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할만한 자리 -박지원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도강록(渡江錄)'
● 이해와 감상
'통곡할 만한 자리'는 '열하일기' 중 '도강록'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작가가 중국의 요동을 여행할 때 요동의 백탑과 광할한 요동 벌판을 보고, 그 감회를 적은 글로, 그는 이 글에서 작가는 만주의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적절한 비유와 구체적인 예를 통해 매우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요동 벌판을 보고, '한바탕 울고 싶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울음은 슬픔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극에 달해 북받쳐 나오는 울음으로, 갓난아이가 어둡고 비좁은 태 속에서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터트리는 울음과 같다고 한다. 이는 곧 작가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통곡할 만한 자리'를 보면 작가는 울음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고, 천하의 자리를 만나서 연암을 감탄을 하지 않고 통곡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갓난아이의 울음은 어둡고 갑갑한 곳에서 빠져 나온 시원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얻어낸 적절한 비유라고 할 것이다.
이 글은 또한 박지원의 글이 무엇보다도 발상과 표현의 참신성, 독창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새롭게 사물을 직시하여 그 본질에 철저하게 접근해 가는 방식으로 연암은 그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비유와 체험에서 얻은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여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작품뿐만 아니라 연암의 글을 통해서 연암의 문장이 가진 특성과 그 사상의 독특함을 엿볼 수 있다.
● 핵심정리
▶연대 : 조선 후기, 영조
▶갈래 : 중수필. 기행문
▶성격 : 비유적, 교훈적, 사색적, 분석적, 독창적, 논리적,
▶표현 : 적절한 비유와 구체적인 예시로 실감나게 묘사함
▶제재 : 요동 지방의 기행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문답식 구성
▶특징 : 발상과 표현이 참신하고, 적절한 비유와 구체적인 예시로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고 있으며, 연암은 반어법과 과장법 등도 유려하게 구사했고 정통 고문에서 금기시하는 조선식 한자어와 조선 고유의 속담을 한자화해 섞어 쓰기도 했다.
▶주제 :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쁨
● 작품 읽기
초팔일 갑신(甲申)(1780년 7월 8일). 맑다.
정사 박명원(朴明源 : 박지원의 팔촌 형으로 사절단의 대표)과 같은 가마를 타고 삼류화(三流花)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한 줄기 산기슭을 돌아 나서니 태복(泰卜)이 국궁(鞠躬 :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힘)을 하고 말 앞으로 달려나와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큰 소리로,
"백탑(白塔 : 중국 요동의 요양성 밖에 있는 탑)이 현신함을 아뢰오.(무생물인 백탑이 행동의 주체자가 되어 탑을 보러 오는 사람을 오히려 영접하러 나가는 것처럼 표현하여 말하는 사람의 들뜨고 흥겨워하는 감정이 느껴지는 표현으로 여기서 현신은 지체 낮은 이가 지체 높은 이를 처음 뵌다는 뜻)"한다. / 태복이 곧 요동벌이 나타날 것임을 말함
태복이란 자는 정 진사(鄭進士)의 말을 맡은 하인이다. 산기슭이 아직도 가리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요동 벌판을 처음 본 순간의 감격으로 인해 눈에 헛것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산도 없고 건물도 없는 넓고 허허로운 광야에 서니 오직 인간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는 말로 요동 지방의 거대한 자연의 경관이 눈에 떠오르는 감탄의 표현임, 산기슭을 벗어나자 요동의 벌판이 광활해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는 말로, 그렇게 광활한 아득한 벌판을 보니 사람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사는 존재임을 깨달았다는 말로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협소하다는 간접적 표현이기도 함).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저절로 모르게 나오는 감탄의 표현)
"좋은 울음터로다(호곡장론이고 불리기도 함). 한바탕 울어 볼 만하구나!"(작가가 요동의 벌판을 보고 보인 반응으로 울음은 슬픈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극에 달해 북받쳐 올 때 나온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글쓴이가 발상의 전환을 보이는 부분에 해당된 문장으로 이 부분은 키츠의 '체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와 같은 감동과 비슷하다.) / 요동벌을 보고 좋은 울음터라고 여김
정 진사가,
"이 천지간에 이런 넓은 안계(眼界 : 눈에 보이는 범위, 시야)를 만나 홀연 울고 싶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흔히 사람들은 천하의 장관을 보면 우는 게 아니라 감탄하게 마련이라는 상식에서 비롯된 정진사의 물음이다.) / 정진사가 요동벌을 보고 울고 싶어하는 까닭을 물음
하기에 나는,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천고의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만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그저 옷깃을 적셨을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나온 듯하여 천지에 가득 찼다는 것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의 다섯 가지 욕망.) 칠정[七情 : ①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기쁨(喜)·노여움(怒)·슬픔(哀)·즐거움(樂)·사랑(愛)·미움(惡)·욕심(欲)·, 또는 기쁨(喜)·노여움(怒)·근심(憂)·생각(思)·슬픔(悲)·놀람(驚)·두려움(恐)을 이른다. ② 불교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기쁨(喜)·성냄(怒)·근심(憂)·두려움(懼)·사랑(愛)·미움(憎)·욕심(欲)이다.] 중에서 '슬픈 감정[哀]'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를 겝니다. 기쁨[喜]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노여움[怒]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되고, 사랑[愛]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미움[惡]이 극에 달하여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 버리는 것으로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소이다.