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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

중국미술(7) - 중국문화의 기원 - 용과 호랑이

작성자촌사람|작성시간21.03.06|조회수322 목록 댓글 5

중국문화의 기원 - 용과 호랑이

  (조개로 만든 용과 호랑이 사진)

 

 호남성에서 약 6000년 전의 무덤을 발굴하자 시신의 좌우에 조개 껍질로 호랑이와 용의 형상을 표현한 유물이 나왔다. 중국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용이라고 한다. (*조개도 중국에서 최초의 화폐로 사용할 만큼 귀중품이다.) (*귀중품으로 장식한 무덤이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이미 지배층 내지 지도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전설> -- 황제가 선정을 베풀고, 말년에 이르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왔다. 황제는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황제가 승천한 곳을 하남성 영보시라고도 하고, 절강성

   진운현이라고도 한다. (하남성, 절강성 등 남쪽 지역이 용문화의 발상지라는 뜻이다.)

 

용(龍)

중국에서 용은 원시시대부터 숭배의 대상이었다. 용은 각종 수족水族(주로 양자악揚子鰐․뱀․거북 등)을 주체로 하며, 새와 짐승을 복합하여 토템으로 삼는 씨족 혹은 부족의 휘지이다. 상형문자의 용자를 분석해보면 용은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원형이 악어류가 아닌가고 본다.

원시시대부터 龍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뱀이 아니다.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용과 뱀의 상형자는 분명히 다르다. 이 시대의(상대) 유물에서 용 문양과 함께 조(=祖-且)가 나타남으로 ‘남성 숭배’와 관계 있다고 본다. 봉조 숭배 시기에는 문양에 且(또 차, 남근을 상징한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원시적인 용은 만악灣鰐·양자악揚子鰐, 즉 중화 타룡鼉龍이다. 상대商代 도상圖象에 나타난 용의 형상은 바로 만악灣鰐·양자악揚子鰐의 형상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용이란 비늘달린 충虫의 우두머리이다. 능히 숨기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며, 혹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고, 혹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는데 춘분에는 하늘을 날며, 추분에는 연못으로 들어간다.(龍, 鱗虫之長, 能幽能明, 能大能小, 能短能長, 春分而登天, 秋分而入淵.)고 설명하고 있다.

 

 상대商代의 용자는 본래의 용과 무기 도구의 복합적인 형태로 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즉 용족의 족휘는 용 자체의 형상을 취한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복합성 족휘이며, 이로써 용숭배의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시기 이전의 황제시대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동서연맹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연맹의 주체는, 동방은 봉(鳳)토템의 동이(東夷)이고, 서방은 용토템의 서하西夏이다. 동이는 최고 토템을 장악한 봉조씨의 소호少皞를 대표로 하고, 서방은 최고 토템을 장악한 황룡씨의 황제를 대표로 한다.(중국문화의 기원에서 호랑이보다는 봉(새)의 영향이 훨씬 더 크다.)

 

 태고시대부터 강회 지역은 아열대 기후로서 못과 늪이 많았다. 바다에 가깝고 산에는 숲이 무성했으며, 비가 많이 내려 뱀과 악어류가 많았다. 복희씨족이 바로 이런 곳에서 생활하면서 어렵, 목축생활을 했다.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을 일찍부터 길렀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악어류의 머리가 소나 돼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우(夔牛)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뇌우와도 관계가 있어서 복희족의 토템이 되었을 것이다

 

 동이의 봉조씨족과 서방의 황룡씨족의 연맹은 본질상 동이서하의 연맹으로 「용」「봉」一元의 연맹으로 결과적으로 「용봉정상龍鳳呈祥」이다. 후에 동서일체의 중국민족구성, 정통문화탄생의 원시기초이다.

 

 신교문화의 핵심은 영원히 불멸하는 생명을 뜻하는 선仙에 있다. 그 불멸하는 생명선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용봉이다. 용봉문화는 선 문화와 결합한다. 천지와 더불어 영원불멸하는 인간의 생명의 이상과 신성神性을 상징하는 용봉은 신교 선문화의 음양의 두 축이기도 하다.

 

 용은 중국회화나 조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수도 없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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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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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地中海 | 작성시간 21.03.10 용은 신화와 역사에서 중국을 상징하는 불가사의 존재!
    반고의 천지창조 때부터 등장하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천지가 아직 혼돈할때 태어난 반고가 '한번 꼬리를 휘둘러 위로 올라간 것은 하늘이 되고 아래로 떨어진 것은 땅이 되고, 그의 몸은 수많은 산봉우리로 변하고 피는 강과 바다가 되고 머리카락은 숲이 되었다'고 합니다. 즉 반고는 꼬리가 달린 '반고룡'이었답니다.
    염제 신농씨도 '어머니가 신룡의 머리를 보고 감응하여 낳았다'고 합니다. '사마천의 태사공자서'에서 황제 헌원씨도 한마리 용이었는데 판천전투에서 염제와 싸워 이겼다'하고, 오제 역시 황제의 자손이니 용의 자손이라고 하겠습니다.
    천지창조와 삼황오제의 전설 속에서 등장한 용은 봉황과 함께 중국역사에서 지존으로 살아가면서,
    유가와 도가의 이상향으로 존재하기도 하고 '중화'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신화가 역사가 되는 바로 그 순간이 위의 사진자료가 아닌가 합니다.
    카페에서 강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실텐데 살신성인하는 학자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귀한 자료와 강의 모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촌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06 위의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호남성(동정호 남쪽)의 무덤에 용 형상을 만든 조개는 이곳 생산품이 아니고, 남쪽 바다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미 원거리 교역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먼 곳에서 갖고 온 조개는 귀하고, 귀한 물품입니다. 무덤에는 일반적으로 가장 귀한 물품을 수장합니다. 후대로 가면 옥기로, 청동기로 제기를 만들고, 수장품을 만드는 것은 그 시대에 그만큼 귀하다는 것입니다.
    貝가 중국에서 재물을 나타나는 언어에 들어가는 이유를 알겠지요. 그런데 한자의 기원으로 보는 갑골문이 4000년 전인데, 이미 6000년 전에 조개가 귀한 물건으로(무덤 수장품) 나타났으니,, 한문이 생성되는 시기도 생각해보면----- 선생님들께서 연구조사해 보십시오.
  • 작성자촌사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3.06 영탁의 노래 가사에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처럼, 호랑이가 왜 거기서 나올까요.
    신화시대에 서쪽의 황제족과(용문화) 동쪽의 치우족이(봉문화) 대판으로 싸웁니다. (탁록전쟁) 어쨌거나 싸움 뒤에 통합되면서 중국의 용봉문화가 자리를 잡습니다. 전국시대의 백화 그림에 죽은 자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하는 그림에는, 용과 봉이 인도합니다.
    어쨌거나 중국은 용봉문화가 형성되면서 호랑이는 명함도 못 내미는데, 탁록 전쟁 훨씬 이전의 무덤에서 호랑이가 수호신 내지 영혼 안내자로 나오니.
    호랑이가 왜 거기서 나오며, 어떤 변화를 거쳐서 용봉문화가 형성되는지? 선생님들께서 이것도 파고들어보시면 재미 있을 것 같은데,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없으신가요?
  • 작성자솔바람 | 작성시간 21.03.07 선생님 쓰신 책 '중국 고대 미술사'를 보고 있습니다. 조금씩 읽으며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시지중닭 | 작성시간 21.03.09 아주 興味津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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