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땅 언덕 위 -박태순
방 안의 공기는 험악해졌다.([1]방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임. 뭔가 심각한 분위기임)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종애가 그 전과는 달리 공격적으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서 나합돈 영감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이보렴, 종애야.” / 변 노인이 그 때 의젓하게 말을 꺼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그렇게 어른 말씀에 대꾸하는 게 아니래두. 내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변 노인은 적잖이 체통을 세우면서 말했다. 그러자 분위기는 단박에 조용해졌고, 변 노인은 마치 종애에게 담배를 권하는 것처럼 고의춤에서 파고다(담배 이름)를 꺼냈다.
변 노인은 나합돈 영감에게 담배를 권하고는 암말도 없이 뻐끔뻐끔 담배를 피웠다.(뭔가 중요한 화제를 꺼내려는 ‘변 노인’의 심적 부담감이 드러나고 있다. 담배는 흔히 착잡한 심리 표현의 매개체 역할)
구 여사는 이윽고 풀이 죽은 태도로 얌전히 앉아 있었고, 종애는 다시 정의도로부터 온 편지를 읽었다. 그러자니 어느덧 떠들썩하니 흥분되었던 일이 어째 우습게 여겨지고, 종애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파리란 놈들이 잘난 체하면서 낮은 천장을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열심히 쫓아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죽자고 달라빼는 놈들도 있었다.(파리의 행동을 통해 인간 사이의 관계를 암시. ‘나종애’가 ‘정의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있음)종애는 그러고 있는 파리에게 눈 주면서 시름에 잠겨 갔다. 막상 정의도의 거처를 찾아낸다는 것도 문제였고, 설사 정의도를 찾아냈다고 했자 그가 꼭 반갑게 대해 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정의도의 편지를 읽고 종애가 판단한 내용임. 2가지 이유로 정의도를 찾아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임. 정의도와 종애는 연인 사이로 판단할 수 있음) 그렇다고 허구한 세월을 집구석에 박혀 기다리고 있기도 싫었다. 그리고 그녀는 맥을 놓고 앉아 있는 부모를 바라보았다. 딱히 효심이 발동해서는 아니겠지만 부모님을 돌봐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났다. 종애는 저도 모르게 푹 한숨을 쉬었다. (종애는 정의도를 찾아 나설까, 부모님을 모실까를 놓고 갈등함. 종애의 내적 갈등)
“종애야.”
변 노인은 종애가 한숨을 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처럼 큰소리로 말했다. (중략)
“너두 내 아들 녀석이 구라파에 광부로 가 있다는 건 알지?”([2] 변 노인의 아들 얘기로 화제가 바뀜)
변 노인은 적잖이 뽐을 내는 어조로 자기 아들 얘기를 꺼냈다. 미처 종애가 ‘네 알아요’하고 얘기하기도 전에 변 노인은 아들 자랑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몹시 고생을 시켜가며 키워왔는데, 이제 커서 저의 아버지를 용심(用心)(마음을 씀)하는 성의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아들로부터 어제 생활비와 함께 또 편지(사건 전개의 매개체. 편지의 내용이 사건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됨)가 왔다는 것이었다. 변 노인의 얘기는 바로 그 편지의 내용에 대한 것이었다. 변 노인은 ‘부주전상서(父主前上書)’(아버지께 올리는 글)로써 시작되는 그 편지를 한시 읽듯이 읽었다.
그 편지의 내용인즉슨 대략 이러했다. 광부 생활은 여전하다는 것, 그리고 저금도 조금했다는 것, 그런데 조금 더 돈을 받을 수 있는 묘안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결혼한 광부에게는 가족 수당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쪽 돈으로 환산하면 팔천 원 가량을 더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가족수당을 받아 내야 하겠다는 얘기였다.(편지의 내용을 요약 제시한 부분이며, 가족 수당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편지의 핵심임)
“알겠느냐, 이 아이야. 물론 내 아들놈은 총각이야. 아, 그렇다구 해서 너더러 내 아들놈과 결혼하라는 얘기야 아니구말구. 결혼이야 네가 어련히 알아서 그 정 도령(정의도)인가허고 하겠지러.”
