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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시나리오

전하 / 신명순 지음

작성자테라칸공|작성시간10.06.16|조회수1,254 목록 댓글 1

전하 / 신명순 지음

 

(나오는 사람들)

학자

세조

신숙주

윤씨 (숙주의 아내)

정 (숙주의 아들)

성삼문

정찬손

하인 (숙주집 노목)

병사

 

 

등장인물들은 좌우로 늘어진 의자에들 앉아서 학자의 얘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

 

학자 : 그러니까 제군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세조의 혁명적 기개를 찬양해 왔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어린 단종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육신 이하 여러 중신들의 얘기를 감명깊게 기억하고 있을줄 아네. 허지만 나는 어느 편이 옳고 어느 편이 그르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어 결국 그들이 무엇을 갈구했고 무엇을 기뻐했으며 또 무엇을 슬퍼했는지를 알 수는 없으니까 말일세 결국 역사는 영원한 암흑일세 사건이 발생한지 이미 5백년이 지났고 그들의 뼈는 땅속에 묻혀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을길 없으니 불가불 우리는 있었던 사실 위에서 가능한한 성실한 판정을 세울 수 밖에 없단말이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참으로 한 인간의 가슴속 깊이 잠겨있는 하나의 깨뜨릴 수 없는 진실 우리가 지금 연구하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진실일세. 왜냐하면 역사는 왕왕 자체의 타당성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기 때문일세 어떤가 신군?

숙주 : 수양과 숙주에 대한 자네의 그 냉혹한 태도가 좀 지나치다고는 생각지 않나? 천만에요. 선생님 제가 숙주와 세조를 비난하는 건 그들이 살인자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어떠한 타당성도 살인을 정당화 시킬순 없습니다.

학자 : 알겠네. 허지만 신군 자네가 과오라고 지적한 그 점에 대한 논리적 근거라곤 빈약한 역사라는 것밖에 없네. 게다가 역사는 종종 표면적인 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역사적 인물들 개인에겐 냉혹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서투른 독단은 금물이야 시간이 지난 오늘 역사가가 바빠서 못 건드린 그 부분을 우리는 재고해 보자는 걸세. 예컨대 자네가 신숙주일 경우 (일동웃음)

숙주 : 저 선생님 제가 신숙주라는 인물과 비유되는 것마저 저로서는 불쾌합니다.

학자 : 전 숙주와는 같은 신씨이며 본까지 같은 자네로서는 혈통을 거슬려 올라가 자네의 먼 할아버지 입장이 한번 되어보게 지금 같은 말이 나오나.

숙주 : 설혹 제가 그 사람의 입장에 서더라도 친구들을 배반하지 않을겁니다.

학자 : 좋네 그럼 자넨 자네의 의지로서 신숙주 입장을 타개해 보게 결국 자넨 자신보다 그분을 존경하게 될거네.

숙주 : 전 그렇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학자 : 그래? 그럼 우리 어디 한번 해보세, 모두들!

세조 : 저 --- 선생님!

학자 : 응? 뭔가?

세조 : 저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저희가 옛날사람들의 입장으로 돌아가 본다는건 이해하겠습니다만 저흰 의상같은 것의 준비가 전혀 없잖습니까? 고전이라든지 특히 궁중어 같은건 서툴러놔서 ---

학자 : 하하하하 알겠네. 허지만 여보게 의상에 대한 고증이나 궁중어 따위라면 저속한 야담 잡지에도 상세하게 나와있네.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그따위 옷이나 말 같은 것이 아니잖나? 물론 지금과 그때의 제도나 풍습의 차이 같은 것이 있겠지만 그것도 우리가 연구해 보려는 것에 부작용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게 아니잖을까? 그런 걱정은 말고 자! 그럼 때는 세조가 즉위한지 일년 후로 하지 그래 자네가 세조가 되고 자! 그럼 자넨 저기로 올라가게 옳지 옛날에 산과 들을 뛰돌아 다니며 주색을 즐기던 자네는 아니 수양은 왕이 됐네 표정이 좀더 침울했으면 좋겠네!

세조 : 잘 않되는데요. (일동웃음)

학자 : 잘 해보게. 옳지! 정말 배우같은데 저 정군 불이 좀 밝잖아?

정찬손 : (손으로 스위치를 끄는 시늉을 한다. 조명 조금 어두워 진다)

학자 : 됐어 (사람들 킥킥 웃는다)

세조 : 저 자신이 없는데요. (일동웃음)

학자 : 그렇지 감정을 돋구는덴 음악이란게 있지. 저 자네들은 날 따라오게 그 옆에서 그렇게 웃으면 방해가 될테니 (세조와 숙주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퇴장한다)

성삼문 : 저 선생님! 우린 어떤 정해진 얘기 줄거리 같은 것이 없잖아요?

학자 : 허허 이것봐요! 성군 뚜럿한 줄거리가 있다면 아예 토론을 계속할 필요가 없잖아? 우린 그저 성실하게 각 인물들의 입장을 더듬으면 되는거야

성삼문 : 그래도 어떤 질서같은 ---

학자 : 허허 이것보게. 자네의 발은 자네가 명령한 질서를 잃어버린 채로도 이렇게 길은 잘 가고 있잖아? 자넨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와 얘기하느라고 발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을테니까 말이야. 여하튼 굳이 그 질서라는 것에 구애되면 교통순경한테가서 물어보게. (전원 퇴장한다) (일동웃음) (성삼문 고개를 갸웃둥 한다)

 

시계소리 한시를 친다. 이어서 음악이 넓게 흐른다.

 

숙주 : 전하 이젠 돌아가 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세조 : 오 심한가?

숙주 :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

세조 : (한숨 쉬며) 부러운데 가정을 갖는다는건 무엇보다도 좋은 일이야.

숙주 : 전하! 내일 광현전 잔치를 위해서라도 일찍 주무셔야 ---

세조 : 늘어지게 피곤한데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으니 이상하군. 내일 광현전 잔치에서 명나라 사신들이 내 피로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숙주 : 그들은 이번 선위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조 : 이르다뿐인가? 집현전 문사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는 것도 알지!

