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
비 갠 긴 언덕엔 풀 빛이 푸르른데 / 雨歇長堤草色多
남포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울먹이네 /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를거나 / 大同江水何時盡
해마다 이별 눈물 강물을 더하는 것을 / 別淚年年添綠
-동문선 제19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68
雨歇長提草色多
긴 제방에 비 그치니
풀빛이 더욱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를 남포 땅에서 떠나보내며
슬픈 노래 울먹이네.
大同江水何時盡
아! 저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흐름이 끝날 것인가?
別淚年年添綠波
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해마다
파란 물결만 보태는 구나.
- 필자의 졸역
*송인(送人): 출전 《동문선》 권 19. 어떤 책에는 “대동강”이라고제목을 적은 데도 있음. 7언 절구. 각운: 多,歌,波 하평성 가(歌) 운. 저자는 물론 남성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이별하는 것 같이 쓴 시임.
*정지상(鄭知常; ?~1135): 고려의 문인, 서경 출신. 호는 남호(南湖). 김부식과는 반대로 묘청과 일당이 되어 서경 천도설을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다가 죽음을 당함. 시와 문장에 모두 뛰어남. 《한백》 20-53 참조.
*우헐雨歇: 장마 사이에 비가 잠시 거친 것을 이름. 육조 말기 유신庾信의 〈조왕께서 병력을 이끌고 나가시면서 길에서 주신 시에 삼가 답하여奉報趙王出師在道賜詩〉: “비 그치니 희미한 무지개도 끊어지고, 구름 돌아가는데 기러기 한 마리 멀리 날아감니다雨歇殘虹斷, 雲歸一雁征”
*초색다草色多: 당 이영李郢의 〈일찍 떠나다早發〉: “풀 빛은 차가운 길에 많고, 벌레 소리는 고향을 생각하게 하네草色多漢路 蟲聲思故鄕”
*남포(南浦): 여기서는 우선 평양에 있는 포구 이름을 지칭할 것이다. 그러나, 한시에서 이 말은 원래 “남쪽을 향한 물가”란 뜻이나, 《초나라의 노래․구가․하백(九歌․(河伯)》에서 “그대는 악수하고서 동쪽으로 향하여 가려고 작별을 함에, 나는 그대를 배웅하여 남쪽 물가까지 갔네.”(子交手兮東行, 送美人兮南浦)라는 구절에서부터, 이 “남포”라는 말은 누구를 “송별하는 곳”의 대명사 같이 사용되었음.
남조 양나라 강엄(江淹)의 〈이별의 부(別賦)〉 “봄 풀은 짙푸른 색, 봄물은 푸른 물결인데, 그대를 남포에서 이별하니, 내 마음 아픔 그 얼마나 큰가?”(春草碧色 , 春草淥波, 送君南浦, 傷如之何)
*동비가動悲歌: 당나라 말기의 장교張喬의 〈하중 관작루를 노래한다河中鸛雀歌〉: “옛날 일 회고하여 보니 슬픈 노래 솟아 나오는데, 큰 황새는 지금 없어지고, 들 재비들만 날아다니는 구나高樓懷古動悲歌, 鸛雀今無野燕飛” 여기서 “동”자는 어떤 감동이나 감정이 격하게 되어 거기에 따르는 어떤 반응을 저절로 일으키는 것을 말함.
*첨록파添綠波: 첨록파(添綠波): 두보의 〈고상시님께 삼가 올림(奉寄高常侍)〉 “하늘 끝까지 무르익은 봄빛은 하루해가 늦게 저물어 감을 안타깝게 여겨 빨리 지도록 제촉하는 것 같으니, 이별의 눈물 멀리서나마 비단 물결을 덧보태네.”(天涯春色催遲暮, 別淚遙添錦水波)
【참고】 이 작품은 작가가 젊은 시절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유의 “그대를 남포에서 떠나보내니 눈물이 비단 실 같이 흘러내리네”(送君南浦淚如絲)나, 노륜(盧綸)의 “산길 오르고 또 오르니 어느 때나 끝날 것인가?”(登登山路何時盡)이나, 박인범(朴仁範)의 “사람들 흐르는 물결 따라 떠나가 버림 어느 때나 끝날 것인가?”(人隨流水何時盡)이나, 두보의 “이별의 눈물 멀리서나마 비단 물결 덧보태네”(別淚遙添錦水波)나, 이백의 “원하노니 여러 강의 물결을 엮어, 만 줄기의 눈물에 보태게 하였으면”(願結九江波, 添成萬行漏) 등 많은 전인들의 시작이 이 한 편에 녹아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훌륭한 이별의 노래로 재 구성한 그의 솜씨는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승구(承句)에서 결구(結句)로 연결하는 반전의 수법은 이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결구의 “添綠波”는 원시의 “添作波”를 이제현[역옹패설]의 견해에 따라 후일 고친 것이다. 이 작품은 이 색의 〈부벽루〉와 함께 만고의 절창으로 칭예를 받아 왔으며 후인의 차운시(次韻詩)도 가장 많다.-민병수 《한국한시강해》 p.73(인용시구는 필자가 번역함)
앞에서 인용한 신호열 선생님의 번역 제 2구의 “남포로”는 남포에서“로 바꾸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위의 주석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시에서 ”남포“라는 말은 곧 이별하는 곳의 대명사와 같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주 뒤에 소개한 고 민병수 (서울대) 교수의 해설도 훌륭하므로 필자가 이 시에 대하여 따로 더 설명을 붙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분의 제자들이 만든 《한국한시감상》(보고사, 2017년 개정판)의 이 시 해설과 감상도 정말 훌륭하다.
다만 이 시를 한 번 더 풀어 적어 본다.
긴 제방에 내리던 비
어느 듯 그치고 보니
파란 풀빛 벌써 더욱 많아졌는데,
그대를 남포에서 이별하자니
슬픈 노래가 저절로
온 몸을 움직이며
겉잡을 수 없이
마구 터져 나오네.
이 긴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끝날 것인가?
아! 정말
이별의 눈물
해마다 해마다
이 푸른 물결을
보태어 가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