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가을 하늘에 도취됨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성숙하는 ‘나’
-<해 1949>
▒ 핵심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주제 : 하늘과의 교감(交感)에서 오는 희열(喜悅). 신비로운 자연과의 합일(合一)
▶특징: ① 연쇄법을 활용함 ② 자연과의 합일을 노래함
▶시상전개: 육신을 씻음→하늘로 채움→성숙, 결실됨을 느낌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맑고 푸른 초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샘솟는 생의 기쁨과,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이루는 경지를 연쇄의 표현 기법과 정제된 언어로써 잘 나타낸 작품이다.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추구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과 일체화된 신성(神性)의 자연이다. 전 7연의 이 작품은 내용상 2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락(1~4연)에서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가 그 아름다움에 도취됨으로써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어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과 하나가 된 희열감(喜悅感)과 함께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시인의 경건한 자세가 나타나 있다.
둘째 단락(5~7연)에서는 시상이 점차 고조되어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는 마지막 행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가운 볕 / 초가을 햇볕으로' 세속에 물든 자신의 육신을 씻어낸 다음, 그 깨끗해진 가슴에 절대 순수의 '하늘'을 가득 채워 넣었을 때, 마침내 영혼은 빨갛게 익어가는 '능금처럼' 성숙, 결실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시적 자아의 세속화된 영혼을 맑게 씻어줌으로써 그의 삶을 살찌우는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두진에게 있어 하늘은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주재자로서, 일종의 종교적 구원의 주체요, 경외(敬畏)의 대상인 절대적 '하늘'로 우리 민족의 '경천(敬天) 사상'과 맥락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하늘의 의미 : 이 작품의 시적화자는 '따가운 볕'과 '초가을 햇볕'으로 세속에 물든 자신의 육신을 깨끗하게 씻어낸 다음, 목이 말라서 영혼의 생명수와도 같은 하늘을 자꾸 마신다. 하늘을 마시고 나니 내가 익고 능금이 익듯이 내 마음도 익어간다. 즉 깨끗해진 가슴에 절대 순수의 '하늘'을 가득 채웠더니 익어가는 능금처럼 성숙해짐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에서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세속화된 시적 화자의 영혼을 맑고 깨끗하게 씻어줌으로써 시적 화자의 삶이 성숙해지고 결실을 맺도록 하는 생명수이다. 곧 영혼, 정신, 생명의 근원이며, 평화와 결실을 주재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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