숙주 : 그들을 납득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다쳐서 상처를 내지 않으면 저쪽에서 먼저 손을 쓰지는 않을겝니다.

세조 : 나는 그들의 재능을 아껴왔어.

숙주 : 저 역시 그들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세조 : 자 그 얘긴 그만하고 내일 광현전에서 열릴 이 꼭두각시 수양의 어린 광대춤을 위해 할건데 나하고 헤여지네.

병사 : 전하!

세조 : 웬일이냐?

병사 : 우찬성, 정찬손이 은밀히 여쭐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세조와 숙주 서로 마주본다)

숙주 : 우찬성이? 혼자시더냐?

병사 : 네!

세조 : 들어 오라고 해!

병사 : 네!

세조 : 웬일일까?

숙주 : 글쎄요. (병사, 정찬손 등장)

정찬손 : 야밤에 죄송합니다! 전하! (숙주와 서로 인사한다)

세조 : 그래 왠일이요.

정찬손 : 급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세조 : (병사에게) 나가 있게! (병사 퇴장한다)

정찬손 : 저 --- (숙주를 본다)

세조 : 무슨 얘긴지 내가 들을 말이면 저 사람이 들어도 좋소.

정찬손 : 네네 물론입죠.

세조 : 어서 얘기해보게.

정찬손 : 전하! 실은 --- 역모가 있습니다.

세조 : 역모? (천천히 술을 석잔 따른다) 역모라? (정찬손에게) 자! 한잔하겠소?

정찬손 : 네 (두사람 말없이 마신다. 숙주는 술을 든 채로 정찬손을 주시한다)

세조 : 계속하게.

정찬손 : 네. 실은 제 사위되는 동부승지 김질이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세조 : 주모자는 누구요?

정찬손 : 도총사 성승부자와 훈련도감 유응부를 중심으로한 집현전 사람들입니다. 여기 상세한 명단이 있습니다.

세조 : 성승부자가? (명단을 받아 읽는다. 어이없는 듯) 무모한 짓들 --- 거사는 언제요?

정찬손 : 내일 창덕궁 광현전에서 열리는 잔치에서입니다. 운검을 서게된 성승과 유응부가 손을 씁니다.

세조 : (숙주에게) 상세한 정보로군. (숙주 말이없다) 동부승지는 어떻게 이일을 이렇게 상세히 아나?

정찬손 : 실은 제 사위되는 사람이 집현전 학사들과 친 분이 두터워서

세조 : 친분이 두텁다.

정찬손 : 네 그저 별 뜻이 아니고...

세조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게.

정찬손 : 네 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누구든지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었을겝니다. 제 사위되는 사람은 어쩌다가 모의에 가담하라는 종용을 받았습니다.

세조 : 그건 자네 얘긴가 자네 사위 얘긴가? 자네 사위는 완전히 남들에게 동조한게 아닌가? 그럼 왜 진작 그 사람이 내게 알리지 않았나?

정찬손 : 물론 제 사위 얘깁죠. 전 전혀 그 사건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천만에요. 그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사위녀석은 그저 동정만 봤을뿐입니다.

세조 : 동정을 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당을 하는걸 무슨 이유로 방관했다는거요

정찬손 : 결국 그건...

세조 : 묻어 두었다가 공을 세우자는 수작이었겠지.

정찬손 : 그 그렇 --- 아 아닙니다. 사위녀석은 예나 이제나 전하에 대한 충성은 ---

세조 : 어떤 전하야?

정찬손 : ? 네?

세조 : 이 나라엔 전하가 둘이 있다고 믿는 녀석들이 있어.

정찬손 : 그야 여기 계신 전하를 두고 혜혜 ---

세조 : 계속하게.

정찬손 : 바로 오늘 저녁에 사위 놈이 저의 집을 찾아와서 자초지종을 하나도 숨김없이 실토를 했었죠. 그래서 전 이놈 너 정말 역모에 가담한건 아니냐? 하고 호령을 했습니다. 그랬드니 놈은 눈물을 흘리면서 목숨을 걸고 맹세하지만 결코 그런일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어찌 지존하신 전하를 두고서 ---

세조 : 알았어 --- 그래 자네 소원은 뭔가?

정찬손 : 네?

세조 : 이 일을 밀고하면서 뭘 바랬겠느냐 말이야?

정찬손 : 전 그저 놈들을 깡그리 도륙을 냈으면 족합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세조 : 도총관 성승과는 막역한 사이지 아마 ---

정찬손 : 네! 그건 허지만 공과 사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합죠.

세조 : 자넨 성승의 목숨으로 영화를 누릴만큼 잔인한 인간은 아닐테지.

정찬손 : 네?

세조 : 벼슬을 바라는건 아니냔 말야?

정찬손 : 그 그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전 그저 일심으로 전하를 위해서 ---

세조 : 내게 원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말인가?

정찬손 : 네! 그야 전하께서 어련히 --- 아셔서 ---

세조 : 알아서 하겠네. 허지만 명심해 두게. 만일 여기 적힌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자넨 그들을 대신해서 참형되네!

정찬손 : 네. 네. 어김있겠습니까?

세조 : 그리고 내가 손을 쓸때까지 발설을 말게.

정찬손 : 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찬손 퇴장하고 세조 물러앉는다)

숙주 : 전하! 그들을 관대히 처리해 주십시오.

세조 : 노력하겠네. 허지만 결국 난 그들마저도 죽이지 않으면 안될걸세.

숙주 : 민심이 안정되지 않은 이때 피를 보여선 안됩니다. 게다가 집현전은 전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세조 : 더러운 노예근성이지 ---

숙주 : 전하!

세조 : 명나라의 개들 앞에서는 피를 흘리고 쓰러진 수양이라! 천추에 길이 빛날 명안이군. 하필이면 명나라의 개들 앞에서 날 처죽일 필요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그게 날보고 그 더러운 굴욕의 습성에 입맞추고 상이라도 주란 말인가?

숙주 : 냉정을 잃으셔선 안됩니다. 전하!

