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과 군인과 시인/이령
우리 동네 애기 동자가 오방색을 흔들며 공수를 쏟아 내면 오만 원
시인의 시 한 편도 오만 원, 군인의 하루 일당도 대략 오만 원입니다
오만 오만 쓰다 보니 나는 그만 오만합니다
가라사대
길들이기 전까진 길들여지기 전까진
무당과 군인과 시인도 원래는 순한 꽃이었어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힘이 세지요 눈 맑은 애기 동자 기도는 영험하니까 자주 기대곤 해요 또 찬란한 시 한 구절, 늠름한 군인, 얼마나 굳건한 우리들의 믿음인가요
방울과 총과 펜은 위험합니다 인간은 태초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한 거라 생각해요 언젠가 꽃보다 사람, 노래도 유행했지만 주술 같은 맹세는 꽃을 길들이기 위한 엄청난 무기죠
빛이 있으라 했는데 자꾸 구름 속으로 신도들이 몰려드는 건 이상해요
방울과 총과 펜의 노래로 전파한다면 꽃들을 전도하기에 좀 수월 하겠죠
착착 감기는 가사는 따라 하기 안성맞춤 이죠 일사분란에 익숙한 꽃들이 순하게 사그라지는 동안 우리들의 믿음은 또 얼마나 굳건 한가요 언젠가 펜이 칼보다 무섭다 노래한 시인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펜으로 기망을 휘두르는 꽃이 어쩌면 시인입니다
무당과 군인과 시인은 대체로 가난해요 그러나 방울과 총과 펜을 이해한다면 세상은 가까스로 살만 하죠 의미 없음의 의미 있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비밀한 화음, 주문은 멈추지 않을 거니까
오만 오만 쓰다가 오만을 노래해요 그러니까 이건 뭐 좀 신실한 얘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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