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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2013년 3월 3일 - " 선교사 리빙스턴의 형 "

작성자관리자|작성시간13.03.02|조회수312 목록 댓글 0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은 아프리카를 사랑으로 개척한 선교의 시조입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불란타이어에서 낮은 신분의 가난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디크가 쓴 '종교철학과 미래국가의 철학'이란 책을 읽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중국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곳에서 의료선교를 하기로 결심하고 의과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의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혼란스런 정치상황 때문에 리빙스턴은 선교 목적지를 남아프리카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형 존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스코틀랜드에서 병원으로 개업을 하기만 하면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다며 아프리카로 가는 것을 단념하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리빙스턴의 결심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형이 말했습니다. "너는 네 자신의 소원대로 그 정글의 미개인들 속에서 네 인생이 매장되겠지. 그러나 나는 이곳 영국에 머물면서 이름난 의사가 될 것이다." 리빙스턴은 남아프리카의 쿠루만과 츠와나의 영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땅은 거의 황무지였고 한발의 피해가 심했으며 땅은 관목으로 덥혔 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12년 동안의 선교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회심자 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4년 간 그곳에 머물며 탐험되지 않은 지역을 4,000마이란 긴 탐험을 했고 짐베시 북방 탐험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평생을 시달렸지만 그의 의지력을 많은 동료들을 앗아간 무서운 질병이나 고통도 꺾지 못했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이름 없는 선교사로 활동할 동안 리빙스턴의 형은 스스로 장담한 것처럼 병원을 개업하였고 유명한 의사로 널리 알려져 돈과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날 두 사람 중 누가 더 성공했는지 따져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리빙스턴은 확실한 성공이 보장된 개업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남아프리카로 갔지만 그의 활동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14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형 존은 겨우 한 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리빙스턴의 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리빙스턴은 선교는 물론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의료사업, 그리고 지리학적 발견은 물론 동식물에 대한 관찰기록 등 너무나 큰 업적을 쌓아 영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리빙스턴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갔고 그의 소원대로 심장을 아프리카의 땅에 묻혔고 그의 유해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영국으로 인도되어 성대한 왕실 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그의 유골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제일 높은 제단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는 땅에서 받는 존경보다 더 큰 상급을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그가 누구를 위해 살았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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