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
유희영
지난 주말, 내가 아는 분의 아들 결혼식이 토론토 시내의 화려한 욕(York)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남편이 베이룻의 American University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게되어 나 혼자 참석한 자리였으나, 실은 맥길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신부가 옛 스승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어하는 특별한 뜻이 있어 우리를 초대했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날에 있었던 일을 반추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사회를 맡아보던 사회자의 스피치가 인상적이었던 때문이었던 듯싶다.
신랑의 아우가 사회를 맡아보았다. 이곳에서 자라나 우리말이 조금 서투른 듯한 그는 미리 준비한 글을 읽는 것으로 스피치를 대신하였다. 그런데 그의 인사말이 우리가 평상시 듣는 것보다 조금 다른 점이 있어 내게 긴 여운을 남기는가보다.
“여기 오신 여러분 모두가 한 분 한 분 신랑 신부와 양가의 소중하신 손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 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소중함” 이란 그 단어 하나에 담겨있는 의미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러한 인사가 “바쁘신 가운데 이처럼 왕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통상적인 인사보다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로 그렇게 큰 차이를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특별히 아름다운 단어는 아닌데도 전달되는 메시지는 특별한 것임을 알게되었다. 그의 현명한 단어 선택에 감사했다.
그가 스승에게 인사하는 대목에서도 동양적인 예의가 깊었기에 가슴에 무엇인가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오늘의 신랑, Dr. K.와 신부, Dr. Y.이 있기까지에는 그들을 인도해주신 여러 스승님이 계십니다.” 그 자리에 부재중이던 남편의 이름이 제일 먼저 소개되었고 뒤이어 네 분의 토론토대학 교수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동양의 속담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스피치를 읽어 가던 그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하는 이 대목에서는 영어로 다시 한번 반복함으로서 참석한 모든 손님들이 알아듣도록 자연스럽게 스피치를 이어갔다. 아마도 외국인 손님들이나 소개를 받은 교수님들은 처음으로 듣게되는 그 비유적인 용어에 지극히 놀랐을 것이다. 스승을 늘 존중하고 그 은혜를 기리는 것은 동양의 예의지국에서 배운 우리의 아름다운 도덕이다. “스승의 은혜” 라는 단어는 캐나다 대학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태도에서는 느껴 본적이 별로 없었던 일이기에 감동을 받게되는 것 일게다.
몬트리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기게 하던 것은 스피치뿐 이였을까?
신랑은 토론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과학자이고 며느리 될 신부도 학위논문을 곧 제출할 것이라 한다. 이제 학위를 끝내고 학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 두 사람, 신랑과 신부의 앞날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진리를 연구하려는 일에 많은 시간을 정진하여야 하는 학문의 길은, 때로는 어렵고 힘에 겨울 것이고, 때로는 괴롭고 외로운 길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학자의 삶은 멀고도 고독한 길이라 하겠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학문에 전심을 쏟으면서, 남보다 가진 것 많지 않아도 특별히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금전적으로 크게 보상을 주지 않는 학문을 사랑하면서,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신비 속에 숨겨있는 진실을 탐구하는 일에만 열중한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소박한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마음이 늘 편암 함을 느끼는 것 같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이 두 사람은 학문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태도는 비록 어렵고 고된 학문의 길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될지라도 이를 잘 극복할 용기를 줄 수 있으리라 믿게 한다.
내가 이러한 생각들로 골몰할 제 어둠을 달리는 열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오고 있는지 뚜우 뚜우하는 기적소리를 울리고 차안에 전등불이 켜졌다.
무릎 위에 펼쳐있는 책을 접어 가방 속에 넣으며 하차할 준비를 서두르는데, 차창에 반사되어 출렁거리는 전등불빛의 고운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름다운 영상의 무늬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까지 퍼지고 있었는지라 마음마저 편안함을 가지게되었다.
유희영
지난 주말, 내가 아는 분의 아들 결혼식이 토론토 시내의 화려한 욕(York)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남편이 베이룻의 American University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게되어 나 혼자 참석한 자리였으나, 실은 맥길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신부가 옛 스승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어하는 특별한 뜻이 있어 우리를 초대했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날에 있었던 일을 반추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 사회를 맡아보던 사회자의 스피치가 인상적이었던 때문이었던 듯싶다.
신랑의 아우가 사회를 맡아보았다. 이곳에서 자라나 우리말이 조금 서투른 듯한 그는 미리 준비한 글을 읽는 것으로 스피치를 대신하였다. 그런데 그의 인사말이 우리가 평상시 듣는 것보다 조금 다른 점이 있어 내게 긴 여운을 남기는가보다.
“여기 오신 여러분 모두가 한 분 한 분 신랑 신부와 양가의 소중하신 손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 하였는데 그가 말하는 “소중함” 이란 그 단어 하나에 담겨있는 의미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러한 인사가 “바쁘신 가운데 이처럼 왕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는 통상적인 인사보다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로 그렇게 큰 차이를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특별히 아름다운 단어는 아닌데도 전달되는 메시지는 특별한 것임을 알게되었다. 그의 현명한 단어 선택에 감사했다.
그가 스승에게 인사하는 대목에서도 동양적인 예의가 깊었기에 가슴에 무엇인가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오늘의 신랑, Dr. K.와 신부, Dr. Y.이 있기까지에는 그들을 인도해주신 여러 스승님이 계십니다.” 그 자리에 부재중이던 남편의 이름이 제일 먼저 소개되었고 뒤이어 네 분의 토론토대학 교수님들의 소개가 있었다.
“동양의 속담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스피치를 읽어 가던 그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하는 이 대목에서는 영어로 다시 한번 반복함으로서 참석한 모든 손님들이 알아듣도록 자연스럽게 스피치를 이어갔다. 아마도 외국인 손님들이나 소개를 받은 교수님들은 처음으로 듣게되는 그 비유적인 용어에 지극히 놀랐을 것이다. 스승을 늘 존중하고 그 은혜를 기리는 것은 동양의 예의지국에서 배운 우리의 아름다운 도덕이다. “스승의 은혜” 라는 단어는 캐나다 대학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태도에서는 느껴 본적이 별로 없었던 일이기에 감동을 받게되는 것 일게다.
몬트리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기게 하던 것은 스피치뿐 이였을까?
신랑은 토론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과학자이고 며느리 될 신부도 학위논문을 곧 제출할 것이라 한다. 이제 학위를 끝내고 학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 두 사람, 신랑과 신부의 앞날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진리를 연구하려는 일에 많은 시간을 정진하여야 하는 학문의 길은, 때로는 어렵고 힘에 겨울 것이고, 때로는 괴롭고 외로운 길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학자의 삶은 멀고도 고독한 길이라 하겠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학문에 전심을 쏟으면서, 남보다 가진 것 많지 않아도 특별히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금전적으로 크게 보상을 주지 않는 학문을 사랑하면서,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신비 속에 숨겨있는 진실을 탐구하는 일에만 열중한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소박한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마음이 늘 편암 함을 느끼는 것 같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이 두 사람은 학문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태도는 비록 어렵고 고된 학문의 길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될지라도 이를 잘 극복할 용기를 줄 수 있으리라 믿게 한다.
내가 이러한 생각들로 골몰할 제 어둠을 달리는 열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오고 있는지 뚜우 뚜우하는 기적소리를 울리고 차안에 전등불이 켜졌다.
무릎 위에 펼쳐있는 책을 접어 가방 속에 넣으며 하차할 준비를 서두르는데, 차창에 반사되어 출렁거리는 전등불빛의 고운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름다운 영상의 무늬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까지 퍼지고 있었는지라 마음마저 편안함을 가지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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