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소리 가득 차 있었다-이용악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점층: 이국의 쓸쓸함 부각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벌레소리 가득 차 있었다. ▶타국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맞이한 비참한 심정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아버지의 고통스런 삶과 주검을 지켜보는 화자의 심정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아버지의 죽음을 감정을 절제하여 묘사함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주는 비극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소리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처절한 비애
수미상관 -(시집 <분수령>, 1937)
■ 시어 풀이
• 자래운 : 자라게 한
• 아므을만(灣) : 흑룡강 하류의 아무르 지역.
• 설룽한 : 춥고 차가운
• 니코리스크 : 시베리아 하구의 항구 도시 니콜라에프스크를 가리킴.
■ 주제 : 식민지 유이민들의 비극적인 삶, 타국에서 맞이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참담한 슬픔
■ 구성
1연 : 아버지의 객사(客死)
2연 : 유언 없이 죽은 아버지
3연 : 아버지의 죽음이 주는 비극
4연 :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가족의 슬픔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낯선 이국땅에서 침상도 없이 임종을 맞이한 아버지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조선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의 초점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기보다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정황-아버지의 죽음과 그 주변의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하는데 있다. 이러한 시적 기법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극적 정황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에게 더욱더 큰 감동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벌레소리 가득 차 있었다.'다는 말은 시적 화자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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