세조 : 난 항상 공정하려고 애써왔어. 내가 옳았는지 글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나름의 결단성을 잃고 싶진 않았던 말이야! 그런데 여전히 보상받을 수 없는 살인자 수양! 무지의 금송속에 내던져진 어릿광대 수양! 난 역사가 내게 어떤 판결을 내릴런지 알고 있어.

숙주 : 고정하십시오. 전하!

세조 : 모두들 입을 모아 지꺼리겠지. 폭군수양! 폭군수양이라구!

-퇴장-

 

숙주는 주저앉아 고뇌에 쌓인다. 무대 회전하면 윤씨 앉아서 우유를 먹고 있다.

(E) 닭우는 소리

 

부인 : (우유잔을 들고 내려와서 숙주의 어깨를 가볍게 흔든다) 여보! 여보!

숙주 : 응. 어? 당신이요!

부인 : 또 밤을 세웠군요. 일두 좋지만 몸두좀 돌봐가면서 하셔야죠.

숙주 : (피곤한듯) 당신에겐 얘기할수 없지만 중대한 사건이 있어.

부인 : 정치얘긴 그만두시고 식기전에 좀 드세요.

숙주 : (우유를 조금 마신다)

부인 : 여보.

숙주 : 응.

부인 : 알고 싶은 일이 좀있어요.

숙주 : 무슨 일인데?

부인 : 전하에 관해서예요.

숙주 : 당신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아오.

부인 : 그래요! 전 전하를 용납할 수 없어요.

숙주 : 그렇다고 별스럽게 신경쓸 필요는 없어. 당신도 언젠가는 이해할때가 있겠지!

부인 : 지금 알았으면 해요.

숙주 : 지금?

부인 : 전하와 당신에 대해서 차마 들을수 없는 추문이 온 장안에 떠돌고 있어요.

숙주 : 나도 내귀로 직접 들었어요.

부인 : 참기 힘든 일이예요. 우리 일가에 지금까지 그렇게 더러운 누명을 쓴분은 없어요.

숙주 : 누구에게나 좋은 소리를 들을순 없오. 만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치거나 얼간일거요.

부인 : 차라리 그편이 났죠. 그들은 당신을 역적이며 약탈자인 수양의 종이라고 불러요.

숙주 : 몰라! 그들은 아무 것도 몰라! 그들은 뿌리깊게 옛날에 집착하고 있어 새로운 일이 그들의 주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배해온 것은 무기력이야! 병적인 합의야!

부인 : 병적이라구요?

숙주 : 병적이지!

부인 : 어째서 그게 병적이라는거에요?

숙주 : 그들은 다만 현상을 무사히 그저 무사히 넘기자는 생각밖에 없었어.

부인 : 혼잡을 피한것뿐이에요.

숙주 : 이나라는 참된 혁신이 필요해!

부인 : 수양대군께서는 파괴와 권세만을 일삼았어요.

숙주 : 김종서와 황보인도 전하를 암살하려고 음모했어.

부인 : 그게 좋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전하는 그들을 죽이고 왕위를 약탈했잖아요.

숙주 : 그들이 정치를 그르쳤기 때문이야!

부인 : 온 세상을 상대로 싸우실 작정이군요. 당신의 고령부원군이란 벼슬을 어떻게 얻은거죠?

숙주 : 난 전하를 거절할 수 없었어! 나까지 그것을 거절한다면 일은 좀더 복잡하게 되었을거야. 난 벼슬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전하를 거절하는거야. 난 전하를 승인했어.

부인 : 벼슬때문에 승인하신거죠 화려한 영화와 권세때문에 ---

숙주 : 승인했기때문에 벼슬을 얻었을뿐이야!

부인 : 아무도 당신의 힘을 믿지 않아요.

숙주 : 다른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쳐선 안돼.

부인 : 집현전 어른들이 말씀인가요? 그분들이 근래에 발길을 끊으신건 무엇 때문이죠?

숙주 : 그들은 학자야 그들에겐 명예가 중해.

부인 : 명예는 그사람의 인품으로 이루어지죠

숙주 : 그렇지 않을때도 있지. 명예는 허영일뿐이야. 결국 하찮은 광대노름같은 장난이지.

부인 : 명예는 그 사람의 생명이예요.

숙주 : 나의 생명은 바로 나야.

부인 : 당신 생명은 전하겠죠.

숙주 : 내가 전하를 인정한거야. 전하가 날 결정지은건 아냐. (하인 등장 헛기침을 한다)

하인 : 저 대궐에서 전갈이 왔는뎁쇼. (메모를 내놓는다)

숙주 : (받아 펴본다)

부인 : 무슨 얘기죠?

숙주 : 급히 입궐하라시는군.

부인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숙주 : (한숨) 실은 간밤에 역모가 있었다오.

부인 : 역모가? 주모자는 어느분이죠?

숙주 : (긴한숨) 그게 바로 집현전 친구들이라오!

부인 : 그래 그분들은 어떻게 됐죠?

숙주 : 모두들 잡혔다오.

부인 : 또 무자비한 학살이 시작되겠군요.

숙주 : 전하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내게 약속을 했소. 내게 큰 시련이 닥쳐왔나보오.

부인 : 집안 걱정 같은 건 아예마시고 행여 사욕에 이끌려 분별을 잃으셔선 안됩니다.

숙주 :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어! 명예심에서 죽는것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야! 바로 잡아야할 나라의 기강과 향상되고 개선되어야할 국민생활이 있잖냐 말이야? 분명히 말해두지만 개인적인 명예나 값싼 도덕심 따윌 찾는 위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묵살하려는거야! 세종대왕께서 높은 뜻을 가지고 창설하신 집현전의 일원이었던걸 난 일생의 명예로 생각해 허지만 집현전 학자들은 구습과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낡은 도덕에 제사지내느라구 나라가 조금씩 부스러져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야! 그러다가 참아볼 수 없어서 바로잡아 보려는 사람들 앞에서 명예 따위를 찾고 지조를 위해서 죽네 하고 잠꼬대 같은 소릴하구 있어. (숙주가 말하는 동안 무대는 회전하여 다시 궁내 수양과 포박된 삼문이 숙주의 말을 듣고 있다.

