸었다. *夜光杯: 주나라 穆王때 서역에서 옥을 자를 수 있는 칼과 밤에 빛나는 술잔을 받았다. *琵琶: 줄이 4줄이고 받침대가 12개가 기본인 악기, 枇杷라고도 쓴다. *비파는 악기가 작아서 말위에서도 연주 할 수 있고 등뒤로 돌려서 연주할 수있다. (돈황의 벽화에 그림이 그려져있다) 돈황 곳곳에 이러한 동상들이 세워져있다. *이시는 [及時行樂] 때맞추어 놀아라는 뜻을 담고 있다. *沙場: 전쟁터를 의미함 *頓挫得法: 이시의 작법으로 “변화가 심한 법”으로 시작함 *보통 칠언절구는 4자끈고 3자로 해석을 하지만 이시는 앞에 두글자를 끈고 뒤에 5글자로 해석하는 “上二下五“로 전체가 전쟁을 반대하는 뜻을 담고 있다. |
쉬는 시간에 동양고전강의실 벽에 붙은 시판을 읽었다. 초서로 써놓은 글씨가 다음글자와 같다니 초서는 암호와 같다.
絶句 - 杜甫
兩箇黃鸝鳴翠柳(양개황리명취류) : 푸른 버드나무 사이에 두마리 꾀꼬리 울고
一行白鷺上靑天(일행백로상청천) : 백로는 푸른 하늘 위를 줄지어 난다
牕含西嶺千秋雪(창함서령천추설) : 창 너머 서쪽 산봉우리엔 천년 묵은 눈
門泊東吳萬里船(문박동오만리선) : 문 밖에는 머나먼 동오로 떠날 배가 있다
265.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이백(李白;701-762)
故人西辭黃鶴樓 황학루에서 친구를 서쪽으로 보내고
煙花三月下揚州 아지랑이 오르고 꽃 가득한 삼월에 양주로 간다네
孤帆遠影碧空盡 외로운 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멀어지고
惟見長江天際流 오직 장강만 먼 하늘 끝으로 흘러간다
*이백이 황학루에 와서 최호의 황학루시판을 보고 이보다 더 좋은 시를 지을 수없다고 하여 황학루에 대한 시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데 최호의 황학루가 칠언율시의 대표으로 손꼽히고 있다. 黃鶴樓(황학루) - 崔 灝 (최호) 昔人已乘黃鶴去 옛 사람 황학 타고 이미 가버려 此地空餘黃鶴樓 땅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 한번 간 황학은 다시 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흰구름 천 년을 유유히 떠 있네 晴川歷歷漢陽樹 개인 날 강에 뚜렷한 나무 그늘 春草處處鸚鵡洲 앵무주에는 봄 풀들만 무성하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인가 煙波江上使人愁 강의 물안개에 시름만 깊어지네 ------------------------ *황학루에 대한 시는 짓지않았으나 호북성 황학루에서 남경으로 가는 맹호연을 전송하며 지은시이다. *作意: 첫구에 길떠나는 사람은 장강의 동쪽으로 내려가니 서쪽에서 떠난다고 하고 송별할 때 장소가 황학루라 하고 제이구는 시기가 음력 3월이라하고 종착지는 양주임을 밝히고 있다. 제삼구에는 이별의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제4구에는 격물을 그릴수는 있으나 이별의 정을 풀어내기 어려움을 묘사하고 있다. |
266.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백(李白;701-762)
朝辭白帝彩雲間 아침 노을 낀 백제성을 떠나
千里江陵一日還 천리 먼 강릉까지 하루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 양편 강 언덕엔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고
輕舟已過萬重山 내가 탄 빠른 배는 벌써 첩첩한 산을 지나왔네
*이백의 일생은 파란만장하다고 할 수 있다. 무척 벼슬하기 원했으나 742년 42세때 오균의 추천으로 벼슬을 얻었으나 오래 하지 못하고 44세에 그만두고 방랑생활을 하다가 755년(天寶 14) 11월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고, 12월 뤄양이 함락되었다. 이듬해 6월에는 장안이 함락되고, 현종은 촉으로 피신했으며, 황태자[肅宗]가 영무(靈武:닝샤후이족 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에서 즉위했다. 당시 이백은 양쯔 강을 따라 선성(宣城:지금의 안후이 성[安徽省]에 있음) 각지를 떠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장안이 함락된 56세의 겨울, 루산 산[盧山]에 은거하고 있던 그는 현종의 아들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수군에 막료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이백은 안녹산을 토벌하기 위해 참가했다. 그러나 황실 내부의 분쟁으로 영왕의 군대는 적군(賊軍)으로 간주되었고 영왕은 살해되었으며, 이백도 체포되어 심양(지금의 장시성 주장시)의 감옥에 갇혔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단 석방되었으나, 대역죄가 추가되어 결국 멀리 야랑(夜郞:지금의 구이저우 성[貴州省] 서북부)으로 유배되었다. 759년(乾元 2년) 3월 야랑으로 가던 도중 양쯔 강 상류의 백제성(白帝城)을 지나면서 사면 통지를 받게 되었다. 이때 지은 시가 바로 이 “조발백제성“이다. 장강의 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험한 길을 배를 타고 오르고 오르고 가다가 장강삼협 백제성에 도착하였는데 사면령이 떨어졌다. 사면령을 받았으니 그 마음이 들떠고 기뻐했을까? 그러하니“ 千里江陵一日還“ 천리가 되는 강릉(호북성 荊州 안에 강릉현)에 하루만에 도착했다고 한 것이다. 빠른 물살을 거스려 오르다가 거꾸로 배를 타고 내려오니 그 흐름이 얼마나 빠르고 그리고 마음속은 더욱더 빨리 느껴졌을 것이다. 귀양지로 떠나갈 때 들리지도 않았던 원숭이 소리가 들리고 이제는 마음과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 이 시가 칠언절구의 압권이라하며 최호의 황학루가 칠언율시의 대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