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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목마름의 세가지 종류

작성자기호헌|작성시간13.07.06|조회수1,287 목록 댓글 0

영적인 목마름의 세 가지 종류

 

매순간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영혼 속에는 어떤 의미에서든 목마름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연적인 상태에 만족하도록 만드시지 않았다.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람은 현재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그들의 영혼 안에 있는 목마름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1. 공허한 영혼의 목마름을 가진 사람

거듭나지 않은 사람, 곧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공허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줄곧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다닌다. 그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며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에는 돈, 섹스, 권력, 주택, 토지, 스포츠, 취미활동, 오락, 탁월한 것, 중요한 것, 교육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엡2:3)이다.

어거스틴이 단언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안식을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쉼을 얻을 수 없다.” 공허한 영혼은 항상 뭔가를 추구하지만 결코 안식하지 못하며 이것저것을 계속해서 쫓아다닌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빈 공간을 결국 채우지는 못한다.

갈증을 느끼며 뭔가를 찾아 헤매지만 공허한 영혼은 자신의 진정한 필요에는 눈이 멀어 있다. 세상에 사는 어떤 것도, 그리고 어떤 사람도 우리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공허한 영혼은 “해 아래서”(전1:9) 다른 의지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한다. 그런 것은 해 아래 있지 않으며 해 너머 그분이 계시는 곳에 있다. 솔로몬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이나 대상도 처음에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되고 만다.(전1:14)

그리스도인은 공허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눈여겨보고는, 그 사람이 찾고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요4:14)라고 말씀하신 그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따금 공허한 영혼이 좀더 신중하고 영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도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런 목마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다윗 왕과 사도 바울을 감동시켜서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고 기록하게 하셨다(시14:3, 롬3:11). 하나님의 성령이 공허한 영혼의 영적인 혀를 만지시지 않는다면, 영혼은 절대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시34:8) 수 없다. 사람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 나선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그가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평화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평화의 왕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주장은 하면서도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향해 갈급해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그런 하나님, 곧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그런 하나님을 향해 갈급해 한다.

공허한 영혼이 가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다른 많은 삶의 영역에서는 끝없이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발견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추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만족해 버린다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누가복음 12:19절에 나오는 사람과 같다. 그는 자신의 만족한 영혼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공허한 영혼은 그가 인생에서 어떤 것을 갈망하든 상관이 없다. 18세기의 목사이며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것들이라고 한 ‘하나님과 거룩함을 향한 갈망, 배고픔, 그리고 목마름 속에서 생성되는 거룩함을 향한 열망’은 절대로 가질 수 없다. 만일 텅빈 영혼이 이 땅에서 갈급함으로 목말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혀에 물 한 방울만이라도 찍어 달라고 호소한 부자처럼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목말라할 것이다.

 

2. 메마른 영혼의 목마름을 가진 사람

공허한 영혼과 메마른 영혼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생수의 강”을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한면에, 후자는 그것을 맛본 적이 있어서 지금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메마른 영혼이 성령의 내주하시는 임재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성도가 메마른 영혼이 될 수 있을까?

목사이면서 작가인 존 파이퍼는 어느 날 아침 위의 구절을 읽다가 “하나님,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저의 영혼은 너무도 목말라 있고, 저의 교회도 목말라 있는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니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저와 같이 기도하고 있는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예수님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본문을 묵상하고 있을 때 주님으로부터 온 빛이 그분의 말씀 위에 비취면서 파이퍼 목사는 그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너희가 나의 물을 마실 때 너희는 갈증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만일 그랬다면 그 다음에도 너희가 내 물을 마실 필요를 느꼈겠니? 그것은 내가 목적한 것이 아니란다. 나는 스스로 만족해 하는 성도를 원하지 않는다. 너희가 나의 물을 마실 때 너희 안에는 샘이 하나 생겨나는데, 그 샘은 갈증을 해소시켜 주지. 그렇다고 그것이 너희가 가지고 있는 물에 대한 필요 자체를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너희가 목마를 때마다 너희에게 물을 줄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계속 퍼줄 준비 말이다. 이 아침에도 영적으로 갈급하지 않았니, 조? 그럼 이제 한번 마셔 보거라.