[기쁨이 극에 달하면 - 방법은 없소이다 : 울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글쓴이는 울음이 슬픔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극에 달해 북받쳐올 때 나옴을 밝히고 있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발상의 전환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울음은 반드시 슬픔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칠정이라는 인간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저절로 우러나오며, 울적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광활한 요동의 벌판을 보고 울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정 진사의 말에 작가가 슬퍼서 울고 싶다는 것이 아님을 일러 준 말이다. 정 진사의 발상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관습적임에 반해 작가의 발상은 매우 독창적임을 알 수 있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벽력[雷聲霹靂 : 천둥소리와 벼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에 비할 수 있는 게요. 북받쳐 나오는 감정이 이치에 맞아 터지는 것이 웃음과 뭐 다르리요? / 정 진사의 물음에 칠정이 극에 달하면 울게 된다고 답을 함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도 못한 채 교묘하게 칠정이 늘어놓고 '슬픈 감정[哀]'에다 울음을 짜 맞춘 것이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를 때 이내 억지로라도 '아이고', '어어'라고 부르짖는 것이지요(일반적 진술에다가 구체적 사례를 들고 있음). 그러나 정말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하고 참다운 소리는 참고 억눌리어 천지 사이에 쌓이고 맺혀서 감히 터져 나올 수 없소이다. 저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는 자기의 울음터를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하여 필경은 선실(宣室 : 한 문제가 거처하던 미양궁의 궁실로 여기서는 한나라 정권을 말함)을 향하여 한 번 큰 소리로 울부짖었으니(가의는 한나라의 문인으로 직간을 하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으나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여 유명한 상소문을 올린 바 있다. 그 상소문에 천하사세 다시 말해서 천하의 일이 되어 가는 형세를 위해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 눈물을 흘린 만한 것이 여섯 가지라 하여 조목조목 내용을 서술하였다. 문맥상, 가의는 자신의 울음터를 얻지 못하다가 상소문으로써 한나라 정권을 향해 크게 울었음을 고사를 전거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어찌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요." / 보통 사람들은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을 모름
"그래, 지금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바탕 통곡을 할 터인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을 골라 울어야 하겠소?" / 칠정 중에 어느 정을 골라 우느냐고 정진사가 물음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게나. 아이가 처음 배 밖으로 나오며 느끼는 '정'이란 무엇이오? 처음에는 광명을 볼 것이요,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히 차 있음을 보리니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이 같은 기쁨과 즐거움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없을 일인데 슬프고 성이 날 까닭이 있으랴? 그 '정'인즉 응당 즐겁고 웃을 정이련만 도리어 분하고 서러운 생각에 복받쳐서 하염없이 울부짖는다. 혹 누가 말하기를 인생은 잘나나 못나나 죽기는 일반이요, 그 중간에 허물·환란·근심·걱정을 백방으로 겪을 터이니 갓난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제 조문[弔問 : 남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뜻을 드러내어 상주(喪主)를 위문함. 또는 그 위문한다는 말로 비슷한 말로 문상(問喪), 문조(問弔), 조상(弔喪).]을 제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결코 갓난아이의 본정이 아닐 겝니다. 아이가 어미 태 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는 어둡고 갑갑하고 얽매이고 비좁게 지내다가 ('어머니의 태 속이 갑갑하다'는 것은 실제로 18세기 조선 사회의 폐쇄성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지원이 통상을 중시한 실학자이고, 특히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본받아야 함을 주장했음을 염두에 둘 때 탁트인 요동 벌판에서 한바탕 통곡을 하고 싶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아마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대표를 비교해 보면 더욱 적나라하게 그 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아침에 탁 트인 넓은 곳으로 빠져 나오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어 정신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한 번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 보지 않을 수 있으리오(浩然之氣의 기상)!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하리이다. / 넓은 세상에 나온 기쁨에 운다고 답변함
비로봉(毘盧峰 : 강원도 고성군 장전읍과 회양군 내금강면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 금강산의 최고봉이다. 높이는 1,638미터.) 꼭대기에서 동해 바다를 굽어보는 곳에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잡을 것이요,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金沙) 바닷가에 가면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얻으리니, 오늘 요동 벌판에 이르러 이로부터 산해관(山海關 : 만리장성의 동쪽 끝 관문.) 일천이백 리까지의 어간은 사방에 도무지 한 점 산을 볼 수 없고 하늘가와 땅끝이 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고 간 비바람만이 이 속에서 창망(시름없이 바라봄)할 뿐이니(격한 감정을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나서 차분한 태도로 요동 벌판의 모습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묘사하였다), 역시 한 번 통곡할 만한 '자리'가 아니겠소." / 풍경을 묘사하고 통곡할 만한 자리임을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