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록(閑中錄)
◈ 해설: 이 글은 사도 세자의 비극적인 죽음과 이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 그리고 작자의 한 많은 사연을 회고하여 기록한 것이다. 궁중 내의 음모와 당쟁 및 혜경궁 홍씨와 사도 세자의 기구한 삶을 살필 수 있다.
◈ 핵심 정리
▶ 작자: 혜경궁 홍씨
▶ 갈래: 한글 수필, 궁정 수필
▶ 형식: 자전적 회고록(回顧錄)
▶ 표현: 우아하고 품위 있는 표현
▶ 연대: 조선 순조 5년(1805년) 작자 71세 때
▶ 문체: 내간체
▶ 주제: 사도 세자와의 생이별[전체: 사도세자의 참변을 중심으로 한 파란 만장한 인생 회고]
◈ 지은이
혜경궁 홍씨(1735~1815) 영풍 부원군 홍봉한의 딸. 10세에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빈(嬪)으로 책봉되고, 영조 38년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 혜빈의 칭호를 받았다. 후에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면서 혜경궁으로 칭하고, 1799년 사도세자는 장조((莊祖)로, 혜경궁은 경의왕후로 추존되었다. 순조 15년에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 감상의 길잡이
이 글은 4개의 이본(異本)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작자의 회갑 때 조카에게 주기 위하여 친정(親庭)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고, 두 번째는 67세에 친정이 몰락에 대한 자탄(自歎)을 읊었으며, 세 번째는 68세 때 순조에게 주려고, 네 번째는 며느리 가순궁의 요청으로 썼다. 내용은 궁중 내에서 벌어진 갖가지 음모와 처참했던 임오화변의 역사적 사실 등을 기록한 것이다. 문장과 표현에 있어서 고상하고 우아한 표현, 절실하고도 간곡한 묘사, 전아하고 품위있는 궁중 용어의 사용 등으로 한글로 된 궁중 문학의 백미(白眉)라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전편을 통해 흐르고 있는 귀인다운 품위와 예리한 지성과 면면한 정조(情調)는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려 주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 소개된 부분은 혜경궁 홍씨가 소조(小朝:사도 세자)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인생 무상을 느끼게 한다.
◈ 정리 학습
▶ 한중록의 역사적 의미
영조에게는 이미 정빈(靖嬪) 이씨(李氏)에게서 난 세자가 있었으나 10세에 죽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은 자기파의 종가(宗家) 중에서 세자를 추대하였으나 영조는 이를 물리치고 영빈 이씨 소생의 왕자를 세자로 책봉했으니 이가 곧 사도 세자이다. 노론은 새로 책봉된 세자를 중심으로 소론을 물리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온갖 음모를 꾸며 세자를 괴롭혔으며 마침내 영조 38년(1762)에 윤급이 나경언을 시켜서 왕에게 세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참언하게 하였다. 영조는 분노하여 결국 세자를 폐위시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다. 세자는 영조에게 변명하였으나 영조는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하였다. 1762년 5월 22일 일이다.
혜경궁 홍씨는 그 역사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시술하지는 않았다. 중도에 남편 사도 세자의 비극에 대해서는 차마 말할 수 없다 하여 의식적으로 사건의 핵심을 회피한다. 그 대신 자신의 외로운 모습과 장례 후 시아버지인 영조와 다시 만나는 극적인 장면으로 비약된다.
◈ 어휘 풀이
․ 그 날: 영조 38년(1762) 5월 23일
․ 덕성합: 창경궁 안에 있던 전각
․ 고이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여
․ 환경전: 창경궁의 경춘전 동쪽 내전
․ 황황(遑遑)한: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한
․ 휘령전: 창경궁 안에 있던 전각
․ 소조(小朝): 임금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는 세자. 여기서는 사도 세자를 말함.
․ 침사 상량((沈思商量): 정신을 한 곳에 모아 깊이 생각함.
․ 화증(火症): 화를 벌컥 내는 증세
․ 사기(辭氣): 언사와 안색. 사색(辭色)
․ 용포(龍袍): 임금이 입던 정복
․ 사외로와: 미신적으로 마음이 꺼림칙하여
․ 아모리타: 아무 일도
◈ 구절 풀이
․ 응당 화증을~스스로 염려하야: 응당 화를 내셔서 심상치 않으실 듯하여 내 목숨이 그 날 끝마칠 줄 염려하여. 세자의 화증에 죽을 줄 알고
․ 이상할손 어이~아니 하시고: 이상하게도(평소에 자주 말씀하시던 대로) 피하자거나 달아나자고 말하지도 않으시고, 또한 주위에 시중드는 사람들을 물리치지도 않으시고,
☞ 사도 세자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혜경궁 홍씨이 불안감을 더한다
․ 몽매(夢寐) 밖에 썩 하시기를: 천만 뜻밖에 대뜸 말씀하시기를,
․ 자네가~사람이로세: 나는 지금 죽게 되었는데 자네는 자네 목숨과 세손의 목숨만을 걱정하니 참으로 무섭고 못된 사람이로세
☞ 사도 세자가 세손의 휘항을 가져오라고 하자 혜경궁 홍씨가 세손의 휘항이 작으니 세자 자신의 것을 쓰라고 한 것을 사도 세자가 오해해서 한 말이다.
