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교회 토요큐티 소그룹(2012. 12. 8.)
가르침보다 효과적인 나눔의 시간 - 이희분 (두란노 QT사역팀 강사)
아들이 결혼한다며 여자 친구를 소개하는데 생각했던 며느릿감과는 차이가 있었다. 내 기준과 어떤 점이 다른지 아들에게 설명했지만, 아들은 자신이 수년간 교제하며 겪어 보니 최상의 짝이라며 자랑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세속으로 꽉 찬 내 잣대를 내려놓고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나니 만나 볼수록 부족한 아들에게 꼭 맞는 배필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말로만 듣고 판단했던 인상보다는 성품이 곱고 단아한 자매였다.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빼닮은 아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 앞에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성육신하신 주님을 매일 만나는 QT
외형적인 예배, 기도, 찬양에 아무리 익숙하더라도 내면에서 실제적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변화될 수 없다. 아직 삶의 변화가 없다면 지금 내 모습이 그리스도인의 겉모양만 흉내 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신앙생활은 하는데 매일 주님과 만나지 않는다면, 성육신하셔서 일상에서 접촉하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누리지 못한다면, 생명은 자라지 않는다.
성탄절이 1년에 한 번 치르는 연례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1:14)한 삶이 매일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한 하루하루가 이어져 한 해를 채워 가는 것이다. 이렇듯 매일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길, 성육신하신 주님을 만나는 길이 바로 QT이다. QT는 주님과 함께하는 동행이고, 결국 그것이 그 사람의 영성인 것이다.
순종과 사랑의 여인, 마리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노라”라며 입술로 고백하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내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면 좋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통속적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순종의 여인이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마1:23). 잉태 순간부터 범상치 않았던 아기 예수의 탄생은 목숨을 건 한 여인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마리아의 사랑은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죽게 될 가능성도 감내한 사랑이었다. 온갖 질병에 노출된 마구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아기의 목숨까지 담보한 사랑이었다. 사랑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의 탄생은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자 대안이다. 이렇듯 마리아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육신을 입으신 아기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자식을 이용하고 조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리라.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모든 어머니의 근원적인 소망, 곧 제 자식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접으리라. 배 속의 아이를 통해 내 편안함과 호의호식을 꿈꾸지도 않으리라.’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이 곧 자신의 뜻이기를 바랐다. 낳았으나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어머니가 마리아이다.
아들 예수가 한 인간으로서 평범한 삶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살기로 결단했을 때, 마리아는 자신의 삶도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질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함을 알았을 것이다. 곧 자신을 죽여 장사 지내는 일은 예수님에게만 주어진 숙제가 아니라 마리아도 자신의 생을 통해 해내야 할 숙제임을 알았을 것이다. 마리아는 자기 안에 심긴 하나님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 거룩한 씨앗에 물을 주고 양분을 주어 마침내 한 송이 꽃으로 피워냈다.
마리아를 통해 자녀 문제를 치유받다
나눔방에서 자녀 문제로 고심하는 자매들을 만났다. 그럴싸한 설명이나 경험담을 들려주어도 움직이지 않던 그들에게 마리아에 대한 묵상을 나누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각자 고민의 근원을 깨닫고 고민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문제아로 치부하던 자녀를 하나님 말씀보다 더 자주 묵상한 자신이 사실상 더 문제였음을 비로소 깨닫고 자유를 얻었다.
설명과 가르침보다 말씀 묵상을 나누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렇듯 말씀 속에서 성령님이 친히 운행하시면 감동을 받고, 문제가 해결된다. 사람의 교훈은 머리로 듣지만 성령의 감동은 가슴으로 듣는다. 나눔방 리더는 항상 말씀 묵상의 감동으로 가득 차 있어 자신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나가게 해야 한다. 묵상한 이야기를 나눌 때 회복을 경험하고 생명 공동체로 세워져 간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QT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QT가 안 되는 이유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QT는 내가 듣고 싶은 것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 꼭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시간이다. 자신의 욕구로 꽉 차 있으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 QT는 개인의 소원을 성취하는 수단도,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잊게 하는 진통제도 아니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마음을 드리면 주님이 성육신하신 성탄은 매일 내 삶에서 이루어진다. 성육신하신 주님을 매일 만나는 QT가 되기를, 묵상 나눔으로 치유와 회복이 풍성한 나눔방이 되기를 소망한다.
출처 : 『생명의 삶』(김양재, 2012년 12월호 p. 170-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