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月十五日〉 이안눌李安訥
*임진년 왜란이 발발하자말자 왜군이 동래성을 공략하여, 부사인 송상현이하 전 성민이 참살을 당한 날이다. 작자는 그 16년 뒤에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이 시를 썼는데, 주로 이 참상을 잘 아는 한 아전의 증언 형식으로 썼다. 출전: 東岳先生集卷之八 / 萊山錄.
*이안눌李安訥: 호는 동악, 조선 중종 때 이름난 시인 재상인 이행의 증손으로 벼슬은 예조판서까지 이르렀으며, 역시 한시 창작에 전념하여 4,000수가 넘는 시가 전하고 있음. 당시에 이름을 떨친 몇몇 시인들과 교유를 하면서 함께 창작을 하였는데, 그들을 동악시단이라고 함. 문집 동악집.
〈4월 15일에四月十五日〉
四月十五日 음력 사월 십오일에,
사월십오일
平明家家哭。동이 틀 무렵부터 집이면 집집마다 곡성이 진동하네.
평명가가곡
天地變簫瑟。온천지 쓸쓸하고 쓸쓸하게 변하고,
천지변소슬
凄風振林木。처량한 바람은 숲과 나무에 진동하네.
처풍진임목
驚怪問老吏。깜짝 놀라서 늙은 아전에게 물기를,
경괘문노리
哭聲何慘怛。“곡하는 소리 어찌 이리 참담한고?”
곡성일하달
壬辰海賊至。“임진년에 해적들이 이른 날,
임진해적지
是日城陷沒。그날 성이 함몰 되었는데요.
시일성함몰
惟時宋使君。그 때 송 사또님께서
유시송사군
堅壁守忠節。성벽을 굳게 하고 충절을 지키셨지요.
견벽수충절
闔境驅入城。온 성에 달려들어오니,
합경구입성
同時化爲血。일시에 피 천지가 되어버렸지요“
동시화위혈
*합경: 온 경내. 합자에는 형용사로는 온, 모든이라는 뜻과, 동사로는 닫는다는 뜻이 있음.
投身積屍底。몸을 시체 덤이 밑에 숨긴 사람들만,
투신적시저
千百遺一二 천, 백 명에 겨우 한둘 정도 목숨을 보존하였지요.
천백유일이
所以逢是日。그렇기 때문에 이 날을 맞아서,
소이봉시일
設奠哭其死。제물을 차리고 그 죽음을 곡하는 것이지요.
설전곡기사
父或哭其子。아비기 더러는 그 자식을 곡하고,
부혹곡기자
子或哭其父。자식은 더러 그 아비를 곡하며,
자혹곡기부
祖或哭其孫。할아비가 더러 그 손자를 곡하고,
조혹곡기손
孫或哭其祖。손자가 그 할아비를 곡하며,
손혹곡기조
亦有母哭女。또한 어미가 그 딸을 곡하고,
역유모곡녀
亦有女哭母。또한 딸이 어미를 곡하며,
역유여곡모
亦有婦哭夫。또한 아내가 남편을 곡하고,
역유부곡부
亦有夫哭婦。또한 남편이 아내를 곡하기도 하지요.
역유부곡부
兄弟與姊妹。형제 자매 할 것 없이,
형제여자매
有生皆哭之。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곡을 하지요.“한다.
유생개곡지
蹙額聽未終。이마 찌푸리고 끝까지 다 듣기도 전에,
척액종미청
涕泗忽交頤。눈물과 콧물이 갑자기 턱으로 쏟아지누나.
체사홀교이
吏乃前致詞。아전이 앞으로 다가와서 설명을 덧붙이기를
이내전치사
有哭猶未悲。“울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덜 슬픈 것이지요.
유곡유미비
幾多白刃下。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흔 칼날 아래서 죽었는지,
기다백인하
擧族無哭者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보니 울어 줄 사람조차 없는 집도 거족무곡자 수두룩하지요“
[해설]
이 시는 내용을 파악하는데 별로 어려운 글자도 없고, 어려운 전고도 없고, 다만 말하는 것처럼 쉽게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별로 더 풀어 설명할 데가 없다. 한시에 어려운 시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읽기 쉬우면서도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잘 나타낸 시도 있구나 싶어진다.
위와 같이 문단을 나눈 것은, 대개 각운자 체계가 바뀜에 따라서 문단의 뜻도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 나누어 본 것이다.
이 시의 작자인 동악 이안눌 선생이 생전에 살던 집이면서 여러 시우들과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는 남산 허리의 유촉지가 지금 동국대학 자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