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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일기(반농선생)

북산일기 91-월사 이정구선생의 <유북한산기> 요약

작성자반농|작성시간13.09.20|조회수54 목록 댓글 0

919일 목요일 추석, 어른 제사

 

오전, 오후 작업을 좀 하다가 저녁때에는 평창동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친 자손들 이외에는 시골집에서 살고 있는 사촌 한사람이 왔을 뿐이다. 누님이 내가 끼고 있는 보청기를 좀 빌려 껴 보시더니 잘 드린다고 하면서 값이 얼마냐고 물으셨다. 170만원을 주었다고 대답하고, “왜 필요한 모양인데 사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한 3백만원 한다는데 너무 비싸서 못 샀다고 하신다. 곁에서 듣던 큰 형님이 내가 그 돈은 드릴 터이니 맞추어 보라고 하셨다.

낮전에 북한산 강의 준비를 하다가 보니 월사 이정구 선생의 유삼각산기라는 기행문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매우 재미가 있다. 번역문이 좀 긴데, 백운대에 올라간 부분을 중심으로 여기 좀 요약하여 놓는다.

 

서실(書室)에 앉았노라니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사람이 찾아왔다. 누구냐고 물어보았더니 바로 중흥사(重興寺)의 노승 성민(性敏)의 사미(沙彌) 천민(天敏)이었다. 성민은 나의 공문(空門)의 벗으로, 삼각산을 유람하기로 서로 약속한 지가 오래이다.

천민이 길을 인도하고 나와 자제는 각자 술 두 통을 가지고 필마(匹馬)와 아이 종 하나를 데리고 얼굴을 가리고 가니,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우러러보니 삼각산이 푸른빛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중을 불러 백운대(白雲臺)로 가는 길을 물으니, 중이 말하기를, “난리 뒤로 왕래하는 사람이 전혀 없어 길이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쪽에는 거주하는 중도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노적봉(露積峯)에 나무꾼이 다니는 길이 희미하게 나 있으나 봉우리 위쪽으로 올라가기는 어렵습니다.” 하였다.

드디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괴석(怪石)이 이리저리 길에 솟아 있어 열 걸음에 아홉 번 넘어지면서 봉우리 아래 당도하니, 가파른 바위틈으로 길이 비스듬히 나 있어 전혀 발을 붙일 곳이 없었다. 천민과 두 중이 먼저 올라가 바위 구멍으로 나무를 넣어 사닥다리를 만들고 띠를 늘어뜨려 사람들의 몸을 묶어서 끌어올렸다. 그러고서야 가장 정상에 오르니, 정상은 비좁아 겨우 10여 명이 앉을 수 있었고 정신이 아찔하여 아래를 굽어볼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서로 부축하고 의지한 채 조금 쉬고 바라보니, 서남쪽으로 대해(大海)가 멀리 펼쳐져 있고

마른 목구멍에 먼지가 일 정도로 갈증이 나서 급히 술을 꺼내어 마시다가 취흥(醉興)에 몇 병을 기울였다. 나는 취하여 노래를 부르고 자제는 일어나 춤을 추었으며, 젓대 소리는 바람을 따라 흩어져 참으로 꿈속에 하늘의 삼청궁(三淸宮)에서 노니는 격이었다.

동이에 술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니 아직도 많다기에 문장(門將)을 불러내어 자리에 이끌어 앉히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랐다. 흥겨운 음악이 몇 곡조 연주되고 우리는 취해서 돌아갈 줄 모르다가 집에 당도하니 밤이 이미 삼경(三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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