성삼문 : 자네다운 이론일세 국가기강과 국민생활개선이 어쩌구, 그래 변절자의 변명이 겨우 그뿐인가?

숙주 : 여보게 자네가 뭐라해도 좋아. 헌데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무모한 짓으로 생명을 버린단 말인가?

삼문 : 무모한 짓이라구? 이제 그 총명하던 지혜마저 흐려졌군.

숙주 : 쓸데없는 고집이야!

삼문 : 벌써 오래 전 얘길세 상왕께서 태어나시던 날, 세종대왕 면전에서 우리들이 같이 약속한 말을 잊었나? 그때 자네는 눈물을 흘리면서 상왕을 받들어 모시겠다고 약속했지? 자네 얼굴을 보기가 민망스럽네그려!

숙주 : 그 얘긴 잊지 않고 있어. 난 진심으로 세종대왕께 맹세했어! 허지만 그런 약속을 어겨야했던 현실을 자넨 알꺼야!

삼문 : 뻔뻔스럽게 그 꼴에 변명까지 하는걸보니 구역질이 나네.

숙주 : (마음이 혼란하다)

세조 : 숙주 잠시 올라가 있게!

숙주 : 네! (숙주 퇴장)

세조 : (세조 포박을 끊는다)

삼문 : 위험스런 일을 하고 계시군요.

세조 : 위험스럽다고!

삼문 : 사형이 확정된 죄수는 어떤일을 할지 모릅니다.

세조 : 필요없는 만용은 그만 두는게 좋은거야.

삼문 : 고맙습니다.

세조 : 감사는 자기자신에게해 난 자네의 석학을 아껴왔어.

삼문 : 달갑지않은 명예로군요.

세조 : 달가운 명예로 만들수 있지. 자네 생각에 따라 서는 (술을 따라주며) 자 몸이 풀릴걸세.

삼문 : 여기서 술 마실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소.

세조 : 어리석은 고집은 그만 두는게 좋아!

삼문 : 필요없는 낭비는 그만 두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세조 : 아까도 말했지만 난 자네들과 싸우긴 싫어.

삼문 : 저도 마찮가지입니다.

세조 : 그렇게 죽고 싶나?

삼문 : 그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 같군요.

세조 : 명분도 없이 개죽엄을 하겠단말이지! 자네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나? 난 자네에게 섭섭하게 대우하지는 않았어.

삼문 : 상왕께서도 나리를 섭섭히 대우하진 않으셨죠.

세조 : 말재주로 얼버무릴 얘긴 아니야? 이 일은 자네 생명과 연관되었어.

삼문 :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살만큼 살았으니 죽을 때를 가릴 나이도 된 것 같군요.

세조 : 자넨 도대체 무엇때문에 죽으려는 게야? 상왕때문인가?

삼문 : 당신에게 이유를 말해야될 의무가 있습니까?

세조 : 난 자넬 죽이지 않겠네.

삼문 : 그럼 제가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세조 : (웃으며) 그렇겠군! 허지만 나 때문이란건 이유가 안돼 상왕때문이라는 것도 핑계에 지나지 않고.

삼문 : 한평생 거짓말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말이 인격이요 생명입니다. 당신이 하신 일은 위대한 거짓말입니다.

세조 : 역사라는걸 믿지 않는군. 상황을 둘러싼 인물들이 다 늙어서까지 주책없이 제바람에 놀아나는 꼴이 그렇게 장하게 여겨지던가? 반 미쳐있던 종서며 병약한 보인이 상왕을 어르고 영화를 누릴동안 국세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나?

삼문 : 민심은 태안합니다.

세조 : 북변에 야인이 들끓고 남으론 왜구가 메뚜기 같이 민가를 약탈해 가고 있는 것을 태안이라 말하겠나? 혜빈 양씨의 변태적인 애정이 성스럽게 보이던가? 부왕께선 예순이 넘어 계집을 끼셨구 아이를 낳게 했어. 선왕께서 아이가 없으실 때 모후께서 네 번이나 계집을 갈아대구 종마가 하듯이 새끼를 뿌릴려구 미쳐 날뛰었어. 거룩한 왕실은 음난과 무질서로 들끓고 양반들은 제 배를 불리기 위해 활량들을 끼고 난행이지. 그런 가운데 상왕이 태어났어. 마치 추문과 변태의 표상처럼 말이야. 궁중은 색주가 집 같이 어지러웠고 그런데두 자넨 그 왕실을 종교처럼 믿고 있어.

삼문 : 왕은 종교자요. 당신은 그 종교도 버렸습니다.

세조 : 잊지 않고 있지. 그러니 선대왕께서 승하하시기 전에 당신에게 한말을 잊었소? 상왕은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애야. 그의 탄생조차 비운의 강보에 쌓여서 버림받았어.

삼문 : 선대왕께서 승하하시기 전에 당신에게 한 말을 잊었소.

세조 : 잊지 않고 있지. 늙은 할아버지가 늦게 본 손자를 대하는 지성은 눈물겨웠어. 부왕은 훌륭한 분이였지만 백성이 안일에 빠지는 것은 몰랐어. 명나라가 승하면 명에 고개를 숙이고 원이 승하면 원에 숙였지. 자주와 자존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어.

삼문 : 그 어른을 욕되게 하진 마십시요. 당신에겐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살인자입니다. 당신은 전하의 직위도 피로 얻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종서, 보인을 결코 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을겁니다.

세조 : 있지!

삼문 : 없습니다. 그들의 죄는 상왕을 섬겼다는것 뿐입니다.

세조 : 무기력 때문이야.

삼문 : 변방에서 여진을 막아낸 종서도 무기력했습니까?

세조 : 그는 늙었어. 늙은 호랑이처럼 자기 울속에 틀어 박혀서 살았어. 상왕은 왕이아니라 그들의 어리석은 충성과 얼빠진 도덕심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어.

삼문 : 그들은 자기의 천분을 지켰습니다. 상왕을 보좌하고 선왕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그들의 천분이었습니다.

