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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달콤함을 날마다 경험하는 행복(차준희)

작성자기호헌|작성시간12.09.17|조회수313 목록 댓글 0

말씀의 달콤함을 매일 경험하는 행복

차준희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자기 나이만큼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라는 글을 접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1년에 성경을 한 번쯤 읽는 것이 당연하다면, 마땅히 자신의 나이만큼은 성경을 읽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 말을 처음 접하고서 약간은 당혹스럽고 부끄럽기도 했다. 구약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신약성경은 구약만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만큼 성경읽기라는 이 인생 숙제를 다 끝내지 못한 일로 책망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읽는 통독은 중요하다. 그런데 성경의 전체 숲이 어느 정도 그려졌다면, 다음 단계인 정독으로 넘어가야 한다. 정독에 정통한 한 시인을 만나 보자.

시편 1편의 시인은 진정으로 복이 있는 사람은 모든 악을 단절하고(1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로다’(2절)라고 노래한다. 그리하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이 시들지 않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모두 잘 되리라’(3절)라고 고백한다. 그는 끊임없이 물을 공급받아 그 잎이 푸르고 형통한 나무가 된다. 구약성경에서 나무는 의인을 상징한다(참조 렘17:7∼8)

이 구절의 ‘복이 있는 사람’에서 ‘복’은 히브리어로 ‘아쉬레’이다. 구약성경에서 보통 ‘복’은 ‘바루크’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바루크’는 무조건적인 복을 의미하는 말로, 영어로는 ‘bless'로 번역한다. 한편 ’아쉬레‘는 영어로 번역하면 ’be happy'이다. ‘바루크’는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면을 강조하는 반면, ‘아쉬레’는 받은 것을 포함하여 그것을 누리는 면이 강조되는 셈이다. 이 둘의 차이는 주어짐과 누림으로 정리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 즉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일체의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행복하여라, 일체의 악으로부터 단절된 사람이여’ 이들은 악과는 철저히 단절되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밀착된 삶을 산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생각하는 삶을 산다. 여기서 밤낮은 하루 종일이라는 시간적인 의미도 있지만, 형통할 때와 형통하지 않을 때라는 질적인 의미도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늘, 항상 생각하다’는 뜻도 되지만, 주어진 환경을 초월하여 ‘잘 나갈 때나 어려울 때나 변함없이 말씀을 생각하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생각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가’이며, 이는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다. 유대사람들의 귀에는 비둘기가 ‘하가-하가-하가’라고 소리 내면서 우는 것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이란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히브리어 ‘하가’는 ‘뜻을 생각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읽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시편 1:2의 ‘생각’은 눈을 뜨고 입을 열어 깊이 생각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작은 소리를 내면서 자세히 읽는 것이다. 깊이 읽는 것이다.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다. 연구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즐겁게 연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를 맛보면서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삶의 현장에서 말씀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 메마르지 않는 말씀의 샘이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삶의 모든 환경을 하나님의 은혜로 적셔준다.

나는 구약성경을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구약성경을 읽는 것은 매일 일과이다.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히브리 성경, 여러 가지 사전, 선배 학자들이 해석한 외국 주석서 등을 면밀히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머리로 깨달을 뿐만 아니라 가슴도 뜨거워진다. 자연스럽게 이성적 학습과 감정적 학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곤 한다. 그러면 학습 공동체와 신앙공동체에서 나눌 결과물이 정리된다. 머리에 남는 것은 학교의 강단으로, 가슴에 내려온 것은 교회 강단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은혜는 성경 신학자인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가 아닐까.

매일 매일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처음 성경을 펼치는 것은 나의 손일지 모르지만 펼친 이후부터는 성경이 나를 이끈다. 관계되는 성경을 여기저기 펼치다 보면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게 된다. 분명 구약성경을 펼쳐 놓았건만 나중에는 신약성경이 눈앞에 펼처져 있곤 한다. 그리하다 보면 성경이 성경을 밝혀 주고, 나는 그 말씀 속에 깊이 잠기게 된다. 그 순간 ‘이것이 말씀의 달콤함을 경험한 시인의 경험이구나’하며 공감하게 된다. “주의 말씀이 내 입에 어쩌면 이렇게 달콤한지요!”(시편 119:103). 말씀에 푹 빠져 사는 것이 직업인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행복하여라, 말씀의 달콤함을 매일 경험하는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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