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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

모신신앙(110 -여와(女蝸) 할머니

작성자촌사람|작성시간14.06.26|조회수229 목록 댓글 0

                                         여와(女蝸) 할머니

 중국의 신화에 복희와 여와라고 하는 계열의 신화가 있다. 여와는 누구일까? 여와에 대한 신화도 종류가 다양하고, 이야기도 아주 다양하다. 여와의 모습도 신화에 따라서 다르다. 공통점이라면 여자이고,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였다. 한묘에 출토된 화상석에는 복회와 여자의 몸이 뱀의 형상으로 서로 꼬여 있어서 교미를 하는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복희는 태양신으로서 남자이고, 여와는 달의 신으로서 여자이다. 복희의 부인이 여와라고 하였다.

 먼저, 여와의 몸이 뱀이라는 것은 여와가 뱀 혹은 뱀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동물을 토템으로 하는 씨족이나 부족의 시조(시조모)일 가능성이 많다.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종족도 가장 오래 된 신화들에는 뱀과 물과 흙이 함께 결합된 것이 많다. 이때의 뱀 숭배는 모계 씨족 사회 시기에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시조모 숭배와 관계가 깊다 한다. 또 뱀은 언제나 토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땅의 힘을 표시하고 있다.

 

 여와의 출생을 언급한 ‘포박자’에서는 女와地出이라고 표현한 것도 땅과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와를 땅과 물과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신으로 보고 있는 학자도 있다. 손작운 같은 이는 아예 여와를 중국의 중원(황허의 중상류 유역으로 고대 중국 문명의 발상지)에 자리잡은 夏종족 중에 뱀을 토템으로 하는 씨족의 대부족장이거나 또는 대우(大禹)--하의 시조)의 부인으로서 후대의 사람으로부터 여시조(先妣 )로 숭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더 고대 사회까지 유추해보면 ‘와’라는 말은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 ‘와’와 같은 발음을 내는 여러 말들을 생각해보면 최초의 여와는 습기가 많은 늪지대에 살면서 온몸에 윤기가 나는 생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른다면 여와는 말 그대로 파충류 계통의 생물을 토템으로 하는 씨족의 여신이거나, 뱀의 여신이었을 것이다.(일반적으로 고대사회의 종교로 유추한다면 뱀신을 모시는 여사제일 가능성이 있음)

 

 하루에 칠십번이나 화육생성(化肉生成)한다’는 여와에 대한 설명은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뱀의 속성을 비유하는 것으로서 바로 농경의례와 관련이 깊다. ‘와’라는 말도 물에 사는 개구리 내지 두꺼비류로서 비와 관계가 있다. 왕충(漢나라 때의 학자)에 의하면 기우제는 여와가 처음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와의 탄생지는 중국의 서남쪽 지역인 벼농사를 짓는 지역으로서 ‘굴가령 문화’를 일으킨 부족이 살던 지역이다.

 

‘복희여와’ 화상석에서 보듯이 중국민족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긴 과정에서 복희씨족과 융합하는 과정을 거쳐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에 복희씨족과 여와씨족은 중국의 여러지역의 토템과 신화를 흡수하면서 여와의 모습도 복잡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그런데도 뱀이 몸은 바뀌지 않았다. 이는 여러부족을 통합할 때도 뱀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중심이 되어서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와는 모신으로서 출산성과 생산성의 특질을 가지므로 인류 창조라는 크나큰 과업을 떠맡게 된다. 복희와 더불어 혼인제도를 위시하여 인간의 탄생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되고, 시범적으로 자신이 부부가 된다.

 

 이로서 여와는 중국의 상고(上古)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여신이 되었다. 때문에 복희의 부인으로 일컫을 뿐아니라 하의 시조인 우의 부인으로, 또 지하를 다스리는 여신으로, 달의 신으로, 호로(葫蘆)도 여와라고 생각하였다. 더 나아가 순의 부인도, 염제의 어머니도 여와라고 하였다.