․ 우리의~아모라타 없었지: 세자가 죽게 되면 처자인 혜경궁 홍씨 자신과 세손의 안녕이 위태로워질까봐 걱정했으니 끝내 아무 일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러할 제 날이 늦고 재촉하여 나가시니, 대조(大朝)께서 휘녕전(徽寧殿)에 좌(坐)하시고 칼을 안으시고 두드리오시며 그 처분(處分)을 하시게 되니, 차마차마 망극(罔極)하니 이 경상(景狀)을 차마 기록(記錄)하리오. 섧고 섧도다.
나가시며 대조껴서 엄노(嚴怒)하오신 성음(聲音)이 들리오니, 휘녕전이 덕성합(德成閤)과 멀지 아니하니 담 밑에 사람을 보내어 보니, 벌써 용포(龍袍)를 벗고 엎디어 계시더라 하니, 대처분(大處分)이 오신 줄 알고 천지 망극(天地罔極)하여 흉장(胸腸)이 붕열(崩裂)하는지라. 게 있어 부질없어 세손(世孫) 계신 델 와서 서로 붙들고 어찌할 줄 모르더니, 신시 전후(申時前後) 즈음에 내관(內官)이 들어와 밖소주방(燒廚房) 쌀 담는 궤를 내라 한다 하니, 어쩐 말인고 황황(遑遑)하여 내지 못하고, 세손궁(世孫宮)이 망극한 거조(擧措) 있는 줄 알고 문정(門庭) 전(前)에 들어가,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 하니 대조께서 “나가라.” 엄히 하시니, 나와 왕자(王子) 재실(齋室)에 앉아 계시더니, 내 그 때 정경(情景)이야 천지 고금간(天地古今間)하고 일월(日月)이 회색(晦塞)하니, 내 어찌 일시나 세상에 머물 마음이 있으리오. 칼을 들어 명(命)을 그츠려 하니 방인(傍人)의 앗음을 인(因)하여 뜻같이 못하고, 다시 죽고자 하되 촌철(寸鐵)이 없으니 못 하고, 숭문당(崇文堂)으로 말미암아 휘녕전(徽寧殿) 나가는 건복문(建福門)이라 하는 문 밑으로 가니, 아무것도 뵈지 아니하고 다만 대조께서 칼 두드리시는 소리와 소조(小朝)께서,
“아바님 아바님, 잘못하였으니 이제는 하라 하옵시는 대로 하고, 글도 읽고, 말씀도 다 들을 것이니 이리 마소서.”
하시는 소리가 들리니, 간장(肝腸)이 촌촌(寸寸)이 끊어지고 앞이 막히니 가슴을 두드려 한들 어찌하리오.
당신 용력(勇力)과 장기(壯氣)로 궤에 들라 하신들 아무쪼록 아니 드시지, 어이 필경(畢境) 들어가시던고, 처음엔 뛰어나오려 하옵시다가 이기지 못하여 그 지경(地境)에 미치오시니 하늘이 어찌 이대도록 하신고. 만고(萬古)에 없는 설움뿐이며, 내 문 밑에서 호곡(號哭)하되 응(應)하심이 아니 계신지라.
소조가 벌써 폐위(廢位)하여 계시니 그 처자(妻子)가 안연(晏然)히 대궐(大闕) 있기 황송(惶悚)하옵고, 세손을 밖에 그저 두어서는 어떠할꼬 차마 두렵고 소마소마하여 그문에 앉아 대조에 상서(上書)하여
“처분이 이러하오시니 죄인(罪人)의 처자가 안연히 대궐 있기 황송(惶悚)하옵고, 세손을 오래 밖에 두옵기 가중(加重)한 몸이 두렵사오니 이제 본집으로 나가와지라.”
하고,
“천은(天恩)으로 세손을 보존(保存)하여지라.”
써 가까스로 내관(內官)을 찾아들이라 하였더니, 오래지 않아 선형(先兄)이 들어오셔.
“폐위 서인(廢位庶人)하여 계시니 대궐 있지 못할 것이니, 본집으로 나가라 하오시니 가마를 들여오니 나가시고, 세손은 남여(藍輿)를 들여오라 하였으니 나가시오리이다.”
하시니 서로 붙들어 망극 통곡(罔極痛哭)하고, 업히어 청휘문(淸輝門)으로서 저승전(儲承殿) 차비(差備)에 가마를 놓고, 윤 상궁이란 나인이 안 타고, 별감(別監)이 가마를 매고 허다(許多) 상하(上下) 나인이 다 뒤를 따라 쫓으며 통곡(慟哭)하니, 만고 천지간에 이런 경상이 어디 있으리오. 나는 가마에 들 제 막혀 인사를 도르더니,윤 상궁(尹尙宮)이 주물러 겨우 명(命)이 붙었으나 오죽하리오.
