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金富軾)의〈감로사에서 혜원의 시에 차운하여甘露寺次惠遠韻〉
속객들 아예 못 이르는 곳을 / 俗客不到處
내 올라오니 마음이 맑아지네 / 登臨意思清
산 모양은 가을에 더욱 좋을씨고 / 山形秋更好
강 빛은 밤에 더 환하구나 / 江色夜猶明
흰 새는 훨훨 날아 어디론지 가버리고 / 白鳥孤飛盡
외 배는 살살 혼자 잘도 떠가네 / 孤帆獨去輕
생각하니 부끄럽구나, 달팽이 뿔 위에서 / 自慙蝸角上
반생을 공명 찾으며 허둥지둥 보냈다니 / 半世覓功名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위의 번역은 한문과 영어, 국어 국문학에 모두 이름을 날리고 젊을 때에는 시인이기도 하였던 양주동 선생의 번역인데, 주석은 없다.
이 시의 원문에는 마지막 한 연에 좀 어려운 전고가 나올 뿐, 사용된 글자들도 자못 평이하여 읽는데, 그렇게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평이하게 보이는 시어들도, 반드시 이러한 말을 쓴 유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좀 자세하게 주석을 달아가며 한차례 다시 옮겨 보고자 한다.
〈감로사에서, 혜소 스님이 지은 시의 각운자에 맞추어(甘露寺, 次惠素韻)〉
俗客不到處 속세의 나그네 이르지 않는 곳이라,
속객부도처
登臨意思淸 올라와서 보니 마음과 뜻 맑아지는 구나.
등림의사청
山形秋更好 산에 물든 단풍 모습 가을되니 더욱 아름답고,
산형추갱호
江色夜猶明 강에 비친 달빛 밤에도 여전히 밝구나.
강색야유명
白鳥高飛盡 흰 새는 모두 높이 날아서 사라지고,
백조고비진
孤帆獨去輕 외로운 배는 홀로 가벼이 떠가는 구나.
고범독거경
自慚蝸角上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구나, 달팽이 뿔 위에서
자참와각상
半世覓功名 반 평생동안 헛되 공로와 명예만 추구해 온 것이.
반세멱공명
*감로사(甘露寺): 출전 《동문선》 권 9. 각운 淸, 明, 輕, 名. 하평성 경(庚)운. 경기도 개풍군 오봉봉(五鳳峰) 아래 있던 사찰. 고려 문종 때 이자연(李子淵)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윤주의 감로사의 배어난 경치에 감탄하여 귀국 후에 그와 같은 장소를 6년 동안이나 물색하여 지었다 함. 그 뒤 계속하여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름 있는 고승들과 선비들이 많이 찾았는데, 시승 혜소가 여기서 먼저 지은 시를 보고 김부식이 그 시에 화답하였는데, 이 시들을 보고서 따라서 지은 시들이 거의 천여 편이나 되어, 드디어 큰 책이 한 권이나 되었다고 한다.―《동람》 권 5.
*혜소(惠素: 생몰년 미상): 고려 숙종 때의 승려, 의천(義天)의 뛰어난 제자로 불경과 중국 경전 및 시와 문장, 글씨에도 능하였음. 서호(西湖)의 견불사(見佛寺)에 살 때 김부식이 나귀를 타고 자주 방문하여 날이 저물도록 도를 담론하였다고 함. 의천의 행록(行錄) 10권을 지었는데, 김부식은 이를 토대로 의천의 비명을 지었다고 함.―《한백》24~845.
《동문선》에서는 이 스님 이름이 혜원(惠遠)으로 표시되어 있고, 《청구풍아(靑丘風雅)》에는 혜소로 되어 있으나, 위와 같은 사실을 참고하여 혜소로 바로 잡는다.
