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삶(1)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시130:1-2)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남녀야말로 가장 고결하고 아름답다. 기도는 참으로 경건한 일이며, 인간다운 일이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들여 하나님과 교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뒤따르는 모든 혜택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물론 기도는 가장 효험 있는 은혜의 통로들 중 하나다. 기도에 힘쓰지 않고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행여 있을지 의심스럽다.
존 라일 주교는 “일부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보다 월등히 밝고 거룩한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이렇게 답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물 중 열아홉은 개인 기도의 습관이 다른 것에 그 차이가 있다. 두드러지게 거룩하지 못한 자들은 기도 생활이 거의 없는 반면 두드러지게 거룩한 자들은 기도를 많이 한다고 나는 믿는다.” 또는 그는 말한다.“기도와 범죄는 같은 마음에 절대 공존할 수 없다. 기도가 죄를 삼키거나 죄가 기도를 질식시킨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먼저 말씀하시면, 우리가 기도로써 반응한다. 따라서 기도할 때 그분이 성경 묵상 중에 들려주신 말씀에 대한 응답의 말로(찬송이든 고백이든 간구든) 시작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야 예의에 맞다. 화제를 바꾸는 것은 무례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로 말씀을 읽고 묵상한 후, 그 말씀을 그대로 펴놓고 한 절씩 다시 보며 그에 적합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며, 말씀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 우리는 모든 기도에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한 중년의 요리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비밀을 나누듯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분께는 비밀을 털어놓아도 됩니다. 기도는 그분과 나, 단둘의 일이지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불경(不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구어적 표현이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정해진 기도 형식을 사용하고, 잘 다듬어진 기도문을 따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며, 훌륭한 기도서도 꽤 많이 나와 있다. 또한 자기가 직접 기도문을 수집하고 거기에 자신이 쓴 기도를 첨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도에는 최소한 다섯 가지 방식이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 개인 기도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기도 방식을 구분하는 방법은, 각 기도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첫째, 위로 하나님을 본다
이것은 예배다. 하나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돌리는 것이다. 사실 내가 아는 예배에 대한 성경 최고의 정의는 “그 성호(聖號)를 자랑하라”(시105:3)는 것이다. 즉 예배란 그분만의 기이한 성품과 그분이 친히 계시하신 모습을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예배해야 한다. 또한 예배는 우리의 자기중심성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요, 옛날 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이기심을 소독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참된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마음과 생각의 탐조등을 하나님께 돌리며, 우리를 방해하기 일쑤인 자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주 달려 죽으신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께 사로잡힌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치셨다. 주기도문 첫 세 문장의 초점은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분의 영광, 즉 그분 이름의 영예와 그분 나라의 확장과 그분 뜻의 실행에 있다. 평소 자신만을 향해 사는 우리인지라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예배보다 더 옳고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예배 집중을 돕는 한 가지 방법은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빛나고 높은 보좌와”,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와 같은 위대한 찬송을 부르거나 그 가사를 읽는 것이다. 이런 찬송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그리고 창조와 구속의 능하신 사역에 집중시킨다. 반대로 요즘 찬송 중에 우리 자신, 우리의 필요, 우리의 경험에 몰두하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둘째, 안으로 자신을 본다
이것은 우리를 자백으로 이끈다. 우리는 자기 반성 즉 지나친 내성(內省)은 건강하지 못하고 무익하다 못해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내성(內省)은 유익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하다. 성경 묵상은 종종 이런 식으로 우리를 낮추며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죄와 이기심, 허영과 탐심을 가차 없이 들추어 우리에게 회개와 자백을 촉구한다. 그렇게 하는 가장 안전한 길 중 하나는 회개와 시편, 특히 시편 51편(“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이나 시편 130편(“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저녁마다 하루를 간단히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는 것은 건강한 훈련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며 하나님의 자비를 악용할 수 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깊은 거룩함을 더욱 사모하게 된다. 죄의 고백은 죄 사함에 대한 감사로 이어져야 한다. 이처럼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즉시 다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좋은 일이다.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출저 : 『생명의 삶』 2007년 7월 p.8 - 11 『크리스천 베이직』존 스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