세조 : 그들은 노예에 지나지 않았어.

삼문 : 당신도 당신의 노예에 지나지 않아요. 야망의 노예입니다.

세조 : 야망이라고? (웃으며) 자네들이야말로 명예심의 노예지. 종신들에게 훌륭한 대접을 하지 않았어.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놈들에게 여유를 줄수 없어. 그런데 너희들은 옛날에 헛된 게으름과 무기력에 향수를 느끼기 시작했어. 자네들은 옛날에 대한 향수를 명예심으로 바쳤어.

삼문 : 우리들은 질서를 원했습니다. 옛날의 질서가 있었죠 선위란 이름으로 약탈이 행해진 적은 없습니다.

세조 : 질서가? 자네 조상들은 고려말에 양반들이었지. 태조께서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은 목을 빼고 그 아래 무릎을 꿇었지. 그것이 질서야? 그것이 질서가 아니였다면 자네들은 이조의 녹은 먹지 않아야 했어.

삼문 : 나는 내가 살지 않았던 옛날 얘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약탈자고 살인자라는걸 알고 있습니다.

세조 : 그래 나를 명나라 개들 앞에서 쳐죽이고 어쩔 작정이지?

삼문 : 이 나라는 전과 같은 평안을 회복합니다.

세조 :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를 옥좌에 놓고 어쩌자는거야? 다시 이 왕궁을 음난과 아첨과 무질서의 도가니로 만들어 너희들 마음대로 흔들겠다는 거야?

삼문 : 당신처럼 더러운 욕심은 내지 않습니다.

세조 : 더러운 욕심이라구? 더럽다구 ---

삼문 : 나는 당신의 야심으로 희생된 무수한 사람들이 형장에서 목을 잘리운 채 가마귀와 독수리의 밥이 되는 모양을 봤습니다. 그들의 아녀자들이 천한 노비로 팔려 가는 장면을 봤습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아무런 이유도 행동도 하지 않은 그들의 가족들까지 당신의 야심은 희생시켰습니다. 그들을 당신은 질서라고 부를 작정입니까?

세조 : 그들을 살려두는건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야 아직까지 안평, 종서 일당을 신봉하는 무리들이 도처에서 작당하여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어. 피해자의 가족들의 형벌은 그들에게 따끔한 교훈이지.

삼문 : 그것으로 그들의 분노는 다스릴 수 없습니다.

세조 : 내가 다스려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야. 이 나라와 이 나라의 백성들이야 내가 어리석은 동정심으로 화근을 남겨놓으면 이 나라는 더욱 심한 혼란속에 빠질거야. 명나라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야. 일본도 얌전한 도련님이 아니란 말이야.

삼문 : 선왕께선 아무런 파란없이 그들과 사귀어 왔습니다. 당신은 과장된 표현으로 당신의 더러운 야심을 감추려하고 있습니다.

세조 : 부왕과 선왕은 그들과 타협했어 대세에 편승하여서 자기를 버렸지. 그들은 안락한 세상에 태어나 별 생각없이 죽어 갔어. 이제 남겨졌든 것은 무엇이지? 철없는 어린 성왕 그리고 무기력한 혼신들!

삼문 : 당신은 권력을 잡았고 군부가 당신 손안에 들었을 때 살인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개인의 욕망으로 왕위를 탐했기 때문이죠. 당신은 국가의 대세를 위한다고 했죠. 당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혼란 속에 빠뜨렸습니다.

세조 : 나의 행동은 내가 자유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해진거야.

삼문 : 자유라고요?

세조 : 그렇지! 습관과 낡은 학문과 세상사람들의 눈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야. 자네들은 뿌리깊게 허식과 학문에 얽매어 있어. 자네가 죽어야 한다면 아마 그것 때문이야.

삼문 : 내가 죽는 것은 당신이 저지른 살인에 정당한 이름을 부칠 수가 없기 때문이야.

세조 : 죽는 것은 쉬운 일이야. 그저 한가지 마음으로 죽으면 되는 거지. 이념으로 죽는 것보다 쉬운 건 없어. (천천히) 자네는 나를 더러운 욕심쟁이라고 했지? 그래 난 더러운 녀석들과 손을 잡았어. 그랬기 때문에 성공한거야. 만일 내가 더러운 짓을 하지 않고서도 내 이념이 실현될 수 있다면 아무런 일도 없었겠지. 나는 오늘 자네들을 배반한 김질과 정찬손에게 상을 주어야해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줄 아나? 인간답게 행동한다면 나는 그 배반자의 아가리에 칼을 쑤셔 넣을거야. 그러나 만일 그랬다가는 너를 편들어 무모한 암살을 막을 사람은 없게 돼!

삼문 : 그렇게도 살고 싶습니까?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면서까지...

세조 :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야. 난 두발로 대지를 다니고 똑바로 세상을 내다보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았어. 무서운 것은 인습과 타성에 뿌리박은 무지야.

삼문 : 당신이 무지를 탓하십니까?

세조 : 그래. 무지야! 자네들은 걸핏하면 인간적이란 무기를 들고 나서지? 인간적이라는 것이 더러워! 내가 자네들이 말하는 참으로 노후나 보내고 있을거야. 그랬다면 모든게 무사했겠지. 자네들은 집현전 구석에서 명나라에 보내는 아첨하는 글쪽이나 어루만지구 --- 어린 상왕은 언 땅 위에서 팽이나 돌리면서 지냈을거야.

삼문 : 그리고 살인도 불안도 공포도 없었을겝니다.

세조 : 그래 그랬을런지도 모르지. 자넨 그렇게도 죽고 싶은가?

삼문 : 스스로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겝니다.

세조 : 마지막으로 얘기하겠네. 자네가 단 한마디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하면 난 자네를 석방하겠네. 자네 아이들이랑 부인이 기뻐하겠지.

삼문 : 기뻐한다고요? 오히려 슬퍼할겝니다. 거짓말을 하고 아이들과 면대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킬 수 없나? 방법은 있죠. 당신이 스스로 그 자리를 떠나 야인으로 돌아가시면 난 당신의 생명을 부탁드리겠소.