*속객부도俗客不到: 송 이처권李處權의 〈옥잠화玉簪花〉“저속한 사람 문 앞에 이르지 않으니, 거문고를 잡고서 꽃 앞에서 신나게 노래하네俗客不到門, 取琴花前横
*의사청意思淸: 송 한기韓琦의 〈장형 덕청(韓球) 묘지명長兄德淸墓誌文〉: “맹교가 지은 오언 시구들은 마음과 뜻 아주 맑다孟郊作五言句, 意思淸遠”
*추갱호秋更好: 송 사마광司馬光의 〈삼가 소강절선생께 올림拜呈堯夫〉: “낙양의 네 계절 늘 꽃이 피는데, 비개인 모습 가을이 더욱 좋습니다洛陽四季常有花, 雨晴顔色秋更好” 소강절(소옹, 자는 요부)의 〈가을 날 술 마신 뒤에 늦게 돌아오다秋日飮後晩歸〉: “물 대나무 가을되니 더욱 아름다운데, 차마 이 아름다운 술잔을 함부로 기우리랴?水竹園林秋更好, 忍把芳樽容易倒)”
*고비진高飛盡…독거경獨去輕: 당나라 이백의 〈홀로 경정산에 앉아서敬亭山〉 “뭇 새들 높이 날아가서 다 나의 시야에서 살아졌고, 외로운 구름은 특별히 한가롭게 흘러가누나衆鳥高飛盡, 孤雲獨去輕”
*와각(蝸角): 《장자․칙양(則陽)》편에, 달팽이의 외쪽 뿔에 있는 촉씨(觸氏)라는 나라와 오른쪽 뿔에 있는 만씨(蠻氏)라는 나라가 서로 땅을 다투어 싸우니 시체가 수만이었다고 하는 우언이 있다. 당 백거이의 〈술을 마주하고(對酒)〉 “달팽이 뿔 같은 좁은 이 땅 위에서 무엇을 다툴 것인가? 부싯돌 번쩍하는 짧은 순간 사이에 이 몸을 이 지구 위에 잠깐 의탁하고 있네.”(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奇此身)
*멱공명覔功名: 수 노사도盧思道의 〈전쟁 노래從軍行〉: “흉노의 선우가 항복하여 위수교까지 들어와서 이미 무릎을 꿇었거늘 장군은 어디 가서 공로와 명예를 추구할 것인가?單于渭橋今已拜將軍何處覔功名”
【참고】 김 시중 부식의 《연등회 날 저녁〉 시는 말이 매우 규칙에 맞으면서도 성실[典實]하고, 〈개성의 감로사를 소재로삼은 시(題松都甘露寺)〉는 아무 딴 생각 없이 저절로[翛然] 티끌을 벗어난 맛이 있다.―신흠의 《작은 중국 나라의 시평(小華詩評)》
이 절을 짓게 된 유래에 관하여서는 위의 주석에서도 이미 조금 소개하였으나,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다음에 좀 소개하고자한다.
《동국여지승람》 제4권 개성부 상(開城府上)에, “고려의 이자연(李子淵)이 원나라에 들어가 조회하면서 윤주(潤州)의 감로사(甘露寺)에 올라갔다가 강산(江山)의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여 그를 따라간 뱃사공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곳의 형세를 자세히 살펴보고서 가슴속에 기억해 두라.’ 하였다. 그 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뱃사공과 더불어 약속하기를, ‘천지간에 무릇 형상이 있는 물건은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산천의 경개가 청명하고도 수려하니 어찌 윤주(潤州)와 서로 비슷한 곳이 없겠는가. 너는 작은 배의 짧은 삿대로 아무리 먼 곳이라도 다 찾아다니되,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찾아보라.’ 하자, 뱃사공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떠났다.
무릇 여섯 번의 추위와 더위를 지나서 비로소 개성부의 서호(西湖)에서 윤주와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윤주의 감로사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것은 구조와 장식의 기교가 특히 좋은 것일 뿐이요, 하늘이 짓고 땅이 만든 자연적인 형세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이곳이 더 나을 것이다. 그곳의 누각(樓閣)과 지대(池臺)의 모양새는 모두 윤주의 감로사를 모방하였다.” 하였다.
-한국고전 db 각주정보에서 인용
이규보와 이색의 문집에도 이 감로사를 소재로 읊은 시가 몇 보이는데, 그 중에서 이규보의 시1수만 인용하여 본다.