집으로 나와 나는 건넌방에 누이고, 세손은 내 중부(仲父)와 선형(先兄)이 모셔 나오고, 세손 빈궁(嬪宮)은 그 집에서 가마를 가져와 청연(淸衍)과 한데 들려 나오니 그 경색(景色)망극함이 차마 어찌 살리오. 자처(自處)하려 하다가 못 하고 일이 하릴 없으니, 돌아 생각하니 십일 세 세손에게 첩첩(疊疊)한 지통(至痛)을 끼치지 못하고, 내 없으면 세손 성취(成就)함을 어찌하리오. 참고 참아 완명(頑命)을 보전(保全)하고 하늘만 부르짖으니, 만고(萬古)에 나 같은 완명이 어디 있으리오.
세손을 집에 와 서로 만나니, 충년(冲年)에 놀라고 망극한 경상을 보시고 그 서러운 마음이 어떠하리오. 놀라 병(病)날까 내 망극함을 서리담아,
“망극망극(罔極罔極)하나 다 하늘이시니, 네가 몸을 평안(平安)히 하고 착하여야 나라가 태평(太平)하고 성은(聖恩)을 갚사올 것이니 설움 중이나 네 마음을 상(傷)해오지 말라.”
하고, 선친(先親)께서는 궐내(闕內) 떠나지 못하시고, 선형(先兄)도 벼슬에 매이어 왕래(往來)하시니, 세손 모시옵고 있을 이가 중숙(仲叔) 두 외삼촌(外三寸)이니 주야(晝夜)로 모셔 보호(保護)하고, 내 계제(季弟)는 아시(兒時)부터 들어와 세손을 모시옵고 노던지라, 그 아이가 작은 사랑에 모시고 자고 있어 팔구 일(八九日)을 지내니, 김 판서(金判書) 시묵(時黙)과 그 자제(子弟) 김기대(金基大)도 와 뵈옵는다 하여, 내 집이 좁고 세손궁(世孫宮) 상하 나인이 전수히 나왔는지라, 남장(南墻) 밖 교리(敎理) 이경옥(李敬玉)의 집을 빌려 김 판서 댁(金判書宅)이 그 며느리를 데리고 와 빈궁을 모시고 있게 하니 담을 트고 왕래(往來)하니라.
▶ 줄거리 요약
‘한중록’은 모두 네 편으로 되어 있다. 제1편은 혜경궁 홍씨의 어린 시절과 세자빈이 된 이후 50년 간 궁궐에서 지낸 이야기를 하는데, 사도 세자의 비극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제2편과 제3편은 천정 쪽의 누명이 억울함을 말하는 내용이다. 제4편에서 비로소 사도 세자 참변의 진상이 기록되었다. 영조는 그가 사랑하던 화평 옹주의 죽음으로 세자에 무관심해지고, 그 사이 세자는 공부에 태만하고 무예 놀이를 즐기는가 하면, 서정(庶政)을 대리하게 하였으나 성격 차이로 부자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마침내 세자는 부왕이 무서워 공포증과 강박증에 걸려 살인을 저지르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여기에 영조 38년(1762) 5월, 나경언(羅景彦)의 고변과 영빈의 종용으로 왕은 세자를 뒤주에 유폐시켜 9일 만에 절명하게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영조가 세자를 처분한 것은 만부득이한 일이었고, 뒤주의 착상은 영조 자신이 한 것이지 친정 아버지인 홍봉한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여기 실은 것은 사도 세자가 뒤주에 들어 절명하는 처분이 내리는 과정과, 그 이후 자신의 처지를 기록한 부분이다. 이 글을 쓴 혜경궁 홍씨의 당시 나이는 71세였다.
▶ 작품 감상의 길잡이
지은이의 집필 동기에 따르면 이 글은 단순히 자기 고백적인 회상록이 아니라, 그 사건의 내막을 폭로하고 규명하려는 해명서이며 증언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남편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참변을 여인의 넋두리로 늘어놓지 않고 일일이 분석하고 해부한 탁월한 안식(眼識)이다. 흔히 이 글을 그 제목만으로 판단하여 억울하고 처절한 자신의 원통한 감정을 피력한 주정적인 글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매우 냉철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읽혀진 이유도 바로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냉정을 유지할 수 있어야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이 단순히 개인적 감정을 토로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혀 놓은 것이 아니라, 비록 소재가 개인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보편적인 사고와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인 혜경궁 홍씨는 매우 끔찍하고 통분할 일을 쓰는데 있어서도 자기감정을 최대한으로 억제하며 우아하고 세련된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므로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좋은 글쓰기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한중록-혜경궁홍씨.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