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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비오는 날/ 손창섭

작성자kongja|작성시간07.04.23|조회수1,338 목록 댓글 0
 

비오는 날

- 손창섭1)


▶ 길잡이

1953년 <문예>에 발표된 단편소설. 6․25 직후의 부산을 배경으로 동욱 남매의 불행을 그리고 있다. 비가 오는 음산한 풍경을 배면(背面)에 깔면서, 이상 성격자 동욱과 동옥의 절망과 무기력이 음울한 문체로 표현되어 있다.


▶ 작품의 이해와 감상(1)

손창섭의 소설의 인물들은 대체로 음울하다. 동시에, 상식을 깨뜨리고 의외의 충동으로 삶과 대치(對峙)한다. 비(非)사회적이며 우발적이다. 때문에 그들은 넓은 세계에서 호흡할 수 없으며, 늘 폐쇄되어 있다. 그 상징적 공간이 󰡔혈서(血書)󰡕 등에 중심 배경으로 놓여 있는 ‘방(房)’인데, 이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작가 자신도 그의 소설을 ‘나와의 공존과 공감을 허용하지 않는 기성 사회, 기성 권위에 대한 억압된 인간적 발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그의 소설을 냉소와 자조(自嘲), 허위에 대한 불신, 애정의 마비, 생활의 분열로 성격 짓게 한다. 특히, 이 󰡔비 오는 날󰡕의 경우는 전쟁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삶이기에 그 분위기가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고, 이를 짙게 물들이는 것이 ‘비가 온다’는 눅눅한 배경 설정이다.

역사적 조건이 빚어 놓은 병리적 사회 현상이 개인을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상황 속에서 개인은 무기력하게 피폐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 이때 ‘비 오는 날’이란 상황 설정은 피난지에서 폐가나 다름없는 동욱의 집과 함께 주제를 더욱 선명히 부각시켜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사회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생존의 비극성을 밀도 있게 구현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적 불구로 인해 소외될 수밖에 없는 동옥. 그녀가 그린 초상화를 미군들에게 팔아 연명해야 하는 동욱 ― 이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인생들로, 그들 남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희생된 인물들이다.


▶ 작품의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의 배경은 부산이다. 부산은 한국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적인 장소이다. '폐가와 장마'라는 배경 또한 주제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우울한 내면 심리를 다룬 전후문학이다. 사건의 직접 제시보다 어떤 사건에 의해 환기된 심경의 변화를 그리는 일이 앞서고, 객관적 인물사보다 처음부터 작가에 의해 주관화된 냉소적인 관찰로 인물 묘사가 행해지는 특이한 소설양식을 갖고 있다. 주로 간접 화법에 의해 대화가 처리되며, 부사어 및‘~것이다’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6.25 라는 전쟁이 개인을 어떻게 황폐화시킬 수 있었던 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범선의 [오발탄]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시간 - 6․25 중, 장마철

공간 - 피난지 부산의 변두리

․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소외된 인간상을 피학적(被虐的) 어조로 묘사함.

․ 특징 : 사회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 시간 공간적 배경이 적절히 배합되어 생존의 비극성을          밀도있게 구현.

․ 주제 : 전쟁의 극한 상황이 가져다 준 인간의 무기력한 삶.(전쟁의 와중에서 생계의 수단         과 삶의 의지를 상실한 인간의 비참한 모습)

․출전 : [문예]


▶ 등장 인물

․ 원구 : 이 작품의 서술자로 동욱의 친구. 동욱 남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인물.

․ 동욱 : 전쟁의 피해자로 무기력한 인물.

․ 동옥 : 동욱의 여동생. 소아마비로 신체 불구자. 생계 유지를 위해 초상화를 그림.


▶ 구성

․ 발단 : 비가 내리는 날이면 원구에게는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회상됨.

․ 전개 : 원구는 황폐한 동욱의 집을 방문하여 동욱과 그의 누이동생 동옥을 만남.

․ 위기 : 동옥의 자조적인 웃음. 그들의 유일한 생계인 초상화 작업을 못하게 함.

․ 절정 : 동옥이 노파에게 돈을 떼이고, 세 들어 살던 집마저 떠나게 됨.

․ 결말 : 원구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이미 그들은 떠나고 그는 자책감에 빠져 돌아옴.


