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8~26
◈ 새번역 ◈
18 온 백성이 천둥소리와 번개와 나팔 소리를 듣고 산의 연기를 보았다. 백성은 그것을 보고 두려워 떨며, 멀찍이 물러섰다.
19 그들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죽습니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들을 시험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이며, 당신들이 주님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21 백성은 멀리 떨어져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시는 먹구름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갔다.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는 다 보았다.
23 너희는, 나 밖에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은이나 금으로 신들의 상을 만들지 못한다.
24 나에게 제물을 바치려거든, 너희는 흙으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다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너희의 양과 소를 바쳐라. 너희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예배하도록 내가 정하여 준 곳이면 어디든지, 내가 가서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
25 너희가 나에게 제물 바칠 제단을 돌로 쌓고자 할 때에는 다듬은 돌을 써서는 안 된다. 너희가 돌에 정을 대면, 그 돌이 부정을 타게 된다.
26 너희는 제단에 층계를 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을 밟고 올라설 때에, 너희의 알몸이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묵상 Point ◈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1) 나를 경외하라
하나님은 우레와 번개, 나팔 소리와 연기 등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임재하시며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 신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과 경험을 초월한 모습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손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금은 신상으로 하나님을 대체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화려한 예배는 결국 '나를 위한' 신상 만들기에 불과합니다.
3) 명한 대로 예배하라
예배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어울리게 존재하는 것이며, 열정과 헌신보다 '순종'이 앞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대로, 세상과 구별된 정결한 의식으로 예배해야 하며 인위적인 감정 흥분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훔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 설교 / 두려움 너머 ◈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은 육체와 수명의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리 안에서 계속 생성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려움 너머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갈 때, 영광 가운데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 때문에 멀리 서 있었습니다(18절). 그런데 두려움을 느꼈던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천둥과 번개 그리고 압도적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밀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삶은 아직 정확히 중심과 기준 없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밀려 요동치고 있었습니다(엡 4:14; 약 1:6). 현상이나 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바른 신앙이 출발합니다.
두려워하는 백성에게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 이유를 알려줍니다(20절). 바로 그들을 시험하고, 경외하게 하고, 범죄에서 떠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 시간이 죽음의 공포까지 느낄 정도로 엄혹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있어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벧전 4:12). 죄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이 존귀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서워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세는 홀로 흑암 가운데로 걸어갑니다(21절). 겉으로 보기에는 모세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하나님 백성이 뻔히 보이는 고난과 어려움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미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마 13:44~46).
시내산에 임하셔서 계시의 말씀을 들려주신 하나님이 한 가지 우려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놀라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본 것을 토대로 어떤 형상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22~23절). 그런데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참조, 32:4). 사람은 불안하고 두려우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마음의 두려움과 욕망을 투사해 우상을 만들어 섬김으로 불안을 해소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토단을 쌓아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또 단을 쌓을 때 돌을 다듬지 말라고 하십니다(24~25절). 돌을 다듬지 말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23절)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단을 만들 때 자기 생각대로, 욕망에 이끌려 만들 여지를 아예 없애십니다.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이끌려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이스라엘처럼 치명적인 신앙의 오류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