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방-강석경
앞부분의 줄거리 : 대학생인 소양이 식구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휴학을 해 버리자 식구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결혼을 앞두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큰언니 미양은 소양의 방황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 위해 소양 주변의 인물들을 만나러 다닌다.
자유의 회오리바람이 잠들지 않는 대학 광장은 신성했지만 그것은 왠지 선혈 같아서 전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신문지상엔 일 단짜리 학원 기사가 시대의 밑반찬처럼 연일 오르내리고 오늘도 누군가가 희생양으로 구속되고 제적될지 모른다. 그들의 광장은 잠시 주어진 유예된 특권의 땅이었다.《세상 밖으로 한 발짝만 나오면 젊음의 숨을 꺾을 방패가 복병처럼 숨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젊은이들의 이상이 현실에 의해 좌절될 것임을 암시함
벤치에 앉아 있노라니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스페인풍의 무곡 같았으나 감정이 깃들여 있지 않아 권태롭게 들렸다.
숲에서 남녀 학생들의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내 앞으로 껑충한 통바지에 뾰족 구두를 신은 한 여학생이 귀고리를 흔들며 바삐 걸어갔다.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긴 금속 줄에 삼각형까지 달린 귀고리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것도 젊음의 모습인지 모른다. <중략>
▶소양의 학교를 찾아간 ‘나’가 본 대학 캠퍼스의 풍경(자유로운 젊음의 현장↔정체성을 찾지 못한 혼란의 공간)
나는 그날 둘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듣고 싶었다.
“우리들의 진실에 관한 얘기죠, 뭐.”
소양과 명주가 찾고자 하는 삶의 진실
명주는 이렇게 운을 떼곤 요즘 자기는 사회의 불평등에 관심이 많다고 서두를 꺼냈다. 우리 같은 과도적 산업 사회의 구조상으로는 권력이나 경제에서 한 집단의 승리는 다른 집단을 희생시켜 얻어진 것이고 그래서 모든 사회 계층 체계는 그 원칙에 대한 저항을 자아내며 그 자체가 억압의 씨앗을 낳는다. 사회에서 불리한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보다 나은 소득을 약속해 주는 규범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말끝에 명주는 학생 운동으로 대화를 끌고 갔다. 대학생이란 어쨌든 선택받은 환경의 사람들인데 그러니만큼 사회 진보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기성인들은 안락한 자기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소시민으로 타락해서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므로 자신들이야말로 순수하게 싸울 수 있노라 했다. <중략> ▶학생 운동에 대한 신념을 지닌 명주
“나는 주로 이런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소양이가 그것이 그토록 너에게 절실하냐. 겉멋 든 엘리트 의식이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깨우치고 민중 운동을 한다고 나서느냐 해요. 또 운동하는 건 좋은데 다른 고통,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너희들만 의식 있는 인간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너희들이 대항하려는 체제만큼 비인간적이라고 공박했어요.”
그 정도로 그날의 상황을 알 듯했다. 데모하다 퇴학을 당해서 휴학한 건 아니냐 물었던 어머니에게 그런 뚜렷한 명분이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답했다는 소양이다. <중략>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는 소양
“소양인 추운지 파리한 얼굴로 목련 나무 아래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조그만 아이가 물론 꽃송이보다야 크지만 그날따라 작아 보였어요.─크고 누렇게 시든 목련 꽃 아래 앉아 있는 걸 보니까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그날이에요. 휴학하겠다는 얘기를 한 게.”
소양이 명주에게 한 얘기도 우리에게 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가 가짜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학교도 껍데기고 자기도 껍데기라는 것. 또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은 여전히 추상적으로 들려서 선명하게 닿아 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엇을 잡으려고? 물었다.
“진실 같은 거겠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명주는 처음에도 우리들의 진실 운운했다. 그것이 저희들끼리 공통분모 격인 낱말인지는 모르지만 진실이라니, 얼마나 애매모호한 관념어인가. 진실을 잡겠다는 것은 공기를 잡겠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중략> ▶가치관의 혼란으로 방황하고 있는 소양
“교수들요? 평생이 보장된 직업인일 뿐이에요. 소양이 이름자나 기억할까?”