〈감로사(甘露寺)에서〉
아름다운 누대 추녀 꿩이 날개를 편 듯 / 金碧樓臺似翥翬
푸른 산 맑은 물이 겹겹이 감쌌네 / 靑山環遶水重圍
서리에 해 비치니 가을 이슬 더하였고 / 霜華炤日添秋露
바다 기운 구름을 찌르니 저녁 놀 흩어지네 / 海氣干雲散夕霏
기러기는 우연히 문자를 이루면서 날아가고 / 鴻雁偶成文字去
백로는 스스로 화도를 그리면서 나누나 / 鷺鶿自作畫圖飛
실바람도 일지 않아 강물 거울 같으니 / 微風不起江如鏡
행인이 물에 비친 그림자와 함께 가네 / 路上行人對影歸
-동국이상국전집 제11권 / 고율시(古律詩)
ⓒ 한국고전번역원 | 나금주 (역) | 1980
최자의 《보한집》에서는 이 중 3,4 구를 아주 “절묘하고 운치가 있는 표현”이라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바다 기운 구름을 찌른다” 는 번역어도 참 독특하다.
앞에서 해설한 김부식의 〈등석〉 시는 7언 율시인데, 이 시는 5언 율시로, 앞의 시에는 풍기는 분위기가 매우 엄숙한데 비하여, 이 시는 분위기가 자못 가볍고 밝으며, 또 매 구에 2자씩이 줄어서 그런지 매 행의 구문도 그렇게 복잡한 점은 없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여기서 속객은 물론 저속한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절에 올라와서 속객이라고 한다면, 중이 아닌 일반인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구절에 여기에[이 절에] 올라와서 내려다보고 사방을 둘러보니 마음과 뜻이 맑아졌다意思淸고 하였는데,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원인이 이 주변의 경치가 좋아서 일까? 이곳이 절간이기 때문일까? 좋은 절이 좋은 경치를 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구절을 양주동 선생은 “속객들 아예 못 이르는 곳을”이라고 옮기면서, 이곳이 정말 속객들은 접근하기 힘들다는 뜻을 매우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이 시를 적게 된 동기가 제목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혜원이라는 고승이 지은 시를 보고서 그 시의 각운자에 맞추어 지은 것이니까, 나 같은 벼슬 길에 들어선 속객이 이러한 좋은 절에는 아예 오기 힘든 곳이라고, 이 절에 온 것을 아주 행운을 얻는 것처럼 과장하여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란 말이 현대 한국어에서는 흔히 “…할 생각”이라는 뜻으로 의향, 또는 의도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내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근본 바탕” 정도로 인간 심성의 근원적인 면을 뜻한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불교 교리에서 강조하는 “일체 유심조“의 심을…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이 절의 터를 고르기 위하여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짓고 보니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같은 이름의 절 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한 이야기는 이미 위에서 두 번이나 소개하였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은 생육신의 한 분인 남효온 선생이 이 절에 갔을 때 인상을 적은 내용인데, 위에 시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듯하여 여기 붙여둔다.
당두산을 출발하여 작은 길을 따라 곧바로 감로사(甘露寺)로 갔는데,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기도 하며 간신히 도달하였다. 산길이 매우 험난하여 감로사의 남쪽 고개를 오를 때는 등 넝쿨이 나무를 휘감아 오르고 낙엽에 발이 쑥쑥 빠졌다. 동쪽으로 오봉산(五峰山)을 등지고 서쪽으로 벽란도에 임하여 상류에 우뚝한 절이 있으니, 영락없는 병풍 속 풍경이었다. 절의 기둥에 배가 매어져 있었다. 절의 북쪽에 다경루(多慶樓)가 있고, 다경루 북쪽에 강물에 임한 단정(檀亭)이 있었다. 정중이 앉았다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고전db 《추강집·잡저》
위의 네 구절은 이 감로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요약한 표현인데, 단풍이 변하여 가는 가을 경치, 달밤에 내려다보이는 강물의 빛깔, 어디로인지 높이 떠서 다 사라지는 백조의 모습, 가볍게 홀로 떠가는 외로운 배 이러한 것들이 모두 매우 아름답기는 한없이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쓸쓸하고 적막하다는 슬픈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경지를 정말로 체득하게 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드디어 마지막 연에서 말하는 같이
“自慚 蝸角上에 半世 覓功名”
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위의 네 구절의 흐름을, 특히 눈앞의 경치를 읊고 있기는 하지만, 구슬픈 감정을 유발하는 말하자면 “정과 경이 혼합情景合一된” 제5, 6구의 의미를, 찬찬히 음미하여 보지 않는다면, 이 마지막 연은 매우 상투적인 영탄조로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끝나는 마지막 연 2구는 제일 처음 연에서 나온 “意思淸”하게 되어 간 결론이 되는 것이다.
