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의 제목 〈완화삼〉이 무슨 뜻인지?
“꽃이 소매에 떨어지는 것을 즐겁게 감상한다”는 뜻인 듯
玩花衫완화삼 / 조지훈
- 木月에게 -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 가는
물길은 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玩花衫완화삼: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
나그네 / 박목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완화삼'에서 비판의 표적이 되는 대목은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놀이여"이다. 엄혹한 일제하에서 또는 그 직후라도(이 시는 46년에 발표되었다) 무슨 술 익는 강마을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 자체가 가령 군사 독재 시대에 나온 연애 시에 대하여 그 혹독한 시절에 무슨 그렇게 달콤한 사랑이 있었느냐고 힐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성립될 수 없는 터이지만, 지훈의 생가와 그 주위를 다녀보면 이 시가 허구나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그 주위에는 이런 정서가 넘쳐흐른다. 이 시의 화답으로 쓰여졌음을 밝힌 목월의 '나그네'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 시 '나그네'의 앞에 "술 익은 강마을의 / 저녁 노을이여"라고 한 리드는 이 시의 동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 준다. 말하자면 '완화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라는 주조가 '나그네'에서는 "술 익은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로 변조되어 있다. 그 밖에도 "구름 흘러 가는 / 물길은 칠백리 //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에서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의 이미지가 추출되었다고 추측한대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을 모방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서로 주고받은 시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다만 '완화삼'을 원전으로 한 '나그네'가 훨씬 성공한 시가 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대목이다. '나그네'는 어찌 보면 '완화삼'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구체화한 시요, '완화삼'의 완성이다. 여기에 단순성과 구체성이 요체라는 시의 비밀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중에서
위의 지훈의 시 제목에 대한 신경림 시인의 풀이는 앞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지금 영어로 조지훈 시를 번역하고 있다는 한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의가 왔다:
교수님,
…시의 맥락으로 보아서 적삼이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요? 목월이 입은 적삼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조선선비들이 꽃 무뉘있는 적삼을 입었을까요? 적삼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시를 공부하지 않은 저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아요.
꽃무늬 있는 적삼이 꽃이 지는 것을 보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봐도 될까요?
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보냈다.
"완화삼"이라는 말에 관하여 제가 다시 좀 더 한시를 찾아도 보고, 또 이 시 내용을 읽어 보면서 생각하여 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말은 "완상玩賞 화락花落 삼수衫袖"(꽃이 소매에 떨어지는 것을 즐겁게 감상한다)는 말을 줄인 것 같습니다. "衫" 자를 사전에 찾아보니, "옷衣"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고, 또 이 글자와 소매袖자를 연결하여 쓰면서도,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소매라는 뜻으로 한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내 추측이 맞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