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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바로크 협주곡의 기초를 세우고 바이올린 주법을 발전시켰다. 원래 직업이 사제였고 머리칼이 붉어서 '빨강 머리의 사제'라고 불렸다. 같은 시대의 바흐에게도 큰 영향을 주기도 한 그는 600곡에 이르는 방대한 기악 작품을 남겨 놓았다. 합주협주곡 '조화의 영감'. '사계'가 들어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집 '화성과 창의의 시도'등이 대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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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작곡가 '음악의 아버지'이다. 16세기 이래로 200년에 걸쳐 바흐 가문에는 50명 이상의 음악가가 배출됐기 때문에 그를 특별히 '대 바흐'라 부르기도 한다. 그가 두 아내에게서 낳은 20명의 자녀 중에서만도 4명이 음악사에 기록되고 있다. 바흐는 이전의 음악을 종합하고 발전시켜 음악의 기초를 확고히 다져놓았다. 모든 음악이 바흐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그 때문이다. '마태 수난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무반주 첼로 협주곡집'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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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 바흐와 쌍벽을 이루는 바로크 후기의 작곡가.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나이도 바흐와 같다. 다만 헨델의 집안에는 음악가가 단 한 사람도 없었고 대부분의 생애를 영국에서 보냈다는 점이 다르다. 음악적으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바흐의 음악이 종교적으로 논리적이라면 헨델의 음악은 인간적이고 보다 자유롭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오라토리오 '메시아'. 관현악곡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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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제프 하이든(1732~1809) 고전파 양식을 확립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특히 교향곡, 현악4중주곡, 클라비어 소나타의 영역은 이른바 빈 고전파 양식의 중심을 이루었다. 무려 100개가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여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린다. 34년 연하인 모차르트와 교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베토벤을 가르치기도 했다. 만년의 2대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 '놀람' '시계'등의 교향곡. '세레나데' '종달새'의 부제가 붙은 현악4중주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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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하이든과 함께 빈 고전파를 대표한다. 5세 때부터 작곡을 하는 등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아들의 천재를 과시하기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모차르트로 하여금 다양한 음악적 체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모든 장르에 걸쳐 방대한 걸작을 남긴 그는 살리에리의 독살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아마데우스'로 일반 대중에게도 퍽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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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고 낭만주의의 길을 열어놓았다. 젊어서부터 음악가에게 생명과도 다름없는 청각을 상실. 32세에 빈 교외의 하일리겐쉬타트에서 유서를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시 재기하여 숱한 불후의 명작을 남김으로써 '악성'이라는 명예로운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따라다닌다. 9개의 교향곡.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16개의 현악4중주곡 등 한결같이 걸출한 작품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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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아키노 롯시니(1792~1868) 19세기 전반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 조숙한 천재성. 빠른 작곡과 재치있는 음악은 모차르트에 비견 될 정도였다. 또한 작곡가로서의 수명이 짧은 것도 유사하다. 롯시니는 물론 76세까지 장수를 누렸지만, 오페라 '윌리엄 텔'을 작곡한 37세 이후로는 거의 작곡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속편이라 할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가중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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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오스트리아 작곡가. 31세의짧은 생애를 600여 곡의 가곡을 남겨 '가곡왕'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의 작품목록에는 가곡뿐 아니라 교향곡 피아노곡, 실내악 등 기악곡도 꽤 많다. 교향곡 '미완성', 피아노 5중주곡 '송어',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겨울나그네'등이 일반에게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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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엑토르 베를리오즈(1803~1869) 프랑스 낭만파 작곡가. 영국의 한 여배우로부터 당한 실연의 체험을 반영한 '환상 교향곡'은 본격 표제 음악의 시조로 꼽히는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이다. 이 교향곡에서 보듯이 그는 바그너처럼 거대한 편성에 의한 극적인 음악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그의 표제음악은 리스트의 교향시로 이어졌다. 관현악법의 대가였던 그는 '근대의 악기법과 관현악법'을 저술하여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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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 낭만주의 시대에 살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고전주의자였다. 즉, 같은 시대의 음악가에게서 받은 영향보다는 바흐, 헨델, 모차르트에게 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와는 달리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우아하고 사랑스런 작품을 많이 썼다. 바흐 사망 이후 처음으로 '마태 수난곡'의 공개 연주회를 열어 바흐 음악을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한 점. 