▶ 줄거리

6․25 당시, 임시 수도 부산에 피난 온 대학생 원구는 친구 동욱의 집에 가 본 후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들 남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동욱은 누이동생 동옥과 1․4후퇴 때 월남하여 살고 있다. 동욱은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한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으로 동옥이가 초상화를 그려서 그나마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동옥은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로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절고 있다. 동욱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착실한 교인이며 목사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원구를 처음 만났을 때 적대감을 보이던 동옥은 만남이 되풀이되면서 점차 태도가 부드러워진다. 동욱은 원구에게 동옥과 결혼하기를 권유한다. 동욱 남매가 살고 있는 집은 그들의 비참한 생활만큼 황폐한 판자집이었다. 비가 갠 어느 날 리어카에 잡화를 벌여 놓은 원구에게 동욱이 찾아와서, 통역 장교 모집에 응시하려다 수속이 복잡하여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며칠 후 원구가 동욱의 집에 찾아갔으나 동옥은 주인 노파에게 빌려 준 돈을 떼여 그녀의 얼굴에서 자조적인 웃음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며칠 후, 동욱의 집을 찾아 든 원구를 동욱 남매가 아닌 낯선 사내가 주인이라며 맞는다. 그 사내는 동욱은 외출한 채 소식이 없고, 세 들어 살던 집마저 주인이 몰래 팔고 도망가고 동옥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동옥이는 얼굴이 반반하여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사내 말소리를 등지며, 원구는 자기가 동옥을 팔아먹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 또 다른 줄거리 요약

동욱은 현재 누이동생 동옥과 1.4 후퇴 때 월남해서 살고 있다. 소학교 시절부터 친구 인 원구 역시 월남해서 행상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으나 오히려 친구인 동욱과 동옥의 생활을 걱정한다. 피난지 부산에서 원구는 리어카에 잡화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옥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 부자유자이다. 그의 오빠인 동욱 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착실한 교인으로 목사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6.25 라는 전쟁은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월남 이후 동욱은 미군 부대를 전전하 면서 초상화를 주문 받고 동옥은 집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생계를 간신히 꾸려 나간다. 그들 은 인가에서 외딴 곳, 황폐한 집에 사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목조 건물조차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나타내고 있다. 동옥이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곳에 사는 것이다. 장마가 진 어느 날 원구가 동욱의 집을 찾아갔으나 동옥의 얼굴에서는 자조적인 웃음밖에 발견 할수 없었고, 오히려 냉담하게 대하는 것이다.그래서 원구는 돌아오다가 동욱을 만나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지붕은 비가 새어 방안에 양동 이를 받쳐 놓았는데 빗물이 가득한 것을 버리려다 쏟고 말았다. 그때 물을 피하려 일어나는 동옥을 보고야 동옥이 다리 불구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 비오는 날이면 자주 그 집을 방문하였 는데, 점차 동옥이 원구를 대하는 태도가 좋아진다.

그러던 어느날 이후 동욱은 그의 유일한 생계인 초상화 작업마져 하지못하게 된다. 그래서 동 옥이 너무 불안해 하니 자주 찾아와 위로해 주라는 부탁을 동욱이 원구에게 한다. 다시 비오는 날, 그들을 찾아가니, 동옥이 그동안 모아둔 돈을 빚낸 주인 노파가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그 래서 동옥은 더욱 절망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욱과 동옥이 세들어 살던 집마져 주 인이몰래 팔고 도망가 버려 결국 그집에서 나오게 된다.

원구가 한달여 만에 그집을 방문했을때 이미 그들은 떠나고 없어 궁금해 한다. 아마도 동욱은 군대에 끌려가고- 그 당시는 검문해 증명이 없으면 군대에 끌려 가게 되어 있었다. - 동옥은 주인 녀석이 사창가에 팔아 먹은 것같다는 격분과 자책을 안고 돌아온다.




▶ 수행 평가

◎ 다음은 손창섭의 소설 ‘비 오는 날’의 일부이다. 잘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1-3]

(가)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元求)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東旭)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는 으레 동욱과 그의 여동생 동옥(東玉)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에 쓰러져 가는 목조 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욱이 오누이의 생활을 생각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이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나) 이 폐가와 같은 집 앞에 우두커니 우산을 받고 선 채, 원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집에도 대체 사람이 살고 있을까? 아이들 만화책에 나오는 도깨비 집이 연상됐다. 금시 대가리에 뿔이 돋은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집에 동욱과 동옥이 살고 있다니 원구는 다시 한번 쪽지에 그린 약도를 펴 보았다. 이 집임에 틀림이 없었다. 개천을 끼고 올라오다가 그 개천을 건너선 왼쪽 산비탈에는 도대체 집이라고는 이 집 안 채뿐이었다.


