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가(漁父歌)
-이현보
▶ 작품 해석
이 듕에 시름 업스니 漁父(어부)의 生涯(생애)이로다.
一葉片舟(일엽편주)를 萬頃波(만경파)에 띄워 두고
人世(인세)를 다 니젯거니 날 가 줄 안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근심 걱정 없는 것이 어부의 생활이로다. 자그마한 배 한 척을 넓은 바다에 띄워 놓고, 인간 세상의 일을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을 모르겠도다.
➡ 속세를 잊은 어부의 생활
구버보면千尋綠水(천심녹수) 도라보니 萬疊靑山(만첩청산)
十丈紅塵(십장 홍진)이 언매나 가롓는고
江湖(강호)에 月白(월백)거든 더옥 無心(무심)하얘라.
굽어보니 천 길이나 되는 푸른 물, 돌아보니 겹겹이 둘러 싸인 푸른 산, 번거로운 속세의 일들이 얼마나 가리워졌는가. 아름다운 자연에 달이 밝게 비치니 더욱 한가롭구나.
➡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의 한가로움
靑荷(청하)에 밥을 싸고 綠流(녹류)에 고기 꿰여,
蘆荻花叢(노적화총)애 배 매어두고,
一般淸意味(일반청의미)를 어늬 부니 아실고.
연잎에 밥을 싸고 버들가지에 물고기를 꿰어서, 갈대와 억새풀이 꽉 찬 곳에 배를 대어 묶어 두니, 자연의 참된 의미를 어느 분이 아시겠는가.
➡ 자연의 참된 의미
山頭(산두)에 閒雲(한운)이 起(기)하고 水中(수중)에 白鷗(백구)이 飛(비)이라.
無心(무심)코 多情(다정)하니 이 두 거시로다.
一生(일생)에 시르믈 닛고 너를 조차 노로리라.
산봉우리에 구름이 한가롭게 피어나고 물 가운데에 백구가 난다. 이 세상에 아무런 욕심 없이 다정한 것이 이 두 가지로다. 내 편생에 시름을 잊어버리고 너희들과 함께 지내리라.
➡ 무심한 구름과 갈매기
長安(장안)을 도라보니 北闕(북궐)이 千里(천 리)로다.
魚舟(어주)에 누어신들 니즌 스치 이시랴.
두어라 내 시름 안니라 濟世賢(제세현)이 업스랴.
서울 쪽을 바라보니 궁궐이 천 리 밖에 있도다. 내 비록 고기잡이 배에 있으나 한시라도 잊은 적이 있으랴. 두어라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세상을 구할 현인이 없겠느냐.
➡ 나라에 대한 걱정
● 핵심정리
*주제: 강호에 묻혀 사는 어부의 한정(閑情)
*갈래: 평시조, 연시조, 정형시
*특징: ① 정경의 묘사가 관념적인 ② 4음보의 율격
●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어부사(漁父詞)’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고려 말엽부터 작자와 연대 미상으로 전해 내려오던 도학자의 노래를, 지은이가 원사(原詞) 단가 10장을 5장으로 고쳐 만든 것이다. 자연을 벗하며 고기잡이를 하는 풍류적인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우리 선인들의 요산요수(樂山樂水)하는 운치 있는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 속에 묻혀 은일(隱逸)을 즐겼을망정 인간사에서 완전히 초연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로지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국사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본문 제5연을 보면 분명해진다.
이 작품의 표현상 두드러진 특징은 정경의 묘사나 생활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나타냄 없이 ‘천심녹수(千尋綠水)’, ‘만첩청산(萬疊靑山)’과 같은 상투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관념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부사(漁父詞)’는 이것 말고도 지은이가 장가 12장을 9장으로 고쳐서 만든 것이 잇는데, 고산 윤선도 이를 단가와 장가를 참조하여 환골탈태(換骨奪胎)로 개작한 것이 ‘어부사시사’ 40수이다.
1연 : 초장은 근심 없는 어부의 생활을 설명했고, 중 종장은 배를 타고서 고기를 낚는 어부의 풍류와 함께 속세를 떠나 세월조차 잊으며 강호(江湖)에서 유유자적하는 어부 생활을 표현하였다.
2연 : 어부가의 둘째 수로, 자연의 운치를 즐기며 속세를 떠나 있는 자신의 '무심(無心)'한 심정을 읊은 시조다. 초장의 '천심녹수'와 '만첩청산'이 대구를 이루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묘사하였고, 중장의 '십장홍진'은 혼탁한 세속의 먼지를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홍진으로 가려진 인간세상을 떠한 한적한 강촌에 머물러 있는 하얗게 부서지는 달빛을 아무 걱정없이 감상하고 있다.
5연 : 강촌에서 은거 생활을 즐기는 작자가 고깃배 위에 누워 있다가 잠시 나라 일이 생각나 임금이 계신 서울 궁궐 쪽의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나 벼슬에서 물러나 은퇴 생활을 하고 있으니 훌륭한 현인들만 믿고, 자연을 즐기며 힘겨운 나라 걱정을 하지 않겠다는 체면의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 배경
'어부가'는 작자가 관직을 은퇴하고 나서 자유롭게 강촌의 향취를 만끽하는 어부로서의 생활을 담은 작품이다. 고려 중엽 이후부터 전해 오던 '어부사'를 이현보가 개작을 한 것이고 후에 윤선도가 본뜻을 살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을 완성하였다.
● 더 알아보기
▲화자의 시선 이동 : 이 작품에서의 시적 화자의 시선은 '녹수(綠水)'와 '청산(靑山)'을 바라보며 '어주(漁舟)'속으로 이동하여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다가 다시 '산두(山頭)'와 '수중(水中)'이라는 먼 곳으로 옮겨져 마침내는 '장안(長安)'의 '북궐(北闕)'을 기억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시상 전개는 시적 화자가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내면은 어느 정도 현실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관련작품 : 윤선도의 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