슈베르트의 교향곡 C장조를 작곡가 사후에 초연한 점도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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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로베르트 슈만(1810~1856)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 원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으나 무리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쳐 작곡가로 전향했다. 시를 쓰는 등 문필가이기도 했던 그는 '라이프치히 음악신보'를 창간해 10여 년 동안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평론 활동도 펼쳤다. 스승의 딸이며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와 결혼했으나, 만년에는 라인 강에 투신하는 등 정신병으로 불행했다. 피아노곡이 주류를 이루며 교향곡과 가곡도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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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프레데릭 쇼팽(1810~1849) '피아노의 시인'으로 음악사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독창적인 음악은 어렸을 때의 자유로운 교육 방식과 타고난 음악적 재능의 산물인 듯이 보인다. 29세에 조국 폴란드를 떠나 파리에서 활동했다. 프랑스 인이었던 아버지와 폴란드 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생애의 20년을 폴란드에서, 나머지 20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음악에는 폴란드의 민속음악적 요소와 파리의 귀족사회의 살롱 취향이 반영되어있다. 대부분 피아노곡을 남겼는데, 그것도 주로 독주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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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프란츠 리스트(1811~1886) 쇼팽과 쌍벽을 이루었던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고자 했던 그의 음악은 쇼팽의 서정성과는 대조적으로 비르투오조적인 성향이 다분하다. 체르니에게 사사했으므로 피아니스트로서는 베토벤의 직계라 할 수 있다. 11살 때 빈에서 데뷔했을 때는 베토벤도 참석하여 리스트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리스트의 업적은 피아노의 표현력을 더욱 확대시키고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어 그 후의 표제음악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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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이탈리아의 베르디와 더불어 당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이후의 오페라를 스스로 '악극'이라 칭했는데, 그의 악극이 추구하는 바는 음악·문학·미술 등이 서로 종속되지 않는 동시에 완벽한 통일감을 이루어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합예술이다. 모든 대본을 자신이 손수 쓴 의도도 거기에 있다. 기존 오페라와는 달리 '무한선율'을 써서 극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 했고, 반음계 화성과 불협화음도 빈번히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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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주세페 베르디(1813~1901)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환기를 연 동시에 그 장점을 이룩했다. '멕베드' '군도'의 제1기.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의 제2기를 거쳐 '아이다'로 시작되는 제3기는 베르디의 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도도했던 바그너리즘이 알프스 이북을 지배했지만, 그는 그것이 선율성을 구속하는 것이라 하여 독자적으로 이탈리아의 전통을 이어 나갔다. 오늘날 가장 빈번히 무대에 올려지는 베르디는 오페라 외에도 레퀴엠, 현악 4중주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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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무명 작곡가 브람스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슈만의 '새로운 길'이라는 에세이다. 브람스는 시대적으로 낭만주의에 속하는 작곡가지만, 그의 작품은 북부 독일의 중후함과 견고한 구성으로 비교적 부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신고전주의'로 분류되기도 한다. 브람스는 오페라 외에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곡을 남기고 있는데, 주로 성악곡과 실내악에 창작의 비중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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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카미유 생상(1835~1921) 프랑스 작곡가지만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등 독일 작곡가의 영향을 받아 작품 스타일은 다분히 독일적이다. 또한 바그너를 옹호했으며, 리스트의 교향시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작곡 외에도 미술·음악평론·출판·문예창작·천문학·음향학·철학에 관심을 갖는 등 폭넓은 시야를 가진 팔방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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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조르주 비제(1838~1875) 비제는 관현악곡, 가곡, 피아노 곡 등을 적지 않게 남겼으나 그의 재능은 극장 음악으로 향해 있다. 그의 최후의 작품이자 대표적인 오페라 '카르멘'은 전주곡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일관된 강한 호소력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명작이다. 색채적인 효과와 이국적인 분위기의 표현은 특히 뛰어나서 철학자 니체도 강한 인상을 받은 바 있다. 프랑스 국민 오페라를 확립한 그는 독일의 바그너, 이탈리아의 베르디에 비길 만한 존재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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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서구적인 그의 작품은 국민주의적인 러시아 5인조와는 달리 고전적 형식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감정의 표출이 두드러진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등 불멸의 발레 음악을 작곡해 러시아 발레 음악의 전통을 확립했다. 부유한 미망인 폰 메크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숱한 명작을 남긴 차이코프스키는 53세 되던 해 대표적인 '비창 교향곡'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한 직후 갑자기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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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안톤 드로브작(1841~1904) 스메타나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한다. 드보르작은 당대의 국민악파 작곡가들이 선호했던 오페라의 표제음악 분야보다도 교향곡이나 실내악 등 절대음악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거기에는 브람스의 후원과 음악적인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작품에 마지막까지 영향을 준 사람은 브람스와 적대관계에 있던 바그너였다. 