명주의 냉소는 극단적이었지만 나도 사실 학교로 찾아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내 음대 시절을 생각해도 존경했던 교수는 한둘이고 인간적인 교류를 가진 교수도 뚜렷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 / 명주는 무작정 교수를 만나느니 소양과 친했던 과 친구를 만나 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것은 적절한 조언이었다. 나는 명주 전화번호와 들은 기억이 있는 신경옥이란 이름을 수첩에 적고 학교엔 들어가지 않았다. 나와 교문 앞에서 헤어지면서 명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지듯 한마디 더 했다.
“소양이를 이해해 보도록 하세요. 소양인 집을 좋아하지 않지만 식구들이 따뜻하게 관심을 가져 준다면 외로운 일기는 쓰지 않을 거예요.”
외로운 일기? 더 말할 틈도 없이 명주는 단발머리를 젖히며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소양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방문도 잠겨 있었다. 할머니는 외출했는지 이층은 고요했고 초가을 햇살만 소리 없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가족의 이해와 관심을 부탁하는 명주
● 줄거리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소양이 휴학을 한 사실에 대해 가족들이 성화를 부리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결혼을 앞두고 다니던 은행을 그만둔 큰언니 미양은 소양의 방황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소양의 친구들인 명주, 경옥, 희중 등을 만나고 소양의 일기장을 훔쳐보기도 한다. 한편, 소양은 계속 외박하거나 늦은 귀가로써 식구들에게 반항을 한다.
어느 날 소양의 귀가를 기다리던 미양은 혜양과 같이 종로로 나간다. 그곳에서 소양이 잘 간다는 카페에 들어가 실내 인터폰을 통해 세 명의 남학생과 합석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종로의 밤거리를 배출구로 여기는, 일부 젊은이들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집에 와 보니 외박했던 소양이 아버지와 한 차례 소동을 벌인 뒤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미양은 계속 명주를 만나 소양의 학교생활에 관하여 얘기하고 수첩에서 소양의 남자 친구인 희중의 전화번호를 찾아 만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며칠 동안 소양은 어느 때 보다 평안하게 보내다가 미양의 함진아비가 오던 날 저녁 다시 외출해 버린다. 소양의 일기장을 읽은 미양은 극도의 불안에 싸여 종로로 나간다. 지난번 카페에서 만났던 남학생들과 부딪쳐 그들의 '큰 껀수' 올리는 데 자금 5,000원을 대준다. 그러나 그 돈이 중년 남자에게 데려갈 여학생을 낚는 데 쓰여지는 것임을 알고 채 놀라기도 전에 그들이 낚아 차에 태우려는 여대생이 소양임을 알고 말리려다 소동을 벌인다.
소양은 울면서 인파 속으로 도망쳐 버리고 허탈과 놀라움에 지친 미양은 무심하게 디스코테크에 들어간다. 거기에서 상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의 소년을 만나, 함께 새벽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다 새벽에 돌아온다.
결혼식을 올린 미양은 남편 최 대리와 함께 꿈같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날 밤 미양은 악몽으로 잠을 깨어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서는데, 어디서 비릿한 내음이 온 거실에 끼쳐 온다. 떨리는 손으로 소양의 방문을 열었을 때, 붉게 물든 방바닥에 검은 옷을 입은 소양이 쓰러져 있었다. 붉은 지도 위의 혁명가처럼 피가 배인 노트에는 절망적인 낙서가 쓰여 있었다.
● 핵심정리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배경 : 서울
▶주제 : 시대적 상황 속에서 겪는 현대인의 좌절과 꿈.
● 등장인물
▶소양-심판하고 단죄하려는 성격이 강한 여대생.
▶미양-결혼을 앞둔 소양의 큰언니. 소양을 이해하려 함.
● 이해와 감상
<숲 속의 방>은 1985년에 발표된 중편소설로서, 제1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소양이라는 한 여대생의 정신적 방황을 통해 진실한 삶의 방식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삶과 현실에 안주하는 기성세대의 삶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도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소양은 삶에 대한 극도의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소양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자살로 귀결되고 마는데, 이것은 곧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소양이 방황하는 이유
명주 : 사회 개혁의 실현을 위한 진보적 신념을 지닌 운동권 학생(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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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의 가족 : 개인적 안락만을 추구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성세대
⇓
명주와 가족 중 어느 쪽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소양은 방황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자 함(개인적 차원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함)
▶소양의 ‘방’의 의미
-소통이 부재하는 공간
-외부와 단절된 공간
-새로운 삶의 진실을 모색하는 공간
-자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