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修羅)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거미새끼 한 마리를 문 밖으로 쓸어버림[무심함]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저린다→화자의 심리변화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연민, 자비의 감정
⇒이어 나타난 큰거미를 새끼 있는 데로 버림[서러워함]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아주 작은 새끼거미를 종이에 받아 문 밖으로 버림[슬퍼함]
※ 상황에 대한 시인의 정서적 반응이 점점 커짐 : ‘아무 생각 없이 버렸다.→가슴이 짜릿하여 서러웠다.→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걱정하고 슬퍼한다.’
* 수라(修羅) : 싸움을 일삼는 귀신. 아수라(阿修羅). 가족 공동체를 방해하는 현실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함.
* 거미 : 존재론적 연민을 갖게 하는 생명체. 유한적 존재 혹은 허무의 존재
* 방바닥 : 가족 공동체가 해체된 현실. ‘수라’와 같은 공간
* 차디찬 밤이다 : 행위의 무정함, 사태의 비극성 등을 암시함
* 어니젠가 : 어느 틈엔가
* 짜릿하다 : 화자의 감정이 직설적으로 드러남
* 아린 : 쓰라린
* 싹기도 : 흥분이 가라앉기도. 삭기도
* 가제 : 방금, 막.
* 무서우이 : 무섭게 여기며
* 문 밖 : 가족 공동체가 실현되는 공간
* 엄마와 ~ 했으면 : 거미를 의인화한 표현
● 핵심정리
▶어조 : 연민과 슬픔, 그리움의 어조
▶표현 : ① 구조의 반복과 변용을 통해 정서를 심화시킴 ② 대상을 의인화하여 표현함
▶제재 : 거미
▶주제 : 붕괴된 가족 공동체의 아픔과 회복에 대한 열망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거미 가족의 모습을 통해 붕괴된 가족 공동체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거미 한 마리가 방바닥에 내려오자 화자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쓸어버린다. 이어 어미 거미와 갓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차례로 나타나자, 화자는 ‘가슴이 짜릿’해지며 거미 가족을 위한 생각으로 그들을 밖으로 쓸어 낸다. 그리고 슬퍼한다. 화자는 가족의 해체와 이산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 빈발하고 있는 1930년대 후반의 민족적 상황을 ‘거미 일가’를 통해 보고 있기에 큰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비극의 현장을 시인은 ‘수라’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시인이 보기에 당시 우리 사회는 아수라와 같은 세계였던 것이다. 결국 이 시는 거미 가족의 모습을 통해 붕괴된 가족 공동체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우화적인 시라고 볼 수 있다.
● 출제목록
2008년 9월 2학년 전국연합
◆ ‘수라’의 분석적 읽기 -오세영
‘수라’은 점층적으로 반복되는 구조, 즉 등가성의 반복과 확장이라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첫째, 형태적인 측면에서 매연의 시행들이 시상의 전개에 따라 점층적으로 많아진다. 즉, 제1연은 2행, 제2연은 4행, 제3연은 6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행이 불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시인의 의사 표현이 강화되어 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둘째, 상황에 대한 시인의 정서적 반응이 ‘아무 생각 없이 버렸다.→가슴이 짜릿하여 서러웠다.→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걱정하고 슬퍼한다’로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거미를 문 밖으로 버린다’라는 모형 문장에 여러 가지 형식의 확장과 파생물들이 첨가되면서 화자의 행위와 정서를 보다 긴박하고 극적인 것으로 고조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수라’는 하나의 우화적인 이야기로 쓰여 있다. 단지 거미만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거미를 통해서 인간의 어떤 삶의 국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내용을 우화 내지 알레고리로 이해하는 것은 제목 ‘수라’에서 비롯한다. 불교에서 ‘수라’는 무서운 귀신을 지칭하며, 또한 육도의 하나로서 인간보다는 더 고통스럽고 축생보다는 나은 중생의 삶이 영위되는 세계이다. 시인이 이 시의 제목을 ‘수라’라고 한 것은 바로 인간의 세속적인 삶을 거미에 대한 화자의 행위에 빗대어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세속적인 삶은 ‘수라’와 같은 삶이며 동시에 시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화자와 거미가 대면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