변 노인은 나종애를 빤히 쳐다보더니,
“문제는 간단한 거여, 구청에 가서 내 자식놈허구 혼인한 양 그까짓 종이에다가 몇 자 끄적끄적해서 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렷다.”(변 노인의 사람됨이 여실히 드러난 대화. 돈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물적, 배금주의적 태도임.)
“뭐라고요?”
“원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다니? 결혼한 광부에게는 가족수당이라는 것이 붙어서 이쪽 돈으로 계산하여 팔천 원 가량 더 준다는 거야. 허니까 네가 문서상으로만 내 자식놈허고 성사(일을 이룸, 즉 결혼)를 하면…….”
“그러면 저는 어찌 되나요?”([3] 변 노인의 제안에 대한 종애의 반응이 제시되는 장면임.) (문서상으로 결혼하게 되면 자신은 그대로 결혼한 여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의 뜻이 담겨 있음.)
나종애는 갑자기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되다니? 아무치도 않지. 그리구 넌 매달 사천 원씩을 받게 된단 말여, 사천 원씩.”
“그래 사천 원씩 받게 된대.”
구 여사가 감격한 듯이 중얼거렸다.(구 여사는 변 노인과 마찬가지로 속물적, 배금주의적 인물임.)
“그럼 전 어찌 되나요?”(4000원을 받는 대가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겠냐고 반문함. 위에서 한 말을 반복하여 문서 결혼이 부당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임.)
나종애는 다그쳐 물었다. 사실 나종애는 이것이 무슨 꿍꿍이 얘긴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니 납득이야 갔지만 이러한 대가가, 자기에게 가져올 피해가 무엇인지를 얼른 판가름해 낼 수가 없었다.
“아무치도 않다니깐 그래. 서류상으로만 혼인했다고 그래서 너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아닐 게고.”(실질적으로 아무 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종애’를 설득하고 있다.)
“그건 무슨 소리죠, 할아버지?”
“원 이런 맹랑한(허망한, 깜찍한) 애 봤나? 무슨 소리라니.”
변 노인이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때 나종애는 맑은 하늘을 뒤덮어 오고 있는 시꺼먼 구름장 같은 것(문서 결혼의 불길함. 비유)이 바로 자기에게로 덮쳐지는 듯한 느낌에서 진저리를 쳤다.
“전 싫어요. 싫어요.”
나종애는 불현듯 정의도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의도와 결혼할 일을 그녀는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 왜 싫다는 게지?”
“내버려 두세요. 제까짓 게 싫다고 해봤자 별 수 있수. 춘향이 같다구 해 주니까 진짜루 춘향이라도 된 것 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흥, 병신 같은 게 꼴값하지.”(종애에 대한 불만이 폭발함. 비속어 사용)
한심하다는 듯이 구 여사가 입을 삐죽했다. (구 여사는 종애의 친어머니가 아니래요)
나종애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항변(변 노인의 요청에 대한 종애의 반응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임)을 계속했다. 결혼 신고를 계출*해 버리면 그것으로 변 노인의 아들과 결혼해 버리고 만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라는 말은 그러니까, 진실로 사랑하는 정의도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이고 그러니까 그것도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한자어로, 어불성설(語不成說))였다.(나종애의 내면 심리를 서술자가 분석하여 제시함. 나종애의 사려깊고 현명한 태도가 잘 나타난 부분임.)
*계출(屆出) ; 여기서는 관공서에 제출함을 뜻함.
■ 핵심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세태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도시 변두리 사람들의 굳건한 생명력
▶ 해제 : 1966년 9월 「문학」에 발표된 박태순의 단편 소설이다. 총 18편의 박태순의 연작 소설 ‘외촌동 사람들’ 가운데 초기의 작품으로 박태순의 연작 중에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나종애를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도시 변두리에 살고 있는 소외된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민중의 굳건한 생명력을 포착해 내고 있다.