세조 : (웃으며) 그래 그것뿐인가?

삼문 : 더 할 얘기는 없습니다. (하수에서 신숙주 등장)

세조 : (크게) 여봐라! (병사등장) 데려가거라.

병사 : 넷! (성삼문끌고 퇴장하려 한다)

삼문 : 여보게. 숙주 가끔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면 친구 삼문이 생각도 해주려나?

숙주 : 전하!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숙주 일어선다)

삼문 : 여보게! 숙주 이젠 헤어질 때가 된 모양이네?

숙주 : (복받혀) 삼문 나는 자네를 사랑했다. 이세상 누구보다도!

삼문 : 알고 있소.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네. 마지막 부탁이니 자네의 그 비열한 배신에 변명은 하지 말아다오. 잘 있게!

숙주 : 바보! 자넨 바보야!

삼문 : 잘있게!

세조 :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숙주 : 전하! 그들에게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세조 : 이젠 늦었소. 그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

숙주 :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도 있을겝니다.

세조 : 아니야 늦었소. 내가 저들을 용서할 수 있을지라도 저들은 날 용서하지 못할거야. 저들의 의기는 대나무 같지만 융통성이 없어.

숙주 : 저들과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세조 : 나도 저들의 재능을 아껴왔어. 생각해 보니 이상하군. 난 언제나 스스로 자유스럽다고 믿어 왔어. 살생도 정치도 신념도 들판에서 뛰노는 사슴처럼 내 자유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 왔어. 왕이란 배경을 더 높은 더 넓은 자유를 의미한다고 --- 허지만 이젠 모르겠어. 난 저들을 죽이고 싶지 않은데도 저들은 죽이지 않으면 안돼! 자유스럽다는 것이 이렇게 날 꼼짝 못하게 묶어 버리고 말았네.

숙주 : 집행은 전하 언젭니까? 다녀오겠습니다.

세조 : 어딜?

숙주 : 친구들의 임종이나마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세조 : 말리지 않겠네.

숙주 : 안녕히 계십시오.

하인 : 부르셨습니까?

윤씨 : 아직 주인 어른의 차가 안보이나?

하인 : 네, 아직 ---

윤씨 : 나가서 지켜보게

하인 : 네 (퇴장 상수에서 아들 정. 등장)

윤씨 : 지금껏 무얼하고 있었니? 밤이 늦었는데 네 방에 가있거라.

정 : 어머님도 좀 쉬세요. 병 나시겠어요.

윤씨 : 병이 난들 대수냐?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혼자만 발 뻤고 쉴 생각없다.

정 : 아직 아버지께선?

윤씨 : 염려 말어. 곧 기별이 있겠지. 분별이 있으신 양반이면 집현전 친구 분들을 버리시진 않을게다.

정 : 어머님은 괜한 고집을 부리고 계세요. 상왕이나 전하가 하시는 일을 어머님이 어떻게 알아요. 무작정 따라 죽어야 한다는건 옳지 않아요!

윤씨 : 그만두지 못하겠니? 전하는 지존이야 중신은 두 어른을 섬기지 않는다.

정 : 어머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라고 계세요?

윤씨 : 그 분이 영원토록 사시는 길은 그 길 뿐이야!

정 : 전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가 살인자 건 배신자 건 돌아가시는 건 싫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들은 어떻게 하시죠?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참형을 당하는 아버질 볼 수 없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건 단지 아버지 개인을 위한 고집밖에 안돼요.

윤씨 : 듣기 싫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 수양이 하신 일은 하나하나 대역죄로 벌 받을 일뿐이야. 너도 집현전 어른들이 죄없이 죽는다는 것 쯤은 알 나이가 됐겠지. 그들은 중신이야. 그들은 명예롭게 죽어가는 거야!

하인 : (들어오며) 마님! 마님!

윤씨 : 왜 그러나?

하인 : (놀라운듯 그러나 다정히) 마님! 선생님이 오시와요.

윤씨 : 다른 분 들과 함께더냐?

하인 : 선생님 혼자세요.

윤씨 : 잘못 본 건 아닌가?

하인 : 잘못 볼 리가 있겠습니까? 이 두 눈으로 틀림없이 봤는뎁쇼.

윤씨 : 나가서 다시 알아봐라.

정 : (천천히) 어떻게된 셈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아들 퇴장한다. 숙주 천천히 걸어들어 온다.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

윤씨 : 오셨군요.

숙주 : (앉으며) 여태 안자고 있었소.

윤씨 : 당신이 돌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숙주 : 난 현장엘 둘러왔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소. 그들은 내가 그 자리에서 칼을 물고 엎어지는 극적인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던거야. 허지만 나는 이렇게 돌아왔소.

윤씨 : 형장엔 무엇때문에 가셨어요?

숙주 : 그들과 함께 죽는 것 보다는 그들의 죽음을 보는 것이 내게는 더큰 시련이었기 때문이야. 나는 나를 시험했어! 그들의 증오도 받아들였어.

윤씨 : 그것으로 당신의 자존심이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숙주 : 자존심이라고요? 당신은 아직도 사리를 그릇 깨닫고 있소.

윤씨 : 그들은 폭군에 저항했어요. 그 분들은 옳은 일을 위해 죽었어요.

숙주 : 어리석은 죽음이야! 그들의 죽음이 백성과 자신에게 감상적인 동정을 불러 일으켰을 따름이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었어.

윤씨 :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구요. 당신이 하신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였던가요.

숙주 : 그들이 죽은 건 명예 때문이요. 그들은 단 한가지 일밖에는 몰라 충성이란 어리석은 이름을 지킨다는 것이 그들에게 명예심을 불러 일으켰소. 그들은 죽었소. 그런데도 결국 올바른 일을 위해 죽은게 아니라 어린 아이에 대한 충성을 바치기 위해서 죽은 거야.

윤씨 : 당신은 수양대군의 폭정을 정당하다고 주장하시는군요.

숙주 : 어느 의미에서는 옳지. 그는 야심가이지만 이 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야. 지배자는 정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의에 의해서 결정되어야만 해! 그래서 나는 정과 인연을 끊었어.

