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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여승(女僧) -송수권

작성자kongja|작성시간08.09.22|조회수129 목록 댓글 0

첨부파일 여승-송수권.hwp

 

여승(女僧) -송수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 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을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1~6행): 장지문 틈으로 여승을 훔쳐봄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7~11행): 잊을 수 없는 여승의 모습

나는 너무 애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찹사운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로 뒤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12~21행) : 여승을 따라갔다 돌아옴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빛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22~25행): 꿈속에서 여승을 만남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26~28행): 순수한 마음으로 시를 씀

 

■ 핵심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운율 : 내재율

3. 제재 : 여승

4. 성격 : 회상적

5. 구성

1연(1~6행) : 장지문 구멍으로 여승을 봄

2연(7~11행) : 잊을 수 없는 여승의 모습

3연(12~21행) : 여승을 따라갔다 돌아옴

4연(22~25행) : 꿈속에서 여승을 만남

5연(26~28행) : 순수한 마음으로 시를 씀

6. 주제 : 여승의 단아한 인상과 순수한 사랑으로 쓰는 시

7. 특징

(1) 어느 하루의 짧은 시간과, 집에서 동네 어귀까지의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화자의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다.

(2) 남도의 방언을 풍부히 활용하면서 여승에 대한 화자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 이해와 감상

과거 어느 봄날 ‘나’가 만난 여승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을 회상하며 그때 느낀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마음을 고백하는 형식의 시이다. 감기를 앓아 방 안에 누워 있던 나는 장지문 구멍으로 여승을 만나게 되고, 세속을 떠난 그녀의 모습으로부터 신비롭고 막막한 심정으로 여승을 따라 나선다. 한참 뒤에야 뒤돌아 본 여승에게 합장을 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뛰어온 나는, 그 후에서 꿈속에서 고결하고 순수한 모습의 여승을 만나곤 한다. 화자는 그 때 내 가슴이 느낀 그런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과 고통을 '그늘'과 '눈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고통을 인정하고 위로하며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삶의 기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시는 화려한 수사 어구가 아닌 단순한 표현만으로도, 우리가 자칫 무심코 넘길 수 있는 일상의 깨달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 을 전해준 작품이라 하겠다.

「여승」은 송수권 시의 출발점이자,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 시를' 쓰는 송수권 시작(詩作)의 원동력이라 여겨진다. '여승'이란 본래 속세를 떠나 사는 존재이다. 속세의 인간과 어울릴 수 없는 깨끗하고 순결한 존재이며,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 그리하여 '여승'은 속세의 인간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기보다 오히려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속세의 인간은 '여승'을 보며 정화의 욕망을 품기도 한다. 속세의 인간과 '여승' 사이에 존재하는 그 거리감만큼 그리움도 커지는데, 바로 이 때문에 송수권은 '여승'을 보며 '애지고 막막하여'지는 것이다.

여기서 '애지고'란 시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애─지다'에서의 순 우리말 '애'는 고어 속의 '창자'이거나 '타는 근심 속의 매우 큰 수고로움'을 의미할 것이다. 이야말로 설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몸과 마음의 수고로움'은 박재삼 식의 '서러운 그리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움에 대한 표현 '애지고'는 참으로 절묘하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여승』을 통해 본 송수권의 시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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