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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일기(반농선생)

춘추시대 衛나라와 元氏의 淵源

작성자반농|작성시간19.03.25|조회수103 목록 댓글 0

춘추시대 나라와 元氏淵源

 

나라 天子成王三寸康叔에게 나라의 이전 首都 地域殷墟일대를 맡아서 나라를 세우고 그 遺民들을 잘 다스려 달라고 부탁하는 글이 書經康誥, 酒誥, 梓材3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 武公이라는 매우 어진 임금이 나와서 天子의 나라인 나라도 잘 도와주고, 90세 이상 장수하면서 自身修養에도 힘썼다고 하는데, 詩經大雅이라는 長篇詩가 바로 이 분이 天子를 잘 타이르고 자기스스로도 警戒內容이라고 전한다.

 

그 뒤에 文公成公(이름은 )이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當時覇權掌握하여 나가던 나라의 文公과 사이가 나빠져서, 나라가 큰 危機逢着하게 되었다.

이 때 지금의 元氏縣이라는 지역의 領主이며 위나라 朝庭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元晅이라는 親晋派大臣이 나타나서 成公反晉路線强力하게 反對하자, 이 임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기의 아우 叔武大夫 元咺에게 정사를 맡기고서는 외국으로 나가서 방랑하면서 여러 가지 곤경을 겪기도 하고, 또 국제적으로도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지 어려운 문제가 생기고, 국내에서 실권을 장악한 사람들과 사이에도 반목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 때 成王을 따라 다니면서 곤경에 처한 성공을 끝까지 잘 도와준 사람이 論語·公冶長에서 孔子나라에 도가 없을 때 어리석은 것 같지 행동을 하였는데, 그 어리석은 것 같음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邦無道則愚, 其愚不可及也)”고 칭찬한 甯武子이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좋은 일을 하였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것 같음을 아무도 본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成公은 정세가 바뀌어 나라에 復歸했을 때 이 親晉派들이 자기의 王位簒奪하려 했다는 讒言을 믿고 아우 叔武와 대부 元咺을 죽여 버렸다. 이러한 이야기는 左傳史記(衛世家)에 자세하게 보인다.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元咺이라는 사람은 나라 안에서 다시 이라고 부르는 한 地域領地로 나누어 가졌기 때문에, 地域의 이름을 따라서 그의 元氏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것을 中國歷史冊이나 萬姓譜에서 읽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 위나라의 원씨들 말고도, 북쪽에서 들어온 외래인들 중에도 원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씨가 원씨로 성을 바꾸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元咺이라는 사람이 한 때 위기에 봉착하였던 위나라를 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成公心機를 괴롭게 하여 외국으로 떠돌아다니게 한 일을 두고, 中國歷史冊이나 文學冊에서는 贊反異見紛紛하다. 우리나라의 學者 중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무자 같이 어리석게 보여야 뒷 탈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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