윤씨 : 배반이죠! 비겁한 배반이예요. 모두들 당신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군께 지조를 굽혔다고 떠들어요. 그러한 오명은 영원히 벗을 수 없어요.

숙주 : 결코 난 그들을 설복시키는데 실패했을 따름이야. 사왕을 복위시키는 것은 무사와 안녕만을 바라는 늙은이들의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고 --- 결국 그들은 전하의 악명과 함께 영원히 그 충성됨으로 떠 받히겠지. 백성들이란 그런 죽음을 좋아하니까!

윤씨 : 철면피예요. 당신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결국 당신은 그들과 인연을 끊음으로써 부귀와 영화를 얻었군요. 그것도 부정하실 생각이세요?

숙주 : 그들의 죽음과 내가 무슨 연관이 있소? 그들이 죽었다고 나까지 죽으란 법은 없다오. 그러나 그들은 나와 뜻을 달리했을 뿐이야. 물론 난 아직까지 그들의 뜻을 존중해 왔지만 그들이 취한 방법이 최상의 것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어. 나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한적두 없구 그들을 죽으라고 선동한 적도 없어. 그들은 죽어야했기 때문에 죽은거구 나는 살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거야. 만일 그들이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한다면 나는 그들과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단 말이야!

윤씨 : 철면피에요. 당신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

숙주 :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의 불안이야. 아직 내 머리 속엔 형장에서 사지를 느리고 피를 흘리는 친구들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그 모습은 아마 영영 내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어.

윤씨 : 그리고 영원히 신씨 일가의 오명도 벗을 길이 없겠죠.

숙주 : 더 듣고 싶지 않소. 당신은 내 판단력을 뒤흔들어 어리석은 죽음을 받게 할 작정이요. 나는 그러한 오명은 즐거이 받아 들인다고 말했소.

윤씨 : 저는 받아 들일 수 없어요. 오늘 전 당신이 대궐로 가신 뒤 한가지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쩌면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라요. 수레가 지나갔어요. 여러 친구 분들이 차례차례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소리가 마치 내 머리를 깔고 지나가는 것 처럼 느껴졌어요. 그때 전 당신의 얼굴을 보았어요. 그들과 함께 끌려가는 얼굴을 --- 당신은 웃고 계셨어요. 그 부드러운 얼굴이 제게 기쁨을 주었어요. 그러나 하인이 와서 당신이 말을 타고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전했을 때 --- 전 다만 놀랬어요. 지금 내 앞에 계신 당신은 떳떳치 못한 얼굴을 하고 계세요. 불안에 쫓기고 죄 지은 듯이 아래를 향한 눈은 제게 절망을 주었어요.

숙주 : 더 얘기하지 마오. 분명히 말하지만 난 전하에게 이 나라의 사직을 부흥하는 중요한 일을 부탁받았소. 나는 그것을 승락했소. 몇 년 째 몰라보도록 타락한 민심을 잡고 새로운 발전을 위해 헌신하기로 약속했소. 지금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나의 생명때문이 아니오. 분별없는 동정심으로 의를 굽힐까 두려운거요.

윤씨 : 변명은 그만두세요. 당신에겐 결국 한가지 용기 밖엔 없었어요. 그건 아직도 얼굴을 들고 세상을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놀라운 일이예요!

숙주 : 내게 놀라운 일은 당신이야. 당신은 좀더 냉정하게 사리를 분별할 줄 알았소. 내가 취한 방법이 최상이 아니였다고 해도 ---

윤씨 : 당신이 직위와 권세를 버리고 촌락으로라도 들어가신다면 전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거에요.

숙주 : 오는 길에 죽 그런 생각했소. 허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소. 그것이야말로 비겁한 짓일 따름이요.

윤씨 : 변명은 그만 두세요. (일어서며) 단 한번 기회가 있어요. 아직도 시간은 늦지 않았어요. 다시 선택할 시간말이예요.

숙주 : 돌이킬 수 없어 난 내가 죽어야 할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난 전하께 손을 잡고 일하겠다고 약속한거야. 내겐 할일이 너무 많아!

윤씨 : (돌아서 나가며) 어쩔수 없군요. 저도 해야할 일이 있어요.

숙주 : 여보!

윤씨 : (멈추어 선다)

숙주 : 당신을 항상 사랑하오.

윤씨 : (괴롭게) 쑥스러운 얘기예요.

숙주 : 내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이해와 동정이 필요해!

윤씨 : 당신은 스스로 저의 진정을 거절하셨어요. (윤씨 퇴장한다. 숙주 조용히 앉아있다. 상수에서 하인 등장)

하인 : 선생님!

숙주 : 응?

하인 : 식사 안하시겠사와요?

숙주 : 괜찮네.

하인 : 저 ---

숙주 : 무슨 일인가?

하인 : 말씀드리기 퍽 안됐습니다만 집안에 부리는 것들이 ---

숙주 : 그들이 어떻게 됐나?

하인 : 모두들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숙주 : 이 집에서 나가겠단 말이지

하인 : 네!

숙주 : 그랬었나? 그들에게 섭섭히 대한 적은 없었는데 ---

하인 : 그러게 말씀이에요. 천하고 미욱한 것들이 멋모르고 날뛰는거죠. 선생님이 얼마나 자비롭게 그놈들을 대해 오셨다구 ---

숙주 : 그들대로 생각이 있겠지. 오늘 오후에 내 친구들이 모두 형장에서 참형 을 당했네.

하인 : 듣고 보았습니다.

숙주 : 그들은 중신이지. 나는 역적이고 --- 아랫것들이 나가는 것은 응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걸세.

하인 : 천만에 말씀입니다. 저희야 뭘압니까? 그저 전 선생님을 믿고 결코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하시지 않을거라고 믿을 뿐이죠.

숙주 : 자넨 퍽 오래 나와 함께 있었지.

하인 : 조부님 때부터 입죠. 늘 분에 넘친 대우를 받아 왔습니다.