한편으로는 체코의 민속음악어법을 도입, 보헤미아 악파가 국제무대로 진출하는 길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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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에드워드 그리그(1843~1907)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작곡한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가 살던 시대는 노르웨이가 독립국이 아니었고, 음악적으로는 독일 양식의 영향이 강했다. 라이프치히에서 수업을 쌓은 그의 음악은 독일식에 쇼팽 양식을 절충시킨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민족의식이 높아지던 조국의 상황과 보조를 맞추어 노르웨이 인의 감정과 어법을 국제적으로 충분히 통용되는 수준과 방법으로 승화시켜서 노르웨이의 국민악파를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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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자코모 푸치니(1858~1924) 베르디를 잇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그의 작품은 예리한 무대감각,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로 세계 오페라 극장의 주요한 레퍼토리가 되어 있다. 그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선배 베르디처럼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선율을 중시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외에 가곡과 기악곡도 다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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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구스타프 말러(1860~1911) 보헤미아 출신으로 빈에서 활동했다. 그의 주요 창작 분야인 가곡과 교향곡에는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영향이 있다. 특징적인 것은 교향곡이 가곡의 체험에서 우러나와 발전된 점이다. 9곡의 교향곡 중 성악이 들어간 것이 4곡에 이르며, 나머지 곡들도 가곡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아 염세적인 냄새가 짙다. 한편 명지휘자로서 발터, 클렘페러, 멘겔베르크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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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클로드 드뷔시(1862~1918) 문학에 있어서의 말라르메. 미술에 있어서의 세잔느와 비교되는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 바그너 음악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그는 '색채와 리듬의 시간이라는 본질'을 토대로 음악어법을 풍부하게 했다. 특히 피아노 음악의 경우. 미묘한 페달 사용으로 배음을 살린 새로운 울림, 색채감, 그리고 음역의 대조에 의해 드뷔시는 쇼팽 이후 가장 독창적인 피아노 선법을 완성했다. 또한 중세와 동양의 음악 요소를 도입해 음악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도 그의 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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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리하르트 스트라우스(1864~1949) 호른 연주자의 아들로 독일에서 태어났다. 바그너를 극도로 미워하고 브람스 음악의 동조자였던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스트라우스는 바그너의 조카딸과 결혼할 만큼 열렬한 바그너 신봉자였다. 베를리오즈와 리스트에도 심취하여 표제적인 작품에 흥미를 가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 많은 교향시를 남겼다. 지휘자로도 활동, 자작곡 외에도 모차르트나 바그너의 뛰어난 해석자였다. 만년에 나치 협력자로서 오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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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음악사상 '최후의 낭만주의자'라 불리는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성향은 차이코프스키를 대표로 하는 모스크바 악파에서 유래한다. 서구적 취향과 러시아적인 어두운 서정성이 융해되어 애수띤 풍부한 선율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일련의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그는 피아니스틱한 패시지. 다이내믹한 피아노의 화음 효과를 잘 구사했다. 그 자신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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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아놀드 숸베르크(1874~1951)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준 '12음 기법'의 창시자. 베르크 · 베베른과 '제2빈악파'를 형성한 그는 고전주의 이래의 조성 체제를 12음 기법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 체계적인 음악의 사고법은 불레즈, 스톡하우젠 등 전후 작곡가들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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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벨라 바르톡(1881~1945)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를 대표한다. 바르톡은 황금분할비를 음악에 도입한 독자적인 이론과 민요 수집에서 얻은 민족적인 감성을 유합시켜 민족적인 동시에 근대적 감각으로 충만한 강도 높은 긴장감에 차있는 작품을 창작했다. 또한 피아노 곡집인 '미크로코스모스'는 현대 피아노 음악의 입문서로 되어있다.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취급한 바르톡 음악의 특징은 격렬한 리듬의 약동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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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에 의하면 스트라빈스키는 '카멜레온 음악가' '1001의 스타일을 가진 사나이'이다. 변화무쌍하고 원색적인 그의 음악은 쉰베르크의 음악과 함께 20세기 음악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전쟁과 혁명의 와중에서 조국을 떠나 프랑스, 미국 등을 전전하여 일생을 보냈다. 파리 초연 때 큰 소동을 일으킨 발레 음악 '봄의 제전'은 20세기 최대의 문제작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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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조지 거쉰(1898~1937) 재즈를 클래식에 도입하여 미국적인 작품 양식을 창조했다. 단기간에 작곡한 피아노와 재즈 밴드를 위한'랩소디 인 블루'는 그의 출세작이며, 이것을 계기로 그는 클래식 작곡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이후 '섬머타임'으로 유명한 오페라 '포기와 베스'와 피아노 협주곡 등 클래시컬한 음악을 계속 작곡했으나, 한편으로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나 영화음악도 꾸준히 손을 댔다. 그의 음악은 동시대의 유럽 작곡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