▶ 짜임 :
▪ 발단 : 빈민촌인 외촌동에 사는 나종애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정의도를 사랑한다.
▪ 전개 : 나종애는 무허가 막걸리집의 접대부 제의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집안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마을을 떠난 애인 정의도를 기다리고 있다.
▪ 위기 : 고리대금업자 변 노인이 서독에 광부로 나가 있는 자기 아들과 서류상 결혼을 하여 가족 수당을 나누어 갖자고 유혹하지만 거절한다.[교재 수록 부분]
▪ 절정 : 나종애는 아끼던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외촌동을 떠날 결심을 한다.
▪ 결말 : 나종애의 애인 정의도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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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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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촌동을 떠나고자 하는 젊은이들→ 경박하기는 하지만 건강하고 활기가 있음 |
외촌동에 머물러 있는 늙은이들→탐욕스럽고 이기적인만 추하지는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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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순, 나종열, 정의도, 나종애 |
과부댁, 나합돈, 변 노인 |
■ 갈등 :
• 인물(종애)의 내적 갈등 : 정의도를 찾아감 ↔ 부모를 모심
• 인물 사이의 갈등 : 종애(문서 결혼 거부) ↔ 변 노인, 구 여사 (문서 결혼 수용)
■ 사건
• 해외 취업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물질 만능의 세태를 고발하며 비판하는 세태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다.
• 편지’의 기능 : 사건 전개의 매개체이며, 갈등의 요인이 된다.
• 정의도로부터 온 편지 ; 종애로 하여금 정의도를 찾아서 떠날까 말까 하는 내적 갈등을 유발함.
• 변 노인의 아들로부터 온 편지 ; 문서 결혼을 놓고 종애와 변 노인 사이의 갈등을 유발함.
■ 서술(敍述)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정 인물(종애)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종애의 내적 생각을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서술자의 목소리로 풀어서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 (예) 변 노인의 아들과 결혼해 버리고 만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라는 말은 그러니까, 진실로 사랑하는 정의도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이고
• 대화를 통해 사건을 전개하고, 인물의 성격 및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 줄거리
서울시에서 철거민을 위해서 날림으로 지은 공영 주택 단지인 외촌동 193호 과부댁은 딸 미순이를 작부로 삼아 꽤 쏠쏠한 술장사를 벌인다. 미순이는 나합돈 영감의 아들인 나종열을 사랑했지만 어느 날 마을에 들어온 떠돌이 약장수 패거리에서 기타를 뜯는 사내와 눈이 맞아 도망가 버렸다. 장사에 타격을 받은 과부댁은 나합돈 영감의 딸 나종애를 데려와 술장사를 하고 싶어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 동안에 외촌동에도 버스 노선이 들어오고 전기도 들어오는 등 나름대로 발전을 한다. 과부댁은 동네 유지이며 돈놀이를 하는 변 노인과 함께 살고 미순이는 마을로 돌아와 나종열을 찾았으나 나종열은 그녀를 냉대한다. 미순이가 변 노인의 현금과 귀금속을 훔치자 변 노인은 과부댁을 버린다. 독일에서 일하는 아들을 둔 변 노인은 가족 수당을 더 받을 욕심으로 나종애와 자기 아들의 거짓 혼인을 강요하지만 나종애는 이를 거절하고 애인인 정의도를 기다리며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머리를 자른다.
■ 이해와 감상 1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18편에 이르는 박태순의 연작소설 ‘외촌동 사람들’ 가운데 초기의 작품이며 연작 중에서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1973년 민음사에서 간행된 단편집의 표제작으로서, 박태순의 초기 소설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의 배경인 외촌동은 서울시가 도시계획에 따라 무허가 집들을 철거한 다음 철거당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 새로운 곳이었다. 이 작품은 나종애를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종애는 살짝곰보로서 무허가 막걸리집의 접대부 제의를 거절하는 바람에 집안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애인 정의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고리대금업자 변노인이 서독에 광부로 나가 있는 자기 아들과 서류결혼을 하여 가족수당을 나눠갖자고 유혹한다. 이런 유혹에 맞서 그녀는 가장 아끼던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외촌동을 떠날 결심을 하는데, 그때 애인 정의도가 돌아온다.
