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납작-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 김혜순
[드문드문 세상을 끊어내어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미술 작품에 나타나는 기법상의 특징을 시로 형상화함. 입체적이고, 연속적인 속성의 세 상을 평면적이고 정지된 그림으로 변용
흰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 둘이 / 벽 위에 납작하게 뻗어 있다.
서민들의 삶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 그림 내용에 대한 묘사(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서민들의 모습)
가끔 심심하면
여편네와 아이들도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붙여 놓고
삶의 시련과 억압
하나님 보시기 어떻습니까?
안타까운 삶에 대한 설의적 질문. 서민들이 고달프게 살아가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김
조심스럽게 물어 본다.
▶1연 : 그림의 작업 과정과 그림의 내용
[발바닥도 없이 서성서성.
입술도 없이 슬그머니.
표정도 없이 슬그머니.
그렇게 웃고 나서
피도 눈물도 없이 바짝 마르기.] 「 」부분 : 그림 속 인물의 형상화 과정
그리곤 드디어 납작해진
천지 만물을 한 줄에 꿰어놓고
가이없이 한없이 펄렁 펄렁.
하나님, 보시기 마땅합니까?
세상에 휘둘림당하는 듯한 이미지. 절대자인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서민들이 고달픈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설의적 표현임.
▶2연 :의도적인 인물 형상화를 통한 부정적 현실 비판
* 가이 없이 : 끝없이
■ 핵심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운율: 내재율
* 성격: 애상적, 반어적, 비판적
* 제재: 박수근의 그림
* 주제: 힘겨운 세상살이에 대한 서글픔과 연민
* 특징 : 그림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설의적으로 표현함 / 고달픈 삶을 사는 서민들의 입장에서 하느님께 항변하는 투의 어조를 사용함.
* 출전:《또 다른 별에서》(1981)
■ 해설
박수근이 회백색의 선묘(線描)를 주요한 기법으로 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그려냈던 것처럼 이 시의 시인도 그렇게 가느다랗게 이 세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비록 가느다랗지만 우리들 삶의 깊이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박수근 특유의 색채와 질감으로 형성된 아낙네들의 모습을 통해, '납작해진 천지 만물'을 읽어 내고자 한다.
이 시의 첫 부분에서 시인은 아주 독특한 발상을 보여 준다. 입체적인 이 세상을 납작하게 눌러서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그림 속에는 이 세상이 정말로 들어 있다. 시인 역시 이 세상이 정말로 들어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어한다. 흰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들, 그리고 여편네와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화려하고 당당한 이미지가 아니라 무채색에 가까운 색감과 입술도, 표정도, 윤곽도 희미한 인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정서는 서글픔과 애처로움일 것이다. 아무런 표정 없이 서성거리며 살다가 드디어는 피도 눈물도 없이 바짝 말라야만 잘 사는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들어 있다. 바싹 말라야 잘 산다는 것은 거꾸로 보면 구태여 시인이 이 세상을 바짝 눌러놓지 않아도 저절로 이 세상이 사람을 억누르고 납작하게 만든다는 뜻이 아닌가. 이 시의 시적 화자가 '하나님'에게 이와 같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시기 마땅합니까?'라고 묻는 부분 역시, 서민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애처로움을 설의적 표현으로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아이러니에서 이 시인이 세상을 보는 법, 더 나아가서 시를 쓰는 태도를 찾아 볼 수 있다. 바로 하느님께 이 세상이 어떠냐, 정말로 보기 좋으냐를 물어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물론 시인 자신도 하느님께 직접 자신의 의견을 물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 수가 있느냐고 피를 토하듯 묻고 싶다는 뜻으로 그렇게 썼을 것이다.
■ 그림 <세 여인>의 시적 변용
이 시의 제재이기도 한 ‘세 여인’은 박수근 화백의 작품 제목인 동시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가리킨다. 박수근 화백은 일반적으로 아낙네나 소녀, 할아버지와 같은 서민들을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애환을 나타내는 작품을 그렸다. ‘세 여인’이란 작품 역시 그림 속 인물들을 통해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작품 속 등장 인물인 세 여인은 김혜순의 이 시에서 ‘아낙네 둘’, ‘여편네와 아이들’로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다. 물론 미술 작품 속의 인물과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압축된 형태로 삶에 눌려 있는 서민들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이를 통해서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세 여인’은 미술 작품이나 시 속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중심 소재라고 볼 수 있다.
■ 학습문제
1. 이 시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대상을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② 종교적인 명상의 분위기가 강하다.
③ 역동적인 이미지가 제시되고 있다.
④ 다양한 색채적인 심상이 사용되고 있다.
⑤ 하나님을 청자로 설정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2. 이 시의 화자가 ‘하나님’에게 할 수 있는 질문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하나님, 이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② 하나님, 왜 이들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③ 하나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이들이 보기 좋습니까?
④ 하나님,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 볼 만한 곳이지 않습니까?
⑤ 하나님, 이들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3. 본문에 제시된 시와 그림 두 작품을 감상한 학생들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통하여 이 시가 본문의 그림을 제재로 삼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어.
② 화강암 암벽에 아로새긴 듯한 그림의 이미지가 시 속에서는 ‘납작’, ‘눌렀다가’, ‘바짝 마르기’ 등의 시어들을 통해 적절하게 형상화된 것 같아.
③ 하지만 시 속의 인물과 그림 속의 인물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진 않아. 시 속에는 ‘아이들’도 등장하잖아?
④ 그래도 두 작품의 인물이 모두 서민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
⑤ 맞아, 무엇인가에 짓눌려 있는 듯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강한 의지가 잘 표현디고 있어.
4. 시상 전개로 볼 때, 이 시의 표면적 화자를 유추하여 쓰시오.
5. 이 시의 내용으로 볼 때, ㉠과 같이 표현한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화자가 마음을 열 수 없기 때문에
② 서민들의 인정이 메말랐기 때문에
③ 화자의 삶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④ 서민들의 삶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에
⑤ 서민들의 동정과 연민을 싫어하기 때문에
<정답>
5, 4, 5, 화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