 이것은 상고시대에 아주 인기가 높아서 자기의 부족 위상을 높이려고 할 때는 여와를 차용해 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와신화가 세월을 타고 중국의 광범한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족들은 중국이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 신을 모시는 부족이 중심 역할을 하였음을 뜻하기도 한다.

 

 가장 오래된 신화계통에는 뱀과 흙과 물은 함께 결합되어 있다. 뱀의 숭배는 모계사회(농경사회)에서 시조모를 숭배하던 사상과 관련이 깊다. 뱀은 언제나 토지와 관련이 깊다. 여와의 출생을 언급한 ‘표박자’에는 女와地出(여와지출)이라고 하여 여와가 땅에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언어학적으로도 와는 ‘이리저리 구부러진’ 또는 비뚤어진 얼굴‘이라는 뜻을 가진 말과 동의음이다. 넘쳐나다(溢)라는 말과도 동음(同音)이다. 따라서 중국 남부의 습지에 살고 있는 와녀신이거나 사녀신(蛇女神)이었으리라고 한다. 따라서 물, 비와 관련이 깊다.

한나라 때의 학자 왕충은 ‘기우제를 여와에게 올렸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요약하면, 여와는 죽으면 다시 소생을 하는 농업신이었을 것이고,(고대 신화에는 뱀은 껍질을 벗으면 새롭게 산다(부활) 하여 영생불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농업지대에서 숭배하던 토지신 즉 대지모신이었을 것이다.

 발원지는 중국의 서남부인 굴가령으로서, 벼농사를 짓는 농업지대 이다.

 

 여기서 우리는 재생과 부활을 주재하던 이시스 여신과 동일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생산을 주재하다보니 인류의 창조라는 위대한 역할도 그에게 맡겼을 것이다. (신화의 분류에서...) 그 인류를 흙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들었다는 것과 서로 맥이 통한다.

 중국 신화에서 여와는 달의 신인 상아(女常娥)와 동일 신으로 본다. 상아는 뱀신으로서 동이족이 숭배하던 토템이라고 말한다. 신선사상이 유행하면서 돌이 한 번 소멸한 후에 다시 재생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뱀의 재생과 연계시켰고, 나아가서 불사와 관련지었다. 복희여와 신화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신선사상과 결합되어 신선의 불노장생 사상이 불사약과 관련되는 신화로 태어났다. 후대에 이르면 신선사상에서 말하는 서쪽 선륜산의 서왕모가 여와와 동일 인물로 말한다. 서왕모가 처음으로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은 한나라 때 저술한 산해경이므로 서왕모 이야기도 한 나라 때 나타난 신화이다.

 서왕모의 모습은 표범의 꼬리, 호랑이 잇빨을 하고 머리는 봉두난발을 하였다. 괴성을 지르면서 돌아다녔다. 질병과 형벌을 관장하는 무서운 신이었다. 형상의 표현으로 보아서는 한 나라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고대신이고, 원시신의 속성을 지녔다. 서왕모는 질병과 형벌을 주재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뻬앗을 수 있었다.

 여아와 달의 신인 상아, 그리고 서왕모는 동일신으로서 뿌리가 달의 신이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주관하면서 달의 생성-소멸 주기와 견주어서 죽음과 생명은 동일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불사약 신화도 달이 소멸하였다는 소생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신화이다.