나종애를 둘러싼 사랑이야기를 다루면서 약간의 세태소설적 성격을 풍기고 있는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비참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변두리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고 평가받은 바 있다. 이처럼 버림받고 뿌리뽑힌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그 자신이 월남한 실향민이라는 개인적인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여러 특징들은 「걸신」, 「모기떼」 등 외촌동을 무대로 한 연작들에서 계속된다. 결국 「정든 땅 언덕 위」는 변두리에 살고 있는 소외된 주변부 삶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고, 거기서 굳건한 민중적 생명력을 포착해내는 박태순의 초기적 경향을 대변하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경향은 김승옥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감수성을 위주로 한 문학과 더불어 1960년대 문학의 새로운 경향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1970년대 들어 많이 쏟아져 나온 변두리 삶을 다룬 문학작품, 예컨대 황석영‧윤흥길‧조세희 등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이해와 감상 2
시(市) 당국이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한 다음 공영 주택을 날림으로 지어 만든 마을인 외촌동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생김새와 직업을 갖고 있지만, 계층상 ‘도시 빈민’이라는 한 부류로 묶일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외촌동 주민들은 도시 중심부에서 떨어진 공간에서 살아가는 빈민 계층이지만, 그들 역시 현대 사회의상징인 도시 속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그들도 ‘현대’라는 시간적 특성의 지배 아래 있음을 말해 준다. ‘74호 복덕방’, ‘193호 과부댁 술집’, ‘55호 상회’라는 호칭이 동네 주민들의 개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 속에서 사물화, 상품화된 인간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산업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의 지배를 받는데, 미순이와 그 어머니 193호 과부댁의 관계, 나합돈, 구 여사 부부와 나종애의 관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외촌동 주민들의 삶과 그들의 관계를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빈민 문제와 도시 문제를 다루고 있다.
1) 인물
• 나종애 : 중심 인물. 변 노인의 문서 결혼 요구를 거절하고 정의도와의 사랑을 지키는 의지적 인물.
• 나합돈 : 종애의 아버지.
• 구여사 : 종애의 (의붓)어머니. 물질에 눈이 어두워 딸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문서 결혼을 강요하는 속물적 인간.
• 변 노인 : 동네 어른. 가족 수당을 받기 위해 종애에게 자기 아들과 문서상 결혼을 요구함. 물질에 집착하는 배금주의적 인물.
• 정의도 : 나종애와 연인 사이. 객지로 떠나 있는 상태이다.
• 갈등 : 인물(종애)의 내적 갈등 : 정의도를 찾아감 ↔ 부모를 모심
인물 사이의 갈등 : 종애(문서 결혼 거부) ↔ 변 노인, 구 여사 (문서 결혼 수용)
2) 사건
-해외 취업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물질 만능의 세태를 고발하며 비판하는 세태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다.
-‘편지’의 기능 : 사건 전개의 매개체이며, 갈등의 요인이 된다.
• 정의도로부터 온 편지 : 종애로 하여금 정의도를 찾아서 떠날까 말까 하는 내적 갈등을 유발함.
• 변 노인의 아들로부터 온 편지 : 문서 결혼을 놓고 종애와 변 노인 사이의 갈등을 유발함.