(다) 그러자 문 안에 친 거적 귀퉁이가 들썩하며, 백지에 먹으로 그린 초상화 같은 여인의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살결이 유달리 희고 눈썹이 남보다 검은 그 여인은 원구를 내다보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저게 동옥인가 보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여기가 김동욱 군의 집이냐는 원구의 물음에 여인은 말없이 약간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 태도는 거만해 보이는 것이었다. 동욱 군 어디 나갔습니까 하고, 재차 묻는 말에도 여인은 먼저처럼 고개만 끄덕했다. 그리고 나서 원구를 노려보는 듯하는 그 눈에는 까닭모를 모멸과 일종의 반항적 태도까지 서리어 있는 것이었다. 여인이 혹시 자기를 오해하고 있지 않나 싶어, 정원구라는 이름을 밝히고 나서 동욱과는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동창이었다는 것과 특히 소학 시절에는 거의 날마다 자기가 동욱이네 집에 놀러 가거나, 동욱이가 자기네 집에 놀러 왔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여인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원구는 한층 더 부드러운 음성으로 혹시 동욱 군의 여동생이 아니십니까? 동옥이라구…… 하고 물었다. 여인은 세 번째 고개를 끄덕여 보인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그 얼굴에 조소를 품은 우울한 미소가 약간 어리는 것이었다. 동욱이 어디 갔느냐니까 그제야 모르겠는데요 하고 입을 열었다. 꽤 맑은 음성이었다. 그러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군요 하니까, 이번에도 동옥은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무례한 동옥의 태도에, 불쾌와 후회를 느끼면서 원구는 발길을 돌이키는 수밖에 없었다. 동욱이가 돌아오거든 자기가 다녀갔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이르고 돌아서는 원구에게, 동옥은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았다.


(라) 순식간에 방바닥은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여지껏 꼼짝도 않고 앉아 있던 동옥도 그제만은 냉큼 일어나 한걸음 비켜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동옥의 동작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원구에게 또 하나 우울의 씨를 뿌려 주는 것이었다. 원피스 밑으로 드러난 동옥의 왼쪽 다리가 어린애의 손목같이 가늘고 짧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리를 옮겨 디디는 순간, 동옥의 전신은 한쪽으로 쓰러질 듯이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동옥은 다시 한번 그 가늘고 짧은 다리를 옮겨 놓는 일 없이, 젖지 않은 구석 자리에 재빨리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희다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에 독이 오른 눈초리로 원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 보는 것이었다. 동옥의 시선을 피하여 탁류의 대하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은 공포에 몸을 떨며, 원구는 마지막 기력을 다하여 허위적거리듯 두 발로 물 괸 방을 허위적거려 보는 것이었다.

1. 이 글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증폭시키는 (1)시간적, (2)공간적 배경을 밝혀 쓰라.

<모범답> (1) 비 오는 날       (2) 폐가와 같은 음습한 집


2. 동옥이 원구에 대하여 그토록 냉담한 태도를 보인 이유에 대하여 (라)를 근거로 답하라.

<모범답>  육체적 불구로 인한 정신적 폐쇄성 때문에.


3. (다), (라)가 보여 주듯, 이 소설은 서술어를 특히 ‘~것이(었)다.’ 형태로 종결 짓고 있다. 이러한 문체는 상황 전달을 느슨하게 하는지 긴박하게 하는지 판단하여 답하라.

<모범답> 사실(事實)을 결정짓는 확정적 어조로서, 상황을 더욱 긴박감 있게 드러낸다.


[4-6]

그 뒤로는 원구도 생활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 달 가까이나 장마로 놀고 보니 자연 시원치 않은 장사 밑천을 그럭저럭 축내게 된 것이다. 원구가 얻어 있는 방도 지리한

비

에 습기로 눅눅해졌다. 벗어 놓은 옷가지며 이부자리에까지도 곰팡이가 끼었다. 그의 마음속까지 곰팡이가 스는 것 같았다. 이런 날, 이런 음산한 방에 쳐박혀 있자니, 동욱과 동옥의 일이 자연 무겁고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점심때가 되어서 원구는 퍼붓는 비를 무릅쓰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동욱이와 마주앉아 곰팡이 슨 속을 씻어내리며, 동옥이도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원구는 술과 통조림을 사들고 찾아갔다.

