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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 둘러보기

작성자이귀옥|작성시간14.07.02|조회수156 목록 댓글 0

부인사의 창건은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백제 의자왕의 공격을 받은 신라가 40여 개의 성을 빼앗기고

제일 요충지인 대야성(현 합천)마저 함락 당하자

여왕이 친히 신라 5악 중 중악인 팔공산에 와서 기도를 하였다는 데  

도인이 나타나 이 곳에 절을 지어 국난을 물리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라고 하였다.

이에 황룡사 9층목탑을 건립하고  한 해 뒤 부인사를 창건하게 된 것이다.(644년)

전성기의 부인사는 39동의 부속 암자에 2천 여명의 승려가 수도 하였다고 한다.

 

符仁寺

대구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이기도 한 부인사(符仁寺,符印寺혹은夫人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지 못한다

이 절이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전혀 언급이 없다고 하고

예부터 선덕여왕 사당인善德廟(崇慕殿)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짐작할 뿐이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각들은 명부전(구대웅전터),대웅전,삼성각,삼광루,숭모전,현음각(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부인사지는 대구 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고.

문화재로는 신라시대의 당간지주, 부인사 일명암지 석등 (제22호),

부인사 석등(제16호),부인사 서탑(제17호)신무동마애불좌상(제18호),

부인사 뒤 삼성암지 마애약사여재좌상(제21호)

부인사 부도(符仁寺 浮屠, 유형문화재 제28호),배례석(拜禮石) 등이 있다.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현 숭모전)는 평시에는 개방하지 않고

해마다 음력 3월보름이면 선덕여왕 숭모대제를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인 승가시장이 섰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천 년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원형 그대로의 석축

 

 

 

부인사는 고려 현종 대인 1011년  만들어 진 초조 대장경이 1132년 흥왕사로 부터 옮겨 와 봉안되어 있었으나

1232년 몽고의 제 2차 침입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 

 

 

초조대장경 봉안처를 찾으려고 세 차례나 발굴 조사하였는 데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석등 앞 배례석

 

보리수 나무

 

보리수 나무 열매

 

 

 

 

 부인사 대웅전의 주련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십방중)  부처님의 몸이 시방세계에 두루하사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모든 부처님 한결 같으시니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넓고 크신 원력 구름같이 다함이 없다.

汪洋覺海渺難窮 (왕양각해묘난궁)  넓고 넓은 깨달음 바다 아득하여 끝이 없으니

謂慈容難得見 (막위자용난득견)  자비하신 부처님 모습 뵈옵기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不離祇園大道場 (불이기원대도량) 기원정사 떠나지 않고 항상 이 대도량에 나투시나니.

 

 

 

 

 

 명부전의 주련

掌上明珠一顆寒 (장상명주일과한) 손바닥 위 한 개의 밝고 영롱한 구슬

自然隨色辨來端 (자연수색변래단) 자연스럽게 색깔 따라 다가온 것 구별하네

幾回提起親分付 (기회제기친분부) 몇 차례나 친절히 전해 주었건만

暗室兒孫向外看 (암실아손향외간) 어두운 방의 아이들은 밖을 향해 찾고 있네

 

 

 

 

 

 

 

 

 

 

 

 

 

대웅전의 아름다운 문살 문양

 

 

 

 

 

 

 

 

 

 

 

 

 

 

 

 

어느 시기의 것 인지 알 수 없는 대형 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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