 서왕모는 달의 신인이 후대에 와서 변형을 한 신화의 인물이라고 한다. 후대에 신선사상이 유행하면서 불사와 관곌를 맺는다. 곤륜산에는 선화(善禾) 또는 삼주수(三珠樹)라는 불사이 나무가 있다.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을 얻는다.(또 다른 이야기에는 영생을 얻는 샘물이 있어서 그 물을 마신다. 라고 하였다.) 서왕모는 이 나무의 열매로 불사약을 만들었다. 한 대의 화상석에 조각된 서왕모의 그림에는 시종이 나뭇가지를 들고 옆에 서 있다. 이것이 바로 불사의 나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원래는 천신이었으나 하늘 나라에서 죄를 짓고 인간으로 이 세상에 내려와 있는 예는 천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불사의 염원을 하였다. 인간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였으므로 서왕모는 이를 기특하게 여기고 예에게 불사약을 선물하였다. 예의 아내인 항아도 남편을 따라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면서 불사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예가 얻어 온 불사약을 남편 모래 모두 먹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하늘로 둥둥 떠올랐다. 신선이 된 것이다. 그는 달로 도망을 갔다. 달에 도착하자 그의 몸은 두꺼비로 변하였다. 이것이 항아가 달로 도망을 갔다는 전설이다. 여기서 항아는 곧 상아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여와는 태양신인 복희의 부인이다. 복희는 양(陽)으로서 정기를 신(神)이라고 하였다. 여와는 음(陰)으로서 그 정기를 영(靈)이라고 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세상 만사의 근원을 신령(神靈)으로 보았다. 해와 달을 음양이론으로 설명하면서 남, 녀의 교합형상으로 복희여와로 표현하였다. 고대 중국인이 남긴 복희여와 교합상은 이런 사유에 의하여 그려졌다.

 중국에서는 태양을 상징하는 오(烏(새=삼족오)와 조(鳥=새)는 남자 성기를 말하는 은어이다. 또한 달은 상징하는 두꺼비, 조개, 토끼는 여자의 성기를 말하는 은어이다. 남, 녀의 성결합이 우주 만물의 탄생을 은유적으로 말한다. 여와는 달의 신인 동시에 가뭄을 일으키는 신인 한발과 동일신으로 인식한다. 이것도 고대신의 속성인 양면성의 표현일 것이다. 가뭄이 들거나 그 해의 풍년을 기원할 때는 여와를 모신 신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상나라 때는 신당을 뽕밭에 두었고, 초나라에서는 물가에 두었다.

 

 여와 신화는 인간을 창조했고, 천지를 새롭게 만들어 낸(여와보천) 청조신이다. 따라서 천신(天神)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인에게 뽕나무는 토지신격이기도 한 신성한 나무이다. 포악한 군주인 걸(하왕조의 마지막 왕으로서 전설적 인물이다.)은 백성들에게 많은 교통을 주었다. 선한 왕이었던 탕(상나라 건국 왕)왕을 도운 이윤의 탄생은 뽕나무와 관곋있다. 지방 제후의 딸이 뽕밭에 뽕을 따러 갔다. 속이 텅 빈 뽕나무에서 사내 아이를 발견하였다. 집에 데리고 와서 양육하였더니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서 나라 안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탕왕은 이윤으로 불리는 이 사람을 정중히 모셔와서 걸을 물리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다. 탕왕은 통치 중에도 나라에 흉년이 들거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뽕나무 밭으로 가서 꿀어 앉아 자신이 잘못하였다고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이것은 고대 풍습에서 나라가 잘못되면 군주가 처벌을 받았던 전통을 재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부족의 지도자가 희생제물로 바쳐졌던 일을 제례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속이 빈 뽕나무에서 이윤이 태어난 것과 탕왕이 뽕나무 밭에서 자신의 희생제의적인 기도를 올린 것은 죽음과 재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의례적 행위였다. 신성한 나무 즉 수목신앙의 형태이지만 뽕나무는 탄생과 관련이 있다. 탄생과 연관된 신화에는 뽕나무가 등장한다.

 

 동쪽 하늘에서 매일 떠오르는 태양은 동방의 바다 밖에 있는 탕곡(湯谷)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곳에는 태양이 목욕을 함으로 바다가 뜨거운 열로 부글부글 끓었다. 탕곡의 한 가운데에는 부상(扶桑)이라는 아주 큰 뽕나무가 있었다. 부상목의 나뭇가지에는 열 개의 태양이 달려 있었다. 아홉 개는 아래 가지에, 한 개는 윗족 가지에서 아침이면 하늘로 떠 올랐다. 태양이 떠 오를 때는 부상목의 꼭대기 앉아 있는 옥계(玉鷄=닭)가 날개를 퍼덕이면서 꼬기오 하고 울었다. 옥계가 울면 도도산의 큰 복숭아 나부에 앉아 있던 금계가 운다. 금계가 울면 명산대천에 있는 석계가 따라 울었다. 그러면 뒤 따라서 온 세상에 있는 닭들이 울었다. 닭 울음 소리가 들리면 세상의 온갖 귀신들이 도도산에 있는 귀문으로 모여 들었다.

