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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목) 화목의 교제의 자리

작성자기호헌|작성시간26.06.20|조회수27 목록 댓글 0

출애굽기 24:1~11

 

새번역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일흔 명과 함께 나 주에게로 올라와, 멀찍이 엎드려서 나를 경배하여라.

2 모세 너 혼자서만 나 주에게로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이 나에게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않게 하여라."

3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과 법규를 모두 전하니, 온 백성이 한 목소리로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지키겠다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따라 기둥 열두 개를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서 젊은이들을 보내어, 수송아지들을 잡아 주님께 번제를 올리게 하고, 화목제물을 드리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은 그릇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리고 그가 '언약의 책'을 들고 백성에게 낭독하니,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받들어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것은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따라, 당신들에게 세우신 언약의 피입니다."

9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일흔 명과 함께 올라갔다.

10 거기에서,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깔아 놓은 것 같으며, 그 맑기가 하늘과 꼭 같았다.

11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손으로 치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뵈며 먹고 마셨다.

 

묵상 Point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1) 말씀을 준행하리이다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언약을 체결한다. 모세는 산 정상까지, 아론과 장로들은 중턱까지, 백성들은 산 아래까지만 올라오게 하신다.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 모든 차이가 사라졌다. 누구든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의 은혜로 은혜의 보좌 앞에까지 담대히 나갈 수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왕이신 예수님을 인정하며 사는 것만 요구된다. 새 언약의 백성들도 오직 말씀을 따라 그분을 닮아갈 때만 이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

 

2) 언약의 피를 뿌리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확증하기 위해 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언약서를 낭독하고 언약의 피를 뿌렸다. 그렇게 했으면서도 이스라엘은 역사 내내 은혜를 망각하고 이 언약을 깨뜨려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새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새 언약을 맺어주셨다. 이제 다시는 이 새 언약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지 말자. 충성과 사랑을 다짐했던 그날의 감격으로 주와 교제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3) 축하의 잔치를 열다

 

이스라엘의 대표들은 언약 체결을 축하하는 하나님의 밥상에 초대되었다. 하나님을 임의대로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놀았던 산 아래(32:6)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냈지만(32:7-8),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것을 다짐한 이들은 하나님을 보고도 죽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었다. 참다운 누림은 하나님을 떠난 방탕한 자유가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게 매일 때 찾아온다.

 

설교 / 정결케 된 이스라엘과 하나님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백성이 되었지만, 함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에 놀라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이 가능했을까요?

 

어느 누구도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수백만의 이스라엘 중에 정말 소수인 장로들, 심지어 아론조차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1~2절).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아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수시로 나가 무엇이든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4:16).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과 율법을 백성에게 전합니다. 백성은 한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았고, 말씀을 준행할 것을 한목소리로 약속합니다(3절). 우리는 그들의 감격과 다짐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실패와 회복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받고, 결단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실패에도 불구하고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결단했기에 하나님이 그들 삶에 개입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실수하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준행하기로 약속한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는 여러 가지 의식을 거행합니다. 제단을 쌓고, 기둥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고, 말씀을 다시 낭독합니다(4~8절). 예배와 성찬과 같은 의식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고 가르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우리 생각과 마음, 때로는 몸의 깊은 곳까지 말씀이 뿌리 내리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성찬과 공동체의 의식에 참여하십시오. 그 예배와 의식들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통로이기에 그 역사를 기대하며 함께하십시오.

 

모세와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봅니다(10절). 정확히는 하나님의 발아래에 펼쳐진 상황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시는 모습만 그려졌는데, 이제 반대로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청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거룩하게 되어 여호와의 산에 올라갈 수 있으며(시 24:4),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마 5:8). 그 청결함은 오직 내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던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뵙고 그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11절). 번제와 화목제의 피 뿌림 이후였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빠르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닌, 특별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닌, 내 옆의 사람이 체험한 하나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스스로를 정결케 할 수 없습니다. 본래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할 때, 대속의 능력에 힘입어 의롭게 됩니다. 그렇기에 다른 것에 우리 소망을 두지 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이 주신 소망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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