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衛나라와 元氏의 淵源
周나라 天子인 成王이 三寸인 康叔에게 殷나라의 이전 首都 地域인 殷墟일대를 맡아서 衛나라를 세우고 그 遺民들을 잘 다스려 달라고 부탁하는 글이 《書經》에 〈康誥〉, 〈酒誥〉, 〈梓材〉 등 3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 武公이라는 매우 어진 임금이 나와서 天子의 나라인 周나라도 잘 도와주고, 90세 이상 장수하면서 自身의 修養에도 힘썼다고 하는데, 《詩經》 大雅의 〈抑〉이라는 長篇詩가 바로 이 분이 天子를 잘 타이르고 자기스스로도 警戒한 內容이라고 전한다.
그 뒤에 文公과 成公(이름은 費)이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그 當時에 覇權을 掌握하여 나가던 晉나라의 文公과 사이가 나빠져서, 이 衛나라가 큰 危機에 逢着하게 되었다.
이 때 지금의 元氏縣이라는 지역의 領主이며 위나라 朝庭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元晅이라는 親晋派의 大臣이 나타나서 成公의 反晉路線을 强力하게 反對하자, 이 임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기의 아우 叔武와 大夫 元咺에게 정사를 맡기고서는 외국으로 나가서 방랑하면서 여러 가지 곤경을 겪기도 하고, 또 국제적으로도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국내에서 실권을 장악한 사람들과 사이에도 반목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 때 成王을 따라 다니면서 곤경에 처한 성공을 끝까지 잘 도와준 사람이 《論語·公冶長》에서 孔子가 “나라에 도가 없을 때 어리석은 것 같지 행동을 하였는데, …그 어리석은 것 같음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邦無道則愚, … 其愚不可及也)”고 칭찬한 甯武子이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좋은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것 같음을 아무도 본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成公은 정세가 바뀌어 衛나라에 復歸했을 때 이 親晉派들이 자기의 王位를 簒奪하려 했다는 讒言을 믿고 아우 叔武와 대부 元咺을 죽여 버렸다. 이러한 이야기는 《左傳》과 《史記》(衛世家)에 자세하게 보인다.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元咺이라는 사람은 衛나라 안에서 다시 元이라고 부르는 한 地域을 領地로 나누어 가졌기 때문에, 그 地域의 이름을 따라서 그의 姓도 元氏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것을 中國의 歷史冊이나 萬姓譜에서 읽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 위나라의 원씨들 말고도, 북쪽에서 들어온 외래인들 중에도 원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또 景씨가 원씨로 성을 바꾸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元咺이라는 사람이 한 때 위기에 봉착하였던 위나라를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成公의 心機를 괴롭게 하여 외국으로 떠돌아다니게 한 일을 두고, 中國의 歷史冊이나 文學冊에서는 贊反異見이 紛紛하다. 우리나라의 學者 중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무자 같이 어리석게 보여야 뒷 탈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