3) 서술
-전지적 작가 시점
-특정 인물(종애)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종애의 내적 생각을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서술자의 목소리로 풀어서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 (예) 변 노인의 아들과 결혼해 버리고 만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라는 말은 그러니까, 진실로 사랑하는 정의도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이고
-대화를 통해 사건을 전개하고, 인물의 성격 및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작품 전체 [줄거리]
무허가 집들을 철거한 후 판자집에 살던 사람들을 위해 새로 만든 동네가 외촌동이다. 외촌동은 날림으로 지은 공영주택이다. 가옥 형태의 안쪽에는 일련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그 번호는 곧 그 집에서 무슨 장사를 하는지를 나타내었다. 너나없이 억척스럽게 가난하고, 그리고 우물과 변소를 같이 썼기에 그들의 사이는 우선 좋았다. 우물은 대략 30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만들어져 있고, 공중변소는 대략 45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다. 우선 대변보는 변소간에 십 여분쯤 앉아 있으면 당신이 예상할 수 없었던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 변소 안의 낙서들을 읽으면 마을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안사람들은 우물가에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경상도 말씨를 쓰며 머리카락을 수집하러 다니는 영곤이 엄마는 열 여섯 살 난 아들 영곤이 때문에 걱정이 많다. 영곤이는 벌써 술 담배를 배웠고 요즘은 어떤 계집애하고 몹쓸 일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몸이 좋은 193호의 과부댁은 막걸리를 팔고 있는데, 딸인 미순이가 지난 가을 약장수와 배가 맞아 달아나 버렸다.
이 동네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들떠 있었던 기간은 그 약장수들이 있었던 동안이다. 그들은 옛날 약장수와는 달랐다. 그들은 두 명의 여자 가수와 한 명의 남자 가수 그리고 네 명의 밴드를 가지고 나흘 동안 레퍼토리를 바꾸어 가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코미디언의 흉내를 내기도 하고 미국에서 쏘아 올린 제미니 6호의 원리도 설명해 주었고,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피임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약은 성능이 우수하다는 강장제 물약, 신경통약, 피임약이었는데 이 동네에 사는 어른치고 아무 약도 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사람은 기타를 연주하는 젊은이였다. 그는 얼굴이 잘 생겼으며 늘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 동네에 일종의 신비한 전설을 남겼다. 그 젊은이와 함께 미순이가 사라졌다. 미순이가 사라지자 그녀의 애인이었던 나종열의 침울한 행동과도 관련이 있다.
나종열은 스물 여섯 살로서 군에서 제대한 것과 그의 집이 이 동네로 이사온 것과 거의 시기를 같이 했다. 그는 대학물도 2년인가 먹어 본 젊은이기에 동네에서 공문서 작성을 할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 동네의 보안 유지를 위해 야경대를 조직하고 야경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야경대에서 생기는 수입으로 나종열의 가족은 먹고 살 수 있었다. 미순이네는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로 밤새도록 영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야경을 마치고 막걸리 한 잔 얻어먹으려고 오는 나종열을 친절히 대접했고 결국 미순이와 나종열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깊은 밤 함께 노래를 불렀고 동네 사람들은 그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르익던 그들의 사랑은 미순이가 약장수 패들을 따라감으로써 싱거운 결말을 맞이했지만 미순 엄마의 훼방도 한 몫 했다. 미순 엄마는 미순이가 충실히 작부 노릇을 오래 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종열의 집안은 여섯 식구였다. 신경통 때문에 오른 다리를 쓰지 못하는 나합돈 영감님과 떠나간 정의도를 사랑하는 살짝 곰보 나종애, 의붓어머니와 의붓어머니가 낳은 자식 둘 이었다. 미순 엄마는 종애에게 작부일을 권했으나 그녀는 강력히 거부했고, 이후로 그녀는 집안의 구박덩이가 되었다.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변 노인은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었다. 변 노인은 유식했으나 괴팍한 성격에 혼자 살고 있었다. 변 노인이 돈이 많은 이유는 유럽에 광부로 가 있는 아들이 매월 생활비로 만 원 가량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변 노인은 순식간에 마을의 유지가 되었고 미순 엄마와 눈이 맞아 동거를 시작했다. 변 노인의 고리대금업은 날로 번창했다.
