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下宿)-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녀석의 하숙방 벽에는 리바이스 청바지 정장이 걸려 있고
쓰레기통엔 코카콜라와 조니 워커 빈 병이 쑤셔 박혀 있고 ▶ 1-8행 : 방 안에 널려 있는 서구 문물
그 하숙방에, 녀석은 혼곤히 취해 대자로 누워 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 ▶ 9-10행 : 비판 의식 없이 서구 문명에 경도(傾倒)된 젊은이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비판적
▶어조 :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나열하여 보여 주는 담담한 목소리
▶표현 : 서구 문물과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판 의식을 느끼게 함
▶ 구성
1-8행 : 방 안에 널려 있는 서구 문물
9-10행 : 비판 의식 없이 서구 문명에 경도(傾倒)된 젊은이
▶제재 : 서구 문물
▶주제 : 서구 문물에 경도(傾倒)된 젊은이의 의식 비판
● 이해와 감상
광복 이후 미군이 주둔한 이래 우리나라에는 서구 문물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봉건적 사고에 물들어 살던 사람들에게 이 서구 문물은 우리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우리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가치 없는 것, 따라서 버려야 할 것이란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무비판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외래 문물을 받아들였다. 더구나 과학 문명과 결합된 서구 문물은 우리의 삶과 가치관까지 크게 흔들어 놓았다. 영어를 한두 마디라도 할 줄 알고 외제 물품을 가지고 다니면 마치 특권층이라도 되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 시는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사용하는 의식 없는 젊은이를 비판하고 있다. 이 시에서 그 젊은이는 하숙생이다. 그의 하숙방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당대의 유명한 외제품이다. 그런 외제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방은 바로 그의 평소 관심사를 보여 준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이의 의식이다. 그의 의식은 잠들어 있다. 혼곤히 취해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이나 자기 정체성이 없는, 의식이 죽은 상태인 것이다. 10행의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도 않고’는 비판 의식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서구 문물에 무비판적으로 경도(傾倒)되었던 삶으로부터 다시 주체성을 각성하고 우리의 전통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우리 것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으나, 그 자각은 밀려드는 서구 문명 앞에 미약하기만 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에는 이런 반성이 좀더 깊이 있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 더 알아보기
<참고> 주체성과 정체성
이 시에서 두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녀석’의 방에 열거된 사물들의 공통점이고, 다른 하나는 ‘녀석’이 잠들어 있는 사실이다. ‘녀석’의 방에 있는 사물들은 모두 외제품이며, 그것으로 보아 그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을 좋아하면서도 우리 것에 대한 아무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화자는 외래문화에 젖어 우리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표현의 특징
이 시는 방에 널려 있는 외제 물건과 혼곤히 취해 자는 ‘녀석’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별다른 기교가 없어 산문 같지만, 1-9행에서는 ‘있고’로 끝내다가 마지막 행에서만 ‘않고’로 변화를 주면서 나름대로 율격을 얻고 있다. 그리고 1-8행은 방 안에 널려 있는 서구 문물에 초점을 맞추어 진술하고 있는데, 이는 외래문화에 경도(傾倒)된 젊은이의 의식을 보여 준다. 9-10행에는 진술의 초점이 ‘녀석’에 있다. 혼곤히 취해 잠을 자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그가 외래 문화를 아무 비판 의식도 없이 받아들이는 젊은이란 것을 보여 준다.
▲오규원의 시, 프란츠 카프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