첫 연과 끝 연은 두 구절이 한 문장으로 연결된 연면구連綿句로 되어 있고, 중간의 양련은 모두 주어/술어로 연결된 주술구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연 사이에 문법상 조금씩 차이점이 있음이 재미있게 보인다. 특히 이시를 이해하는데, 앞련 [3, 4구]의 가운데 사용된 부사 “다시 갱”자와 “오직 유”자 같은 부사의 의미를 자세히 음미하여 볼 필요가 있고, 또 뒷련[5, 6구]의 끝 글자로 사용된 “다할 진” 자와 “가벼울 경” 자의 용법은 좀 자세히 생각하여 볼만하다.
白鳥高飛盡 백조는 높이 날아간다白鳥高飛+날아간 결과는 [새가] 없어진다高飛盡
孤帆獨去輕 외운 배는 홀로 간다孤帆獨去+그렇게 홀로 떠가는 [배의 모습은] 가볍게 보인다獨去輕
이렇게 두 문장이 한 구절 안에 포개어 지는 것을, 바꾸어 가면서 연결되는 방식이라고 하여 체계식遞繫式이라고 말하는데, 산문 문장이나 이른 시기의 한시에는 드물고, 당시 이후에난 나타난다고 한다.-심경호 역 《당시개설》, 송용준 역 《한어시률학》 등 참조. 이 두 구절이 대구라고 생각한다면, 뒤의 “가벼울 경” 자라는 형용사 여기서는 ”가볍게“ 라는 부사어로 활용한 것으로 보고, 앞에 나오는 ”다할 진“자라는 동사도 여기서 ”모조리“라는 부사어로 활용된 것 같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할 진“자를 여기서 다 날아간 결과로 ”없어졌다“ 는 뜻의 동사로 볼 수도 있으나, 엄밀한 대구로 따져볼 때는 좀 맞지 않는다]
이렇게 이모저모 따져가면서 읽다가, 맨 앞에 제시한 양주동 선생의 보니 이 시의 가운데 두 연의 번역을 다시 살펴보니, 자못 이야기할 꺼리가 또 생겨난다.
산 모양은 가을에 더욱 좋을씨고 / 山形秋更好
강 빛은 밤에 더 환하구나 / 江色夜猶明
흰 새는 훨훨 날아 어디론지 가버리고 / 白鳥孤飛盡
외 배는 살살 혼자 잘도 떠가네 / 孤帆獨去輕
이 인용문 중에 첫째 구의 번역은 무난하다. 그러나 그 다음 귀의 번역은 “더”라는 말은 “오히려”로 고치는 게 오히려 좋을 것 같다. 그 다음 연은
흰 새는 외롭게 훨훨 어디론지 다 날아가 버리고,
외 배는 가볍게 살살 혼자 정처 없이 떠가네.
정도로 대구도 고려하고, 그 다음에 연결되는 구절과의 의미 연결도 고려하여 고쳐 보는 게 어떨지 생각하여 본다. 그렇지 않고, 이 번역문 그대로 놓고 보면 “살살 잘도 떠가는” 것을 보고서는 마냥 마음이 즐겁기만 하여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그 다음에 “부끄럽구나”와 같은 탄식이 나올 수 있을까? 싶어진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도사나 승려들이나 은사 같은 사람들이나 찾아오지,
나같이 이미 세속에 물던
관리 같은 사람들이
찾아올 곳이 아닌데도,
올라와서
상하 좌우 사방을 둘러보며.
속세를 굽어보니
내 마음이
한결 맑아져 가는 듯 하고나.
저 단풍이 한참인
산들의 모습을 둘러보니
가을이 더욱 아름답기만 하고,
잔잔한 저 강 물결에 반사되는 달빛은
밤중에 오히려 더욱 밝아지는구나.
흰 새도 높이 날아서
어디론지 다 사라져 버렸는데,
외로운 배 한 척만
홀로 나처럼
정처 없이 가볍게 떠도는 구나.
이러한 야경을 보고 있노라니,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구나!
달팽이 뿔 같은 좁은 터전에서
반평생 부귀공명만 추구하면서
반 평생을 살아나왔던
보잘 것 없는 내 신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