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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목) 방관의 죄

작성자기호헌|작성시간26.06.18|조회수20 목록 댓글 0

출애굽기 21:28~36

 

새번역

 

28 "소가 어떤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 처형된 소는 먹어서는 안 된다. 이 경우에 소의 임자는 형벌을 받지 않는다.

29 그러나 그 소에게 받는 버릇이 있는데, 그 임자가 남에게 경고를 받고도 단속하지 않아서 어떤 남자나 여자를 죽게 하였으면, 그 소만 돌로 쳐서 죽일 것이 아니라, 그 임자도 함께 죽여야 한다.

30 그러나 피해자 가족이 원하면, 소 임자를 처형하는 대신에, 그에게 배상금을 물릴 수 있다. 그 때에 그 배상금 액수는 재판관이 정한다.

31 또 소가 나이 어린 소년이나 소녀를 받아 죽게 하였을 경우에도, 그 소 임자에게 같은 법을 적용한다.

32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게 하였으면, 소 임자는 그 종의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주고, 그 소는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

33 어떤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놓거나, 구덩이를 파고 그것을 덮지 않아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졌을 경우에는,

34 그 구덩이의 임자는 짐승의 임자에게 그것을 돈으로 배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죽은 짐승은 구덩이 임자의 것이 된다.

35 어떤 사람의 소가 그 이웃의 소를 받아서 죽게 하였을 경우에는, 살아 있는 소는 팔아서 그 돈을 나누어 가지고, 죽은 소는 고기를 나누어 가진다.

36 그 소에게 받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않았으면, 그는 반드시 살아 있는 소로 배상하고, 자기는 죽은 소를 가져야 한다."

 

묵상 Point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도의적인 책임도 이행하라

소유한 짐승이 사고를 냈을 때, 주인이 평소 습관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주인까지 처벌받습니다. 이는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이들까지 배려하는 율법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설교 / 합리적 규정과 회복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율법의 규정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매우 합리적이라는 점과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을 우리가 당연하게 따르며 살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오늘 회복을 위한 말씀을 살펴보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에는 먼저 소가 갑자기 사람을 들이받아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다룹니다. 일반적으로는 소만 죽이고 소의 주인은 형벌을 받지 않습니다(28절). 소 때문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소가 돌발적으로 공격한 사고에 대해서는 주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의도나 악의나 부주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고는 안타깝지만 그 사고로 인해 억울하게 형벌을 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받는 버릇이 있는 소로 발생한 사망 사고를 하나님은 '살인'으로 간주하십니다. 그래서 소의 주인도 사형에 처할 것을 명하십니다(29절). 물론 살인 의도는 없었지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지우신 것입니다. 소가 그런 것이라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발뺌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처럼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를 죄와 실패로 이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죄성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실패한다면 심각한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받는 버릇이 있는 소로 인한 사망 사고의 경우 그 주인이 부과된 속죄금을 지불하면 사형 판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30절). 속죄금은 자신이 제안하거나 타협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가족이 부과하는 것이고, 가해자는 일방적으로 요구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지불해야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죄로 인한 죽음의 형벌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죄가 너무 중해서 속죄금을 감당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속죄금을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난폭한 소가 타인의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이면 소 주인은 은 삼십 세겔을 속죄금으로 내야 합니다(32절). 은 삼십 세겔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넘기고 받은 액수와 일치합니다(마 26:15). 예수님은 종의 몸값에 팔려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개의치 않으시고 모든 모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당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구덩이에 가축이 빠졌을 경우에 대해서는 합리적 보상과 회복을 규정하고 있습니다(33~36절). 살인과 존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면 율법의 기본 방향은 회복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하나님의 형상과 존엄의 회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경쟁하고,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키는 것에만 몰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세상에서 그 뜻대로 살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세상을 회복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분명 성경의 말씀과 방향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삶과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의 삶은 타인을 회복시키지도, 그다지 합리적이지도 않습니다. 경쟁과 탐욕과 죄가 가득한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더욱 와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된 우리는 세상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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