 중국신화에서 부상목은 즉, 뽕나무는 하루가 시작하는 장소이고, 나아가서 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성한 나무이다. 천지창조와 관련이 있다.

 부상목에서 떠 오른 태양이 너무 낮게 지나가거나, 동시에 여러 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이 세상에는 가뭄이 든다고 하였다. 가뭄이 심하면 땅은 태양의 열기로 바싹바싹 타들어 가고, 사람들은 땅이 메말라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가뭄이 심하면 들판에 깃발을 높이 세우고 종을 차면서 왕궁 근처의 낮은 산으로 몰려 갔다. 들판에는 여축이 가뭄의 신인 한발로 분장하고 가마 안에 앉아 있었다. 열기 때문에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입으로는 쉬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낮은 산에 도착한 사람들은 종을 치면서 떠들썩하게 춤을 추었다. 가뭄을 거두어 달라는 의식인 것이다.

 

 사람들은 가마 안에 앉아 있는 여축을 데리고 와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게 한다. 여축은 불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받으며 앉아 있는다. 여축이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가 거두어지지 않으면 여축은 기진하여 목숨을 잃는다. 곰곰이 살펴보면 옛날에 나라에 재앙이 닥치면 군주가 희생제물로 바쳐지던 유풍이 여축(무축이라고도 하며, 무당을 일컫는다고 한다.)을 왕의 대리인으로 제물로 바쳐지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산해경의 기록이다. 기우제를 지내던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무당을 햇볕 속에 앉혀두고 주문을 외우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또 하나는 무당을 땔나무를 쌓아 두고, 위에 앉혀서 불을 지피기도 하였다. 달의 신 상아가 가뭄을 다스리기도 함으로 상아는 가문의 신 한발이기도 하다.

 산해경의 기록은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신화(神話)가 신선사상과 습합하면서 선화(仙話)와 습합되는 양상을 보인다. 산화경의 기록은 가뭄이 심하였을 때 여자 무당이 기우제를 올리는 광경을 기술하였다. 제사의례가 신화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준다.

 

 신화는 본래 원시인들이 상상해낸 낸 이야기가 뿌리이다. 그러허다고 하여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의 인간생활이 바탕에 깔려 있다. 신화와 원시종교가 발생하는 기초에는 원시인이 자연의 힘에 대한 숭배와 두려움이 깔려 있다. 자연의 힘을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바탕에 깔려 있다.

 신화는 구전되어 오다가 어느 시기에 이르면 기록된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나고, 각색이 된다. 고대사회의 통치자와 종교 지도자가 신화 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유형의 이야기로 바뀌어 진다. 영웅신화가 탄생하기도 한다. 후예의 신화가 좋은 보기이다. 항아를 통해서 달에 대한 재해석이 나타난다.

 산해경을 기록한 시대에는 주술을 베푸는 무당도 결국은 가뭄을 이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 한다. 이 이야기는 이 시대에 (한 나라 때이다.) 무당에 의한 주술적 방법에 사람들이 회의를 가졌음을 말한다. 시대의 사고 방식이 신화소에 첨가되어서 무당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시대 상황이 기록의 순간에 신화 형태에 변화를 준다고 믿는다.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라는 주술적 방법에 의존하기 보다는 예라는 인간 영웅에게 의존하려고 하였다. 중국의 우와 곤의 신화는 인간 영웅에 의한 치수사업으로 농경을 하였던 것을 말한다 우와 곤의 이야기를 하는 시대가 되면 서왕모는 기괴한 형상으로 무서움을 주눈 고대신에서 도덕적으로 무장한 신선세계의 우두머리로 새롭게 탄생한다.

 그렇더라도 토지신, 뽕나무, 성결혼으로 말해지는 전통적인 유풍도 그 생명력을 결코 잃지 않는다. 오늘까지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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