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죽음을 애도함(悼亡)〉
추사 김정희
那將月姥訟冥司 나장월모 송명사
어찌하면 월하노인 시켜 저승에 호소하여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 역지위
내세에는 그대와 나 자리 바꿔 태어날까?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 천리외
나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산다면
使君知我此心悲 사군지아 차심비
이 마음 이 슬픔을 그대가 알 터인데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86
*나장那將: 여기서는 “어떻게 …를 데리고서” 란 뜻. 소동파의 〈공의보 만사孔毅父挽詞〉 “어떻게 한계가 있는 몸으로 줄곧 무익한 눈물을 계속하여 흘릴 수 있겠는가?那將有限身, 長瀉無益泲” 이 “나”자는 “내하(柰何: 어찌하랴?)”란 말을 줄인 것이라고도 하며, 중국이나 우리나라 문인들이 쓴 만사에 이 “那將”이라는 단어는 자못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정약용의 〈황상의 아버지 인담 만사[黃裳之父仁聃輓詞]〉: “어찌하면 남호의 만곡이나 되는 물을, 황천으로 몽땅 가져다 술 샘을 만들어볼까那將萬斛南湖水, 盡與泉塗作酒泉” 황(黃)이 술병으로 죽었음.
*월모(月姥): “姥”자를 “모”라고 발음하면, 늙은 부인, 또는 시어머니란 뜻이고, “로” 라고 발음하면 중국 북쪽에서는 외조모라는 뜻이 있으며, 또 이 두 글자를 연결하여 “로로”라고 하면 노부인에 대한 존칭이 된다고 한다.-《왕력고한어자전》
그런데 중국의 민간 전설에는, 부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월하노인(月下老人, 줄여서는 月老)가 있다고 하는데, 당나라의 위고(韋固)가 달밤에 그 노인을 만나 장래의 아내에 대한 예언을 들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 만사에서는 月老가 아니라 月姥로 나오는데 역시 “혼인을 주관하는 늙은 선녀”란 뜻인 것 같이 보인다.
*명사(冥司): 사람의 죽음을 관리하는 부서. 남송 주밀周密의 《제동야어齊東野語》 권1: “나는 너의 스승이 죽은 지 오래되었음을 안다. 지금 이미 명사에 기록되었으니 돌아올 수가 없다, 여기 머물러 두어야 무익하고, 다만 썩는 냄새만 맡을 뿐이다我知汝師久矣, 今已為冥司所錄, 不可歸. 留之無益, 徒臭腐耳”
*역지(易地): 처지를 서로 바꾸는 것. 《맹자》 “[좋은 기회를 얻어 나라를 맡아 잘 다스린]우임금이나 재상 직과, [기회를 얻지 못하여 안빈 낙도만한 안자(안연)자 서로 처지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다 그 처지에 알맞게 살게 될 것이다禹稷顔淵易地, 則皆然”
*위(爲): 여기서는 동사로 “하다”는 뜻임.
위에 제시한 이 시의 번역은 우리 보다 한 세대 전에 이름 높던 한학자 우전 신호열 선생이 한 것이다. 주석은 한 자도 달지 않았으나, 내가 위와 같이 상세하게 달아보았는데, 더러는 역시 한국고전db에서 따오기도 하였다.
이 시는 추사선생이 제주도에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아내의 부음을, 상을 당한 지 한 달 뒤에야 겨우 얻어듣고서 지은 만사라고 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전통 문인들은 평생 동안 한문으로 끊임없이 한시를 지어 후세에 많이 남기고 있지만, 그 중에서 아내와 평생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아내를 사랑한다거나 그리워한다는 말을 적은 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가 죽고 나면, 여기서 보듯이 애도하는 시를 지은 것은 더러 볼 수 있다. 그런 시들을 망자를 애도한다는 뜻에서 “도망시悼亡詩”라고 부른다. 이 시는 우리나라의 여러 도망시들 중에는 가장 잘 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도망시를 포함하여 일반적인 애도시[만시挽詩]를 보면, 흔히 죽은 사람에 대한 칭송과, 짓는 사람 자신과의 끈끈한 관계를 강조하는 게 일반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이 시는 먼저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한 항의를 강하게 제기하면서, 그 죽음을 되돌릴 수 없을지 물어 본다. 그렇지만 그러한 항변조차도 이미 부질없는 것임을 알아차린 뒤에는, 그 죽음을 엄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단념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이제 여기 살아있는 내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여 보게 된다. 그것이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 부부가 한번 처지를 바꾸어 내가 아내가 되고 당신이 남편이 되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을 당신이 다소나마 이해하여 주기를 바란다.
고 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시를 “부부의 정을 지극하게 표현하면서도 늙은 선비의 체모를 잃지 않는 명편”이라고 평한 말이 있다.-국어국문학회편 《한국한시감상》(2017) 651쪽. 전통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하기는 하지만 마음을 지나치게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이 시의 제 2 구의 구조는 보통 구문이라면 來世易地爲夫妻가 되어 “하 위爲” 자가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서 구문 중간에 놓이는 게 정상일 것이나, 여기서는 이 글자를 각운자로 사용하면서 위치를 도치시킨 것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두 구는 이 구절에 나오는 “역지”란 말의 구체적인 설명이 된다.
다음에 이시를 필자 나름으로 좀 풀어 번역하여 본다.
어떻게 중매 맡은
여 귀신을 데리고서
저승사자를 찾아가서
만나서
이 억울한 사별에 대하여
따져볼 방법이 없겠는가?
정말 이미 죽은 사람을
이 세상에서
되살려낼 방법이 없다고 한다면…
다음 세상에 가서는
우리 부부가
서로 처지를 바꾸어
내가 그대의 아내 되고.
그대가 나의 남편이 되어 주었으면…
그래서
오늘 내가 당하고 만
이 비통한
처지와 같이,
천리 밖에서
내가 미리 죽고
그대는 살아 있게 되었으면…
그래서
그대로 하여금
오늘 내가 당한 이 슬픔을
알아차릴 수 있게나 하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