그리스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영혼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 때문에 건조해진다. 가장 흔한 원인은 사람을 갈수록 메마르게 만드는 세상의 수원(水原)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마시면서, 정작 ‘하나님의 강’(시65:9)에서는 너무나 적은 양의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갈증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으로 메마르는 또다른 원인은 청교도들이 ‘하나님 자신을 숨기심’이라고 부르던 것 때문이다. 어느 때는 하나님이 우리 영혼에 그의 임재를 충만하게 느끼도록 하실 때가 있다. 하지만 다른 때는 그분의 부재에 대한 의식으로 우리를 메마르게 만드신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에 대한 그분 자신의 감추심은 단지 우리의 인식일 뿐이지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이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도 아니하리라”(히13:5). 그렇긴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낄 때,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거나(시23:4), 아니면 자신이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절규하셨던 예수님과 같은 처지라고 믿는다.

시편 143편 6-7절에 나오는 다윗의 말은 이같이 영적인 사막 가운데서 기도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왜 그러시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하나님은 정말 때때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하신다. 이것에 관해서는 여기서 길게 논할 주제가 아니므로 윌리엄 거놀의 짧은 조언으로 대신하겠다. “그리스도인은 뒤로 숨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태양이 구룸 뒤에 숨었다 해도 태양은 우리가 그 빛을 느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툭수한 목적상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가 차단된 상태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임을 기억하라. 그런 영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는 세 번째 원인은 지속적인 정신적, 또는 육체적 피로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원인과 치료는 대개 아주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내가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도라 해도 피로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는 영적인 성장을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실망스러운 실체를 보고 깊이 생각하다 보면 피곤을 야기시킨 바로 그 싸움 가운데서도 그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영혼에 다시 햇빛이 찾아들 때 비로소 그는 그런 것들이 자신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거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선한 물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곧 성장의 신호라는 점이다. 그 원인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의 메마른 영혼은 시편 42편 1-2절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 하는 성도와 같은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이런 상태라면 하나님 자신이 주시는 생수 외에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3. 만족한 영혼의 목마름을 가진 사람

지금은 이 말이 자기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메마른 영혼과는 달리 만족한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만족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 한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시34:8)안다. 그리고 그 맛은 너무나 독특한 만족을 주기 때문에 더욱 더 간절히 구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빌3:10)라는 그의 유명한 외침 속에 이것을 나타냈다. 그는 이 말 앞에서 예수님에 대한 그의 현재의 지식과 그분과의 관계에 대해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선언했다(빌3:7-8). 그런데 바로 한 절 뒤에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혼의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분을 목말라했다.

하버드 대학의 설립자이며 뉴잉글랜드의 영향력 있는 목사였던 토마스 쉐퍼드는 만족과 목마름의 반복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참된 은혜 안에는 무한히 반복되는 과정이 있다. 사람은 목말라함으로써 더욱 받게 되고, 받음으로써 더욱 목말라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영적인 갈증을 해소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나 대상 또는 경험도 그분 안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영적인 즐거움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는 비할 데 없는 만족을 준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 발견된 것에는 실망스러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 안에서 발견하는 영적 만족감은 결코 끝이 없다. 그렇다. 주님 안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주님 안에서 한계 없이 탐구하고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만이 유일한 만족의 세계를 제공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불만족한 상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대한 단 한번의 경험이 그분에 대한 미래의 모든 갈망까지도 만족시켜 주도록 우리를 설계하시지는 않았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와의 친밀함 가운데 누리는 영적인 유익과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더 많은 친밀함에 대한 목마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영적인 유익이란 영혼을 만족케 하는 성질을 가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완전히 맛보고 싶어하는 갈증을 느끼게 된다. 영적인 유익을 경험하면 할수록 탁월하고 비길 데 없으며 특별한, 만족스러운 달콤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영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굶주리고 목말라한다.

여러분은 혹시 예배나 경건의 시간 중에 토저가 말한 ‘짜릿한 달콤함’의 황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오히려 그런 경험이 여러분을 더 많이 갈망하게 하는 ‘거룩한 불만족’의 상태로 남겨 두지는 않았는가? 토저가 드리는 기도 속에서 여러분이 주님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에게 만족을 주기도 했지만, 그것을 향해 더 목마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더 많은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게 갈망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오 하나님, 삼위일체되신 하나님, 당신을 원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당신을 향한 열망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아직도 더욱 목마르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여, 이런 열망이 바로 성장하는 영혼의 표지가 된다.

출처 『당신의 영적인 건강을 진단하라』 21-29쪽, - 도날드 휘트니 / 도서출판 N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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