숙주 : 고맙네 부탁이 있어. 그들에게 적당히 재산을 나누어 주게. 그리고 어디서든지 편히 살도록 주선해주란 말이야. 미움은 배반보다 더 나쁜거야. 그리고 자네도 이 집을 떠나주었으면 하네.

하인 : 네?

숙주 : 오래동안 역적의 이름으로 불리울거야. 자네에게 그런 이름을 주긴 싫네.

하인 :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세상 것들이 무어라고 하든 전 선생님 곁에서 일생을 마치겠습니다. 절 내쫓지 말아주세요. 제발 이 늙은 것의 소원입니다.

숙주 : 알았네. 어서 나가서 내 하라는대로 해!

하인 : 네 (퇴장)

내실에서 "어머니 안돼요 어머니"하고 부르짓는 아들 "정"의 소리 들린다.

숙주 : (휘청거린다. 이어서 종소리)

정 : (뛰어나오며) 아버지!

숙주 : (절망적으로 정을 본다)

정 : 돌아가셨어요.

숙주 : (안으로 들어간다)

정 그 자리에 엎드려 흐느낀다 잠시 후 하인의 소리 들린다 아들 벌떡 일어선다.

하인 :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정 : 전하? 여우 같은 놈 (책상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기둥 뒤에 숨는다)

하인 : 선생님! (들어오며) 방금 여기 계셨는데 잠깐 기다리십시요. (상수로 퇴장)

정 : (뛰어나오며 세조를 찌르려 한다) 살인자!

세조 : (잡으며) 누구냐? (팔을 비튼다)

정 : 살인자 같으니 --- 당신이 우리 어머닐 죽였어!

숙주 : (나오다 발견하고) 얘야 이게 무슨 짓이냐?

세조 : (힘들어 칼을 떨어뜨리게 한다. 정은 팔을 빼치고 세조의 뺨을 친다. 세조 죽은 듯이 서있다.

숙주 : (하인에게) 이 애를 데리고 나가 방에 가두어 놓아!

세조 : 내버려 두게. (하인에게)

정 : (불만스럽게 상수로 퇴장)

세조 : 어머니를 죽이다니 --- 무슨 일이요?

숙주 : 죄송합니다. 전하 안사람이 방금 운명했습니다.

세조 : 운명이라고? 이상한 때 찾아온 모양이로군 무어라 할말 없네. 사인은 뭔가?

숙주 : 자살입니다.

세조 : 자살? 무슨 얘긴지 짐작이 가오.

숙주 : (앉으며) 웬일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세조 : 주위가 어지러워서 --- 바람 쏘일겸 나왔다가 들렸소. 그리고 해야할 이야기도 있고 ---

숙주 : 무슨 말씀인지 하십시오.

세조 : 지금 당신의 얼굴을 보고 느꼈소. 좀더 일찍 깨달아야 할것을 ---

숙주 : 전하께선 지나치게 제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십니다.

세조 : 그렇잖아! 난 있는 사실만큼 얘기하고 있을 뿐이야. 난 조금 전 자네 눈에서 처음으로 외로움을 보았소. 자넨 애처가였지!

숙주 : 서로 허물없이 믿고 살아왔습니다.

세조 : 지금 그 아이가 자네 장남이던가?

숙주 : 네!

세조 : 영특한 눈이야! 뒤를 잘 돌봐주겠네.

숙주 : 그럴 생각입니다.

세조 : 그게 아니야! 자넨 지금 일념으로 죽기를 바라고 있네. 집현전의 석학으로 이름을 닦아온 자네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은 죽기보다 참기 힘든 일일꺼야. 아무말 말게. 지금이라도 늦진 않았네. 명예를 돌이키는 방법은 있네.

숙주 : 명예 때문이 아닙니다.

세조 : 형장엔 아직 피를 본 군중들이 남아 있어. 그들에게 가길 원한다면 그들과 같은 이름으로 명성을 회복하게 해주지 어떤가?

숙주 : 결국 전하는 속일 수 없군요. 제 뼈 속에 깊이 도사린 관습에 대한 집착은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 두 걸음 잡아 다니는 이 힘이 무엇인지 ---

세조 : 자넨 시련의 단계에까지 왔어. 그것을 넘어서도 별로 행복하게될 보증은 없네. 자아! 이젠 결정해 주게. 자네에게 주는 나의 마지막 호의야.

숙주 : 저의 죽음을 바라십니까?

세조 : 자네를 위해서 일념으로 비네.

숙주 : 결국 불필요한 짓에 불과합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세조 : (팔을 잡으며) 진정인가?

숙주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조 : 내일 아침 일찍 대궐로 오게. 장례에 관해서 의논하세.

숙주 : 장례요?

세조 : 부인의 장례는 될수 있는대로 성스럽게 해 드리겠네. 내 호의를 거절하지 말아 주게.

숙주 :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다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모욕이 되겠지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으로 죽게 하고 싶습니다.

세조 : 더 권하지 않겠네. 그럼 --- 나오지 말게!

숙주 : 안녕히 가십시오!

세조 : (나간다. 아들이 보따리를 들고 나와 있다)

숙주 :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

정 : 떠나고 싶습니다. 이 땅에선 더 살 염치가 없습니다.

숙주 : 그게 진정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어딜 가고 싶으냐?

정 :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땅에선 살 용기가 없을 뿐이예요.

숙주 : 너도 애비가 한 일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니? 그렇겠지. 명예가 네 어미를 그렇게 만들고 오늘 죽어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명예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 지는거야. 자기의 참 뜻은 배반되기 쉬운 물건이지. 나는 그런 것 을 요구하지 못했다. 그뿐이지 세상의 욕지거리를 참아낼 용기는 있어도 너나 네 에미의 비난은 참을 수가 없구나. 그러나 너도 너 대로의 생각이 있겠지.

정 : 아버지!

숙주 : 이 애비는 참 불쌍한 사나이지.

정 : (울면서) 아버지 --- (둘은 모질게 껴안는다. 차라리 공포다)

 

- 끝 -

 

첨부파일 신명순-전하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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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여해 | 작성시간 12.06.11 안방에서 전국의 꾼들과 섯다의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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