낡은 목조 건물은 전과 마찬가지로 금방 쓰러질 듯 빗속에 서 있었다. 유리 없는 창문에는 거적도 그대로 드리워 있었다. 그러나 동욱이, 하고 원구가 불렀을 때 곰처럼 마루로 기어나오는 사나이는 동욱이가 아니었다. 이 집에 살던 젊은 남녀는 어디 갔느냐는 원구의 물음에, 우락부락하게는 생겼으되 맺힌 데가 없이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사십 전후의 그 사나이는, 아하 당신이 정(丁) 뭐라는 사람이냐고 하고 대답 대신 혼자 머리를 끄덕끄덕하는 것이었다. 원구가 재차 묻는 말에 사나이는 자기가 이 집 주인이노라 하고 나서, 동욱은 외출한 채 소식 없이 돌아오지 않게 되었고, 그 뒤 동옥 역시 어디로 가 버렸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동욱이가 안 돌아오는 지는 열흘이나 되었고 동옥은 바로 이삼 일 전에 나갔다는 것이다.

원구는 더 무슨 말이 없이 서 있었다. 한 손에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받고 선 채, 원구는 사나이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원구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몇 걸음 걸어 나가다가 되돌아와 보자기에 싼 물건을 끌러 주인 사나이에게 주었다. 이거 원, 이거 원, 하며 주인 사나이는 대뜸 입이 헤벌어졌다. 그리고는 자기 여편네와 아이들이 장사 나갔기 때문에 점심 한 그릇 대접할 수 없으나 좀 올라와 담배라도 피우고 가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무슨 재미로 쉬어 가겠느냐고 하며, 원구가 돌아서려니까, 주인은 잠깐만 하고 불러 세우고 나서,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노라고 하며 ㉠사실은 동옥이가 정(丁) 누구라고 하는 분이 찾아오면 전해 달라고 편지를 맡기고 갔는데, 그만 간수를 잘못해서 아이들이 찢어 없앴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무 말 않고 멍청히 서 있는 원구를 주인 사나이는 무안한 눈길로 바라보며, 동욱은 아마 십중 팔구 군대에 끌려 나갔을 거라고 하고, 동옥은 아이들처럼 어머니를 부르며 가끔 밤중에 울기에, 뭐라고 좀 나무랐더니, 그 다음날 저녁에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죽지나 않았을까, 자살을 하든 굶어 죽든……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기리며 돌아서는 원구의 등에다 대고, 중요한 옷가지랑은 꾸려 갖고 간 모양이니 자살을 할 의사는 없었음이 분명하고, 한편 병신이긴 하지만 얼굴이 고만큼 밴밴하고서야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말에, 이상하게 원구는 정신이 펄쩍 들어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고 대들 듯한 격분을 마음속 한구석에 의식하면서도,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듯한 육체의 중량을 감당할 수 없어 그는 말없이 발길을 돌이키었다.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는 흥분한 소리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자기를 향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오한을 느끼며, 원구는 호박 덩굴 우거진 밭두둑 길을 잃고 난 사람 모양 휘청거리는 다리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4. 이 소설이 전후(戰後) 소설임을 고려하여, 지배적 배경인 의 기능이 무엇인지 40자( 띄어쓰기 포함) 내외로 쓰라.

<모범답> 전후의 암담한 현실 상황을 상징하며 음울한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한다.


5. 원구는 동옥이 그 ‘낡은 목조 건물’을 떠난 이유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과 같은 상황 설정은 원구의 심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70자( 띄어쓰기 포함) 내외로 쓰라.

<모범답>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원구에게 더욱 깊은 의문점을 제기하고, 그녀의 비극적 운명에 대하여 비애감을 더해갈 것이다.


6. ㉡에 나타난 원구의 심정을 좀더 간명하게 쓰라.

<모범답> 그녀를 돌보지 않았기에 결국 내가 동옥이를 팔아먹은 셈이 아니냐 하는 자책감.


▶ 손창섭의 ‘비 오는 날’ 全文(발단부)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는 으레 동욱과 그의 여동생 동옥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에 쓰러져 가는 목조 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욱이 오누이의 생활을 생각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이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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