어느 날 변노인이 3만 7천원의 현찰을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변 노인은 범인으로 나종열과 오미순을 지목했다. 파출소 순경이 파악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얼마 전 오미순이 돌아왔고 전의 애인이었던 나종열과의 사랑이 다시 이루어져 밤에 변 노인의 방에 들어가서 돈을 훔쳐 함께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순경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다른 것도 있었다. 사실 돈을 훔쳐낸 것은 미순이 혼자였다. 약장수 패거리를 따라갔던 미순이는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목청이 고운 그녀는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곧 그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외촌동으로 돌아왔으나 어머니는 변 노인과 살림을 차리고 있었고 이제 너 따위와는 모녀간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 사라지라고 호통이었다. 미순이는 나종열을 찾아갔다. 나종열도 태도가 달라졌고 그는 깡패가 되어 있었다. 믿었던 두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미순이는 영원히 외촌동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결국 밤새 두려움에 떨다가 변 노인의 금품을 훔쳐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날 새벽 나종애는 오빠 나종열과 미순이가 외촌교를 바삐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종애는 오빠와 미순의 앞날을 축원하는 마음으로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종애 자신이 아직도 철석같이 정의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큰돈을 잃은 변 노인은 갑자기 악당이 되었고 미순 엄마를 내쫓아 버렸다. 과부댁 미순 엄마는 나합돈 영감에게 당신 아들이 내 딸을 꼬여 서방님 돈을 훔쳐 갔으니 자신의 딸과 서방을 내놓으라며 화풀이를 했다. 나합돈 영감과 의붓어머니는 모든 화풀이를 나종애에게 했다. 나종애는 이런 수모를 다 받으며 정의도에게 쓰는 낭만적 편지로 유일한 위안을 삼았다. 나종애는 편지를 빼앗겼는데 글을 모르는 의붓어머니는 자신의 욕을 썼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나종애를 두들겨 팼다. 나종애는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두들겨 맞았다. 나종애는 정신이 없었다.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졌다. 죽는다는 생각에 쾌감까지 느꼈는데 눈을 뜨고 보니 한낮이었다. 주위에는 아버지인 나합돈 영감과 의붓어머니 구여사 그리고 변 노인까지 와 있었다. 나종애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서운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아무렇지도 않어,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어, 밥이나 먹구나면 거뜬해질 걸 무어."
이렇게 말한 것은 변 노인이었다. 나종애는 더욱 서운했다.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니, 아무리 얌체머리 없는 노인이라 할지라도 저럴 수 있나 싶었다. 나종애는 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눈물을 대강 닦고 변 노인의 손을 치우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일어난 나종애는 새로 소생한 기분이었다. 자신 앞에서 머뭇거리는 가족들로부터 나종애는 정의도에게 편지가 왔음을 알게 된다. 정의도의 편지에는 우연히 나종열과 오미순을 길에서 만났으며 자신이 새로 생긴 서울 극장에 취직이 되면 사랑하는 그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써 있었다. 그 때 함께 자리에 있던 변 노인은 나종애에게 자신의 아들과 혼인 신고를 해 달라는 제안을 한다. 유럽에 가 있는 변 노인의 아들이 편지를 보냈는데 결혼한 광부에게는 가족 수당이라는 것이 있어 팔천 원의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변 노인은 나종애가 자신의 아들과 혼인 신고를 해 준다면 다달이 사천 원씩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나종애의 부모는 그녀가 그 요구를 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의도와 결혼할 일을 생각한 나종애는 강력하게 거절했다. 나종애는 그것이 나중에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부당한 요구를 물리치려 했으나 그녀는 절망을 느꼈다. 그 때 나종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돈을 마련한 뒤 부모님을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종애는 우물가에 있는 영곤이 엄마를 찾아간다. 영곤이 엄마는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의 상상과는 달리 가위는 그녀의 머리를 짜르지도 않았고 머리에서 피가 솟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굉장히 중요한 것을 빼앗겨 버렸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잘려진 자기의 머리카락이 코앞에 내밀어졌고 영곤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돈이 왔고, 나종애는 너무 부끄러워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변소로 갔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달아났음을 새삼 느꼈고 바깥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버스가 들어온 모양인지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집구경을 하는 사람